베이글을 사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커피는 드립으로 내려갈까? 한 통은 아이스, 한 통은 핫으로. 아니야. 생각보다 커피 내리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 언제 여덟 명이 마실 커피를 내리며 '세월아 네월아'하고 기다리고 있어. 커피는 아침에 시간을 맞춰서 배달을 시켜야겠어. 보자, 9시 30분부터 오신다고 했으니까 9시에 주문하면 되겠다. 그럼 베이글을 사고 샌드위치용 슬라이스 햄, 에담 슬라이스 치즈, 어린잎 루꼴라를 사야지. 홀그레인머스터드도 슥슥 바르면 더 맛있을 텐데 지난주에 사 먹었던 베이글샌드위치가 너무 짰단 말이야. 그렇다면 제주니까 달콤한 한라봉잼과 맛있다고 소문한 타르타르소스를 발라서 짠맛을 중화시켜 만들어야겠어. 좋아, 6시 30분에 일어나서 샌드위치 여덟 개를 만들고 식구들 아침 식사 준비, 아이들 학교에 데려다 주기까지가... 괜찮아. 할 수 있어. 좋아!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6월부터 독서교실에서 어른들을 위한 독서 모임을 시작했어요. 첫 만남을 준비하는데 나눌 책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 갈지만 적고 있습니다. 독서 모임을 준비하며 <난생처음 독서 모임>이라는 책도 사놓고는 5초 만에 휘리릭 넘겨 보고 오로지 '입이 즐거운' 독서모임만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지개인간아, 널 보면 자꾸 탐구하고 싶어 져."라는 친구의 말이 무정차 열차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어디서 이런 독서모임을 배웠는지 날을 잡고 탐구를 해볼 일입니다만 지금은 독서모임 멤버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맛있는 베이글 샌드위치를 대접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부터 해결해야 합니다. 여행과 마찬가지로 요리를 하는 마음은 설레고 즐겁지만 계획형이 계량형이 아닌 사람에게 우리 가족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요리는 기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너무 신경 쓰다가 오히려 망칠까 봐.
드디어 D-day가 밝아왔고
새벽부터 부엌이 분주합니다. 크림치즈에 그릭요구르트와 꿀(오늘은 밀랍 꿀로 특별하게)을 섞어 베이스 소스를 만들고 그 위에는 전날 씻어 물기를 털어 냉장 보관한-그래서 다시 물기가 생겨 마른 수건으로 닦은- 루꼴라를 가지런히 올려주었지요. 빵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은 깔끔하게 잘라낼 계획이라 잎 부분이 베이글 면적에 포함되도록 고이 얹어주었지요. 그 위에 에담 치즈를 올리고 슬라이스 햄을 올리고 타르타르소스를 듬뿍 마른 베이글 뚜껑을 잘 덮어 줍니다. 이제 주문을 걸어야 해요.
"제발 맛있어져(짜게 되지 마, 촉촉하게 유지되어, 먹는 데 내용물이 눈치 없이 막 튀어나오지 말아)라"
아, 짜진 않지만 루꼴라를 더 풍성하게 넣어도 좋았을 걸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모임이 또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독서교실에서 열리는 글쓰기 모임의 마지막 날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마지막 날이라니 이 얼마나 특별한 날입니까? 이런 날에는 잔치상을 차려야지요. 함께 글을 쓰자고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나눠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초복이 다가오니까 삼계탕을 준비할까, 그 뜨거운 걸 들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너무 무리지. 그래서 이번에는 고민 끝에 수육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수육만 먹으면 좀 느끼할 수 있으니까 오차즈케가 좋겠군. 가루 녹차를 냉수에 녹이고 얼음 몇 알도 퐁당, 시원한 오차즈케에 민어도 몇 마리 구울까? 아니, 아니, 아니, 그건 진짜 아니야. 돼지고기에 민어라니 뭔가 과한 느낌이 들잖아. 상큼한 걸 곁들이면 좋겠는데 뭐가 있을까. 아하! 요즘 오이지가 제철이지. 오이지무침을 올린 오차즈케를 준비해야지.
이쯤에서 나에게 하는 질문.
즐기는 거 맞지? 응, 그럼! 신나고 설레는 걸 보니 이건 좋아하는 일이야. 번거롭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내 손으로 만든 한 끼를 대접하고 싶은 마음과 그래야 마음이 편해지는 팔자지. 이왕이면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나누자. 마음이든 음식이든 뭐든.
예정된 독서 모임과 글쓰기 모임이 끝난 지금 가장 먼저 드는 마음은 감사하는 마음이지요. 함께 해주신 좋은 분들이 나눠주신 마음과 다정한 말 덕분에 삶이 더 무지갯빛이 되었으니까요. 얼마 전에는 한 젊은이가(20대니까 이렇게 표현해도 되겠지요?) "언니는 러키비키네용."이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들리더라고요. '언니 옆에는 러키비키가 천지네요'라고 말이죠. 살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에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도 이 글을 통해 다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합니다. 늘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오늘은 독자님께서 제게 러키비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