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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개인간 Aug 20. 2024

맘에게 워킹하기 좋은 때가 있을까

  일하는 엄마, 워킹맘. 그리고 전업맘.

  이 둘은 참 묘한 관계입니다. 두 역할은 서로 다른 만족을 주지만 가끔 서로를 그리워하고 부러워하기도 하지요. 한 사람에게 결코 동시에 있을 수는 없고 반드시 하나만 선택해야 하지요. 잠깐이라도 다른 역할을 해볼 기회가 온다면 많은 엄마들은 용기를 내어 바꿔볼 것 같아요. 그러나 바뀐 역할을 즐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시 과거로의 회귀를 꿈꾸기도 하지요. 가끔 '엄마 사람'의 내면에서는 인력(서로 끌어당기는 힘)과 척력(서로 미는 힘)이 동시에 존재하며 이런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둘 다 소중하지만 모두 가질 수는 없기에 누군가는 전쟁을 치르듯 깊은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냥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라며 덤덤한 마음으로 스리슬쩍 넘어가기도 하지요.


  바야흐로 개학이 되었습니다.

  '20분만 이대로 있자.'

  날짜를 세며 기다린 그날이 밝았지만 이른 아침부터 거실을 차지한 여름 햇살 아래 멍하게 앉아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춘기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이번 여름방학은 무척 바빴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기 중과 방학의 경계가 모호했고요. 개학이 되었다고 달라질 게 없는 아침인데 오늘은 이유 없이 조급해집니다. 그래서 할 일을 하나씩 적어보며 마음을 진정시킬 여유를 가져봅니다.

  '그저 보통의 아침이야.'

  여하튼 아이와 함께 자라는 엄마는 평소처럼 6시 30분쯤에 눈을 떴고 침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아침 식사를 준비하라는 미션을 받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때 열어둔 창문 사이로 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립니다. 6시 43분. 울음소리로 봐서는 억지로 잠을 깨웠다고 잠투정을 부리는 게 아니라 서너 살의 아이가 온 마음을 다해 뭔가를 호소하고 있는 것 같이 들리네요. 익숙한 울음소리, 마치 아기 춘기를 두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서 일터로 향할 때,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돌려 엄마를 붙잡아보려던 춘기의 울음소리와 닮았네요. 어느 집 아이인지 모르겠지만 이 아이에게도 이른 아침부터 최선을 다해 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비슷한 일을 겪은 워킹맘은 혹시나 새벽잠을 깨웠다고 짜증을 내는 어른이 있을까 봐 걱정부터 되더라고요. 우리 집 아이도 아닌데 누가 시끄럽다며 소리라고 지를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해집니다.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아이의 울음소리가 더 크고 선명해져서 창 밖을 내다보았어요.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 광경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놀자, 놀. 자. 놀. 자."

  울음을 삼키고 내쉬는 호흡마다 나오는 말은 '놀자'라는 애원이었죠. 아, 그 모습을 보고만 있는 지금의 저는 귀여운 마음마저 들지만 아이가 어릴 적에 눈물이 뚝뚝 떨어질까 눈에 힘을 주며 돌아섰던 그날이 포개지면 미안하고 슬픈 감정이 앞섭니다. 그리고 출근을 해서 오전 내내 육아와 일 중 '뭣이 중한데'라며 스스로 자책을 하게 되지요. 엄마의 모든 것을 들려주기에 아직 아이에게는 이해되지 않는 게 너무나 많은 세상입니다. 이제 우리 집 춘기는 세상 전부는 아니지만 십분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대화도 잘 통하고 말의 이면도 볼 줄 아는 아이가 되었지요. 그리고 엄마인 저는 워킹맘, 전업맘을 거쳐 다시 워킹맘입니다. 첫 출근을 하던 날, 9개월이 된 아이에게 좋아하는 그림책을 미끼로 삼으며 책에 푹 빠진 아이의 등 뒤로 살금살금 '배신의 출근'을 했던 그 시절은 좋든 싫든 다시 오지 않을 시간으로 지나갔고요.  

  

  이제 우리 아이는 '엄마, 잘 다녀와'라며 웃으며 인사할 줄도 알고, 때로는 말이 너무 많아 시끄럽다며 외출을 권하기도 하지요. 지금은 웃으며 '안녕'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아파트 주차장에서 '놀', '자'라며 울던 아이의 엄마처럼, 저녁이면 다시 만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아침마다 무거운 마음으로 '안녕'을 말했지요. 그러나 이제 헤어짐이 가벼워졌다고 해서 마냥 일하기 좋은 시절이 온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요일마다 다른 아이의 일정에 맞게 끼니와 간식을 챙겨야 하고, 제시간에 출도착 하는 성실한 운전기사가 되어야 하는 무거운 임무가 새로 생겼거든요. 단언컨대 메아리처럼 자꾸만 귓가에 울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담고 출근할 때의 무거운 마음과 한 치의 오차와 실수도 없이 많은 임무를 해내야 하는 지금, 무엇이 더 무거운 지는 절대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아마 양팔저울은 수평을 이룰 것 같아요.


  도대체 워킹맘에게 일하기 좋은 때란 언제일까요?

  과연 그런 날이 있을까 의심이 들어 지난주 내내 생각해 보았지만 아이가 어렸을 때인지, 초등학교에 입학한 다음부터인지, 중고등학교 시절인지, 대학교까지 보낸 다음인지 결론을 내지는 못했어요. 그저 제 주변 엄마들을 떠올려보니 어떤 역할이든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모습만 생각이 났어요. 그러니 엄마에게 일하기 좋은 시기란 결코 없어 보입니다. 삶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지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집과 일터를 오가며 자신을 글자가 빽빽한 문서와 땀방울 등에 녹여내고, 가족의 든든한 보금자리를 지켜내야 되는 역할이 주어지면 모두의 안식처를 자처하며 자신과 가족의 삶을 정성껏 돌보지요.


  생각을 거듭할수록 감사한 것은, 운명의 강을 흐르듯 살고 있지만 피곤하고 귀찮더라도 일단 일터로 가면 그곳에서는 늘 기쁜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매일 쳇바퀴를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일터의 모든 순간이 빈틈없는 행복으로 느껴지는 것은 큰 복이라고 생각이 되고요. 어떤 일이든, 일을 하는 여자로서는 외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활기가 넘치고 마음을 다해 할 수 있는 일이 주어진 것과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요.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고귀하게 지켜낼 소명에 대한 믿음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일하는 엄마는 때때로 외롭습니다. 지금도 식구들이 아침을 먹고 싱크대 안에 놓아둔 그릇과 접시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식세기(식기세척기) 이모가 있으면 외로울까,라는 우스갯소리를 살포시 얹어두며 각자의 자리로 떠난 식구들의 뒤를 따라 일하는 엄마도 얼른 설거지를 하고 집을 나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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