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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픽플 Apr 12. 2021

단편영화 리뷰 <아토즈:선악의 모든 것>

미스터리어스함으로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는 재능

 

살면서 가장 크게 저질러본 일탈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일탈까지 온 이유들은 무엇인가?


 

굼뜨고 어리숙해 보이는 경장 주현은 신경 쓰이는 일이 많다. 칠순이 된 어머니가 생일을 맞아 주현을 보러 올라오지만, 친구들과 놀러 간 아내는 연락이 잘 되지 않고 명품가방 산 것을 자랑한다. 한편 소속 지구대 경감은 그에게 멧돼지 순찰을 나가라 하고, 별 수 없이 그는 어머니께 전화해 생신을 함께 보내지 못할 것 같다고 하며 집으로 돌려보낸다. 



멧돼지 순찰을 하던 중 새로 들어온 후임이 업무가 어찌 진행되고 있나 묻는 확인 전화를 하고, 그는 은연중 자신이 무시받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순찰 중 서울에서 내려온 휠체어를 탄 소녀를 마주하고, 무언가 맥을 짚는듯한 그녀의 말에 주현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들을 견디고 있는 중이라 속마음을 내뱉는다. 사진을 찍고 싶어 하지만 카메라를 집에 두고 와서 사진을 찍지 못하는 그녀. 집에 갔다 오면 해가 질 것이라는 말에 안타까운 마음이 든 주현은 대신 카메라를 가져다주러 그녀의 집으로 향한다. 


그녀의 집은 이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박스들이 쌓여있고, 가구들 위로는 천이 덮혀져 있다. 방에서 카메라를 꺼내 나가려 하는 순간 아내의 문자가 오고,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의 생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다. 기분이 상한 주현은 우연히 아내가 낮에 보냈던 사진에서 유리에 비친 낯선 남자의 실루엣을 발견하고 감정이 급변한다. 아내가 가방을 결제한 곳에 전화를 걸어 남자와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자리를 뜨려 하는데 다시 후임에게 전화가 와서 멧돼지 순찰은 취소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를 쏟아낸다. 그리곤 누군가로부터 집으로 전화가 오는데,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했던 소녀마저 자신에게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는 여태 참아왔던 모든 감정들을 쏟아낸다.



<아토즈: 선악의 모든 것>(이하 아토즈)는 언뜻 평범한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릴러극으로 진행할 것처럼 보인다. 메인 플롯의 흐름보다 상징적 이미지에 취중 한 영화는 관객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대사, 미장센을 보여준다. 풀밭에 죽어있는 개구리나 흰옷을 입은 소녀, 정신병원처럼 새하얀 그녀의 집, 그가 마시는 술과 선악과처럼 보이는 사과, 그리고 후반부의 신부와 노인의 에피소드까지. 영화는 인간은 악함을 타고남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의해서 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짧은 러닝과 제한된 예산으로 담기엔 메시지는 아주 거대하다. 때문에 비록 상대적으로 아쉬운 사건의 스케일과 플롯 구조에서 허점이 존재하지만, <아토즈>가 가지고 있는 힘은 되려 플롯의 빈 공간과 메시지들이 겹쳐지며 나온다. 그 빈 공간들을 통해 미스터리한 사건, 미장센, 대사들에서 뿌려놨던 상징들이 조합되어 관객에게 하여금 사유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힘 있게 만든 건 주민찬 배우의 연기다. 짧은 러닝타임에 정당한 인과 없이 캐릭터가 변화하는 걸 보면 보통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민찬 배우는 주현의 어리숙한 모습부터, 사건을 겪으며 신경질적이고, 넋이나 이중적 모습들을 내공 높은 연기력으로 보여준다. 거기에 능숙한 사투리는 연기에 감칠맛을 더한다. 미스터리어스 한 분위기에 더불어 조연들과의 합 역시 한정된 로케이션에서 올 수 있을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이 영화를 보고 떠오른 건 크리스티안 문쥬 감독이다. 단편에서 다루기에 너무 큰 메시지라, 이것이 더 다듬어져 장편 화가 된다면 쉽게 보지 못했던 예술영화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편영화 <아토즈:선악의 모든 것>은 엔픽플 오리지널 작품으로 엔픽플 가입 후 바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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