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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픽플 Apr 20. 2021

단편영화 리뷰<파랑만장>

아기자기함 속에도 잃지 않는 긴장감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수식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른들이 다룰만한 무거운 소재들을 아이들의 시선에서 풀며 판타지적인 요소를 더불어 캐주얼하고 독특한 매력을 살린 작품들을 볼 때 자주 쓰는 말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들처럼 말이다. <파랑만장>은 동화라는 말은 어색하지만, 성인들의 전유물인 '비아그라'라는 소재와 이혼이라는 무거울 수 있는 상황을 아이의 시선에서 끌어가는 코미디다. 


 타란티노의 영화에서 봤을법한 레트로 한 느낌의 타이틀과 음악으로 영화가 어드밴처 물처럼 흘러갈 것처럼 보인다.


철이는 엄마가 아빠와 이혼을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울해한다. 그는 썸(!)을 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 샤론과 한강을 걸으며 유튜브 브이로그 찍는 걸 도와준다. 샤론이 혼자 유튜브를 찍는 동안 혼자 앉아있는 철. 우연히 옆에 앉은 덩치 큰 남성의 통화내용과 전단지를 보고, 부부관계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약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통화하는 와중 경찰들의 습격으로 남자는 도주하게 되고, 철은 그가 도망치다가 흘린 약 한통을 줍는다. 그리고는 부모님의 이혼을 막기 위해 섀론과 함께 약을 먹일 방법을 강구한다.



잘 만든 영화들은 연기, 연출, 촬영 등 대부분의 파트에서 흠잡을 곳이 없다. <파랑만장> 역시 그렇다. 영화에 칭찬을 하려면 정말 많은 부분들이 있겠지만, 가장 칭찬하고 싶은 지점은 짧은 컷들로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철이가 부모님이 이혼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해주는 짧은 인서트 


스토리에서 철이가 엄마 아빠에게 약을 먹인다는 설정은 쓰기엔 쉽지만, 그걸 물리적 행위로 옮기는 건 어렵다. 철이는 아빠가 자는 사이에 억지로 약을 먹이려 하지만 실패한다. 그 후 철이가 샤론과 머리를 굴려서 떠올린 방법은, 약을 갈아서 아빠가 섭취하는 비타민에 넣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자칫 잘못 연출하면 단순히 유치하거나, 비약적으로 보이기 쉽다. <파랑만장>에서는 철이가 아이스크림 껍질을 까는 부감 쇼트와 아빠가 비타민을 요일별로 나누어 통에 담는 모습을 같은 구도로 촬영하여 리듬감과 만든다. 그 후 관객은 단순하게 정보전달과 리듬으로만 받아들일 법한 이 컷들을 통해 머릿속에 아빠는 비타민을 먹는다는 설정을 인지시키고, 추후 비타민에 비아그라를 끼워 넣는다는 설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끔 한다.


아이스크림을 까는 철의 부감 샷
같은 구도에서 비타민을 분배하는 아빠


그리고 자연스레 아빠의 비타민 쇼트를 회수하고 난 이후에는 혼자서 먹던 길쭉한 더위사냥을 샤론과 나눠먹는 장면으로, 썸만 타던 둘의 관계가 진전될 것 같다는 암시를 남기며 회수를 한다. 



영화에는 철, 엄마, 아빠, 샤론을 제외해도 꽤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학습지 선생님, 의사, 간호사, 비아그라 판매원, 형사들, 화목한 가족들 등. 많은 인물이 나오면 보통은 모두 좋은 합의 연기를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데, <파랑만장>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캐릭터의 경중을 떠나 모두 각자의 역할에서 해야 할 웃음 포인트들을 살리며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인다. 


현실적이면서도 코미디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려준 조단역 배우들


유머러스함과 사랑스러움을 지니며 영화를 스릴 있게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이 영화는 연출과 색감, 캐릭터들의 매력들이 모두 조화로워 단편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게 한다. 매번 너무 겉멋 넘치거나, 무겁기만 한 영화들 사이에 머리를 식히며 기분전환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좋은 영화였다. 


*단편영화 <파랑만장>은 엔픽플 오리지널 작품으로 엔픽플 가입 후 바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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