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를 재현하려는 마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많은 것들이 빠르게 변화하며 삶은 더 가파러졌고, 사람의 온정을 느낄만한 사건 역시 만나기 어려워졌다. 영화를 포함한 영상매체는 그 사이 시네마스코프처럼 좌우가 넓은 화면비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고, 내용들은 좀 더 자극적인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첫 출근>은 이런 정형화된 것들을 따라가지 않고, 되려 예전 느낌을 재현함으로써 향수를 건드리는 영화다.
몇 년간의 고생 끝에 겨우 합격한 직장의 첫 출근이 얼마 남지 않은 새벽. 여자는 키우던 작은 강아지가 아파 전화로 전 남자 친구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거절당한다. 도심을 뛰어다니며 여러 동물병원들의 문을 두드려보지만, 모두 문을 닫은 상황. 운 좋게 한 동물병원 의사와 전화가 연결되지만, 그 역시 자신의 병원 앞에 강아지를 그냥 두고 가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말을 한다. 여자는 첫 출근과 아픈 강아지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강아지를 병원 앞에 두고 떠난다. 여자가 떠난 후 동물 병원 앞을 지나가던 노숙인이 그 강아지를 발견하고, 수상쩍은 눈으로 쳐다본다. 그러던 노숙인은 무언가 결심한 표정을 짓더니, 길거리에 있는 벽돌을 주워와 무언가를 내리친다. 그 후 비극으로 끝나듯 크레딧이 올라오지만, 마치 라디오 사연처럼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반전이 시작된다.
이 영화는 라디오 사연에 다다라서야 보여주고 싶었던 지점들이 모두 보인다. 영화는 1.33:1의 비율로 오래된 TV 프로그램이나, 영화, 뮤직비디오 등에 자주 사용되었던 화면비를 보여준다. 또 '라디오 사연'이라는 소재 자체가 부르는 향수와 질감과 사연이 가지고 있는 따듯함은, 마치 감독이 과거에 느꼈던 감정을 그리워해 재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는 늦은 밤 돌아다니며 세상의 차가움을 느낀다. 어느 곳 하나 마음 놓고 강아지를 맡길 사람이 없다는 것과, 사정을 앎에도 책임은 져주지 않는다는 의사의 말, 냉혹하고 아프기만 한 엄마의 잔소리. 오랜 기간 고생해서 얻은 첫 직장, 첫 출근 앞에 흔들리는 자신까지. 냉정하고 차갑기만 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관객은, 수상하게 걷는 노숙인을 쉽게 의심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는 경계할만한 외형과 달리 별것 아니지만 따듯한 손길을 내민다. 그 행위는 눈으로 보이지 않지만 제3자의 목소리가 되어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영화 속 이야기를 시작하고, 사건을 만들고 매듭짓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책임감 있게, 단순히 예술이라는 명목 하에 저질러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변정욱 감독은 그가 시작한 일에 책임을 진다. 그것도 아주 따듯하게. 그것은 단순히 영화 내적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엔 아직 따듯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말이 아닐까.
*2021할리우드 독립영화제 단편영화 드라마 부문 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