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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구 Nov 01. 2021

“소비자보호”한다고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제목이 좀 모순적이다. 소비자보호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니... 그렇다면 ‘소비자보호’라는 단어를 말을 바꿔야 되는 것 아닌가? 의미 자체가 혼란스러워진다.

어쨌든 현실 세계에서 소비자보호라는 말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이고 다수 사람들은 소비자보호를 하면 당연히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만일 소비자 보호를 한 결과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은 보호를 받은 것일까?     

이 글은 바로 소비자를 보호한다고 열심히 뭔가 했는데 결과는 소비자에게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업무를 담당하며 한 일이기는 하지만 홈쇼핑, 인터넷 상거래 등의 경우 상품 수령 후 1주일 간 청약철회권(반품 환불을 받을 권리)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물론 소비자에게 마음 편하게 쇼핑할 기회를 제공하는 점에서는 확실히 이익이 된다. 하지만 청약 철회로 인한 재고 처리 또는 재판매로 인한 비용은 그만큼 가격에 전가되어 결국 소비자가 부담하게 된다.     

 그러니 소비자 보호라고 하지만 실은 소비자들에게 자기 부담으로 철회권을 갖도록 법으로 강제한 셈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 법령에 예외 규정을 두어 청약철회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열거하고는 있다) 물론 그렇다고 청약철회권의 보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런 제도를 통해 판매자들이 소비자를 현혹해 엉터리 상품을 팔아 놓고는 나 몰라라 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도 있고 충동적인 소비자들이 경솔하게 구매한 경우 실수를 시정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공짜는 아니지만... 다만 이미 해당 상품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소비자의 입장이라면 조악한 상품인 것은 알지만 싸서 구매할 수도 있고, 신중하게 판단해 구매한 것이라 반품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만일 그런 소비자보호 제도가 없다면 적어도 상품가격이 10% 이상 싸졌을 텐데 그런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만일 항공티켓에 대해 그러한 규제를 한다면 정가의 1/2에 못미치는 저가 항공권들은 자취를 감추고 오히려 소비자들의 부담은 증가하게 된다. 만일 극장표도 그런 조건으로 한다면 취소 불가 조건의 싼 표도 판매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필자가 담당자로 있을 때 조치한 것이지만 과거에는 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을 때 근저당 설정수수료나 감정 평가수수료를 무조건 소비자 부담으로 했었다. 필자는 소비자에게 일방적으로 부담을 주는 약관을 무효로 하고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도록 시정한 기억이 있다. 그 후에 보니 금융권은 시정권고를 지키는 시늉을 하면서 은행이 부담할 경우 이자율을 현저히 높게 해, 사실상 소비자가 근저당설정 비용 등의 부담을 선택하도록 강요한 것이 문제가 되어 다시 시정조치를 받게 되었다. 이 경우 누가 부담하느냐 보다 더 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부담하도록 선택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만일 은행이 부담할 경우 이자율이 높아지거나 중도 상환 수수료가 발생한다면 대출 전에 그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리고 소비자가 직접 등기할 경우 은행의 협조의무도 부과해, 소비자에게 비용을 비교 선택할 기회를 줄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규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감정평가 같은 경우는 업체를 선정한 측이 부담하도록 하는게 정당하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사전에 수수료 부담에 따른 이자율이나 중도 상환수수료의 옵션을 소비자에게 합리적으로 제공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은행이 부담하도록 하는 규제만으로는 결국 그 비용만큼을 이자율이나 중도 상환수수료 등에 전가해 소비자에게는 실질적인 이익은 없게 된다.     


최근 금융상품의 불완전 판매를 막는다고 한참 장황한 설명을 의무화하고 수백만원 펀드 상품 하나 투자하는데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되고, 다시 소비자가 바쁜 시간에 전화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투자한 것인지를 확인한다고 하자. 대략 수익률은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는 1천만원 투자라면 1년에 30만원 내외의 수익인데 금융권 높은 급여를 받는 직원이 30분을 소비하는 것은 3-5만원의 비용이고 본인이 소비한 시간까지 계산하면 투자 수익의 1/3 가량이 거래비용으로 나가 버린다. 그 것은 마치 어떤 식품에서 식중독이 발생했다고 하여 식사 전에 30분쯤 설명 의무를 부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만일 어떤 제품의 무상보증기간을 평생으로 하고, 절대로 조금이라도 건강에 위험이 있는 성분은 쓰지 못하게 한다거나 원자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한 건물을 지으라고 강요하면 소비자보호가 될까? 어떤 기업들은 “품질이나 안전은 양보의 대상이 아니다” 라고 선전하지만 사실 사기에 가까운 선전문구이다. 안전이든 품질이든 비용이 드는 것이고 어떤 수준이 최적인지는 비용과 소비자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그렇게 소비자보호를 한다면 그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소비자들은 누구도 구매할 수 없는 사치품을 만드는 것이다.     


더 심한 것은 약자를 보호한다며 임차인이 돈을 안내도 임대인이 쉽게 나가게 할 수 없도록 한다거나, 돈을 대출한 뒤 안갚고 사라져 버려도 쉽게 받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규제들을 소비자보호란 명목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규제들은 대부분 소비자들 특히 약자인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준다. 임대인들은 적어도 1년치 정도의 보증금을 내지 않으면 세를 안주려 할 것이고, 제도권 금융회사들은 신용이 불확실한 사람들에게는 단돈 1원도 대출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현실이 그대로 되어 있다. 만일 정말로 저소득층을 도울 생각이 있다면 그냥 이재명후보처럼 돈을 풀어 도와주는게 그나마 낫다. 다른 정직한 약자 소비자들의 피해는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소비자 선택권을 무시하거나, 계약관계의 신뢰성을 해치는 소비자보호는 전혀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것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쉽게 그냥 당장 눈에 보이는 소비자 부담을 덜어 주거나, 권리를 늘려 주는 것을 소비자보호라 생각하고 그러면 소비자에 이익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런 비용이 최종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백화점에서 매장을 쇼핑에 편리하게 설계하고, 청약철회 기간을 1개월로 길게 잡고, 친절하게 안내하는 것도 소비자보호지만 그 비용은 소비자의 부담이다. 그러나 그런 (소비자보호) 서비스를 받고 비용을 지불하든 다른 싼 곳에서 구입하든은 소비자의 선택이다. A/S에 대한 신뢰를 갖고 삼성전자 브랜드의 전자제품을 사든 혹은 비슷한 사양의 중소기업 제품을 30% 정도 싸게 사고 간혹 문제 발생시 수고를 각오하든 역시 소비자의 선택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주고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쓸데없이 자상한 척하면서 정부가 강제하는 소비자보호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피해를 주고 소비자보호를 구실삼아 완장차고 기생하는 집단을 키울뿐이다.     

 즉, 일부 소비자가 약자라며 대단한 일 하듯 도와주는 선심성 소비자보호는 다수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그런 일은 그냥 자선단체에 맡기든가 저소득층 지원사업으로 해야지 기업에게 강요하는 것은 소비자 피해를 키울뿐이다.     


소비자보호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려면 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비자들에게 거래 비용을 줄여주는 것일 때 효과가 있다. 거래 비용이란 것은 소비자들이 올바른 혹은 만족스런 선택을 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을 줄여 주는 것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그런 정보를 해석하는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 주는 것. 혹은 잘한 선택인 줄 알았는데 사업자가 거짓이나 약속을 안지켜 피해를 입었을 때 피해보상에 드는 비용을 줄여 주는 것 등 외에는 실제로 소비자보호가 소비자의 이익이 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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