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성구 Nov 05. 2021

“소비자보호”, “소비자권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소비바보호는 소비자의 최적 선택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것

학문적으로 소비자보호는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해(혹은 침해를 막아) 소비자 피해를 막는 것으로 이해되고, 보통 현대적 의미의 소비자 권리는 1962년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특별 교서에서 밝힌 ①알 권리, ②안전할 권리, ③의사를 반영할 권리, ④선택할 권리를 의미하고, 이후 소비자 관련 기관, 단체에서 ⑤피해 보상을 받을 권리, ⑥교육을 받을 권리, ⑦단체 활동을 할 권리 ⑧쾌적한 생활을 할 권리까지 추가하고 있다.     

 그런데 필자가 앞서 “소비자보호”에 대해 소비자를 보호한다고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썼는데, 그렇다면 소비자들은 매우 혼란스럽게 될 것이다. 보호받는데 이익이 되지 않거나 손해볼 수도 있다니? 시민단체, 국회의원, 관료들까지 모두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고, 어떤 문제든 늘 대립하고 싸우는 여권과 야권, 진보와 보수가 큰 이견 없이 합의하는 것이 “소비자보호”란 것인데 그런 “소비자보호”가 실상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엉뚱한 개념에 사회적 합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비자보호”라는 개념을 악용해 이익을 챙기는 무리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필자가 규제개혁을 담당할 때에도 소비자보호의 뒤에 숨어 기생하는 집단들과 싸워야 할 일이 많았다. 우리 사회에는 “소비자보호”를 구실로 규제의 담벼락을 치거나 법적 의무를 만들어 이익을 챙기고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주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     

어떤 경우에도 양보할 수 없다는 식으로 성역화된 안전 문제에 특히 많은 규제들이 존재하고 그런 주장대로라면 사고는 나지 않아야 하지만 늘 사고는 발생한다. 물론 규제가 부족해 그렇다고 변명하겠지만 현재 안전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일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의 방식대로라면 안전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해결된다고 해도 안전사고 이상의 부담을 국민들에게 준 뒤에야 가능할 것이다.     

최근 금융상품 불완전상품 판매로 사건이 터지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책임 회피를 목적으로 그런 마치 법률이 없어 피해가 발생한 것처럼 국민들을 속이기 위해 거의 모든 국민을 상대로 고문에 가까운 상품 강의를, 그것도 별의미 없는 내용으로 대부분을 채워 듣도록 강요했다.     

이런 패악에 가까운 만행이 가능한 것은 바로 시민단체든, 국회의원이든, 관료든 그리고 여야, 진보.보수에 관계 없이 “소비자보호”란 한마디에 합의하고, 반기를 드는 것은 기업유착으로 오해받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시절 읽던 “벌거벗은 임금님”의 나라에서 재단사들이 멍청한 사람에게는 안보이는 좋은 옷을 만들어 바친 것처럼, 새로운 규제로 이익을 챙기려는 집단들이 “소비자보호”라는 이름으로 소비자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소비자보호”의 개념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제까지의 소비자보호, 그리고 소비자권리의 개념이 완전히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런 개념들을 좀더 깊이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개념들에 입각해 만들어낸 “소비자보호” 제도가 왕왕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기는커녕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소비자보호”를 막연히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 혹은 어디까지를 말하는지 가늠하기도 어려운 미사여구들 가득 차버린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이상에서 벗어나 좀 더 경제학적이고 법학적인 정의를 내려 보려고 한다.     

그렇게 접근하면 “소비자보호”는 소비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회복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줄여주는 법적 제도적 장치로 재정의할 수 있다.     

만일 소비자보호를 아주 폭넓게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행위로 한다면 국방이나 경찰활동, 환경보호, 교통.통신망 투자 등 정부 활동은 물론 기업이 시장을 지배하거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좋은 상품을 공급하는 행위까지 모두 소비자보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의미를 좁히기 위해 “소비자보호”를 소비자의 권리를 보장해 소비자 피해를 막는 것으로 정의한다고 하더라고 어디까지가 소비자권리인가도 이론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소비자경제학 분야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는 “소비자보호”의 개념, 일반인들이 이해하는데 좀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소비자 실패”- 좀 더 구체적으론 소비자가 선택을 잘못(실패)해서 오는 시장의 결함을 치유하기 위한 활동을 “소비자보호”로 정의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생산자가 좋은 상품을 싸게 공급하지만 소비자들의 지식정보나 신뢰가 부족해 결국 생산자는 상품을 제대로 팔지 못하고 퇴출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런 경우를 우리는 소비자의 정보 부족에 의해 소비자가 선택을 잘 못해 시장이 효율적인 공급자를 선택하는데 실패한 경우로 볼 수 있고, “소비자 실패”에 의해 시장 실패가 발생한 경우라고 정의한다면 “소비자보호”는 바로 이러한 소비자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활동이고 법적으로는 그런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필요한 권리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걸음 나아가 그러한 소비자보호활동에도 비용이 소요된다. 때로는 실패라고 하지만 실패가 아니고 기술적 경제적 제약상 어쩔 수 없는 경우에 해당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필자가 주장하는 “소비자보호”란 바로 소비자가 최선의 선택(혹은 잘못된 선택을 수정.회복)을 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을 최소화하는 활동으로 정의하고, “소비자 권리”는 소비자들이 최선의 선택을 최소의 비용으로 하기 위해 필요한 법적 권리 – 종래의 근대민법 혹은 계약법상 소비자 권리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추가적으로 필요한 권리로 정의하려는 것이다. 예컨대 종래 민법상으로도 사기, 허위 과장광고로 속여 물건을 팔거나 허술한 상품을 팔아 피해를 주었다면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손해 배상을 받으려는 소비자가 판매자의 고의나 과실을 입증해야 하고, 또 판매자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는 없어 피해구제가 어려웠던 것을 입증책임을 판매자에게 주거나 판매자에게 정보제공의 책임을 부과하는 것.     

소비자보호와 관련해 이런 정의가 갖는 편익은 거의 모든 소비자 문제에 포괄적으로 적용될 수 있고 또 쟁점의 합리적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왜 안전규제를 하는지, 왜 계약조건을 규제하는지, 왜 상품설명의무를 부과하는지, 왜 소비자 피해구제를 조력하는지, 왜 단체 활동을 지원해야 하는지까지... 물론 어떤 경우에는 필자가 정의한 소비자보호의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가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런 분야들은 전통적으로 “소비자보호”로 부르지 않던 것들을 최근들어 확대한 경우다. 예컨대 환경, 노동 등과 관련된 윤리적 소비 문제 같은 분야들이다.     

다만 이런 분야들에서는 무엇이 소비자에게 최선의 선택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질문을 해야 한다. (예컨대 소비자들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데도 사회를 위해 더 비싼 그린 마크가 붙은 상품을 써야 하는지, 건축비용이 에너지 절약비용을 훨씬 초과하는데도 탄소제로 건축을 선택해야 하는지... 요컨대 개인적 선택이 사회적 최적 선택과 괴리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이념적으로 수정시키는 문제들을 “소비자보호”의 범주에서 탐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까지를 포함해서)     

물론 환경 문제와 같이 직접적으로 개별 소비자의 이익 관련되지만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 전통적 “소비자보호”의 개념의 단체 활동이나 필자가 주장하는 거래비용의 관점에서도 다수 소비자들간의 비용 분담과 관련된 문제로 설명할 수 있지만, 윤리적 혹은 가치 소비라는 이름으로 특정 집단이 추구하는 사회적 최적 선택의 문제를 “소비자보호”라는 범주에서 해결하려는 것은 이 역시도 “소비자보호”는 바람직한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용하려는 또 다른 시도로도 보여진다. 

작가의 이전글 “소비자보호”한다고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