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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각보자기 May 24. 2022

콘텐츠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고작 에세이 몇 편을 쓴 주제에 절필해야겠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한 말이지만, 실제로 얼마간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전시 환멸’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해온 밥벌이의 중축은 홍보용 콘텐츠였다. 이런저런 콘텐츠를 만들거나 만들어지게 하는 일이었다. 크게 보면 마케팅의 영역이다. 이 일을 할수록 좋은 콘텐츠의 기준이 높아만 졌다. 어떤 때는 온라인 마케팅의 시대가 왔음을 통탄하기도 했다. 내가 언론홍보로 이 업계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라떼는) 콘텐츠란 모름지기 양질의 정보를 담아 일간지의 ‘읽을거리’로서 자격을 갖춰야만 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퍼포먼스에 힘이 실렸다. 콘텐츠의 질보다 노출 수치가 더 유의미한 기준이 됐다. 정보의 평등 측면에서 검색 엔진이 세상에 기여한 바는 있겠으나, 모든 이가 콘텐츠 생산에 뛰어들 수 있게 된 세상에서는 콘텐츠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퀄리티와 윤리 의식이 옅어졌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콘텐츠’라 불리기 위해서는 만든 이의 정성이 있어야 하고, 내용이 세상과 독자에게 정보나 재미나 감동이라도 줘야 하며, 무엇보다 다뤄지는 대상이나 보는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고 믿어 왔다. 스스로 그런 기준을 갖지 않으면 누구나 콘텐츠를 만드는 시대에 굳이 이 일을 직업으로 삼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밥벌이 현장의 콘텐츠뿐만이 아니었다. 개인으로서도 콘텐츠를 만든다면 좀 더 알맹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마케터들이 SNS를 통해 퍼스널브랜딩을 하고, 사이드잡도 얻는 게 부러우면서도 개인 SNS를 적극적으로 할 명분이 없었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로 디지털 쓰레기를 더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과하게 다는 해시태그도 우스웠다. 좋은 콘텐츠라면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



그렇다. 나는 좀 더 우아한 콘텐츠 생산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그 콘텐츠가 무엇일까를 오래 고민했다. 단순히 감정을 나열하는 ‘일기’나, 행불행을 전시하는 ‘일상 기록’ 말고, ‘콘텐츠’라고 이름 붙일만한 것.

내게 그것은 ‘엄마’였다. 그마저도 자신이 없어 기획안을 철저하게 쓴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브런치북으로 엮은 글(엄마에 대해 쓴 10편의 글)은 기획안 덕분인지 목적과 주제를 명확히 해 공들여 쓸 수 있었다. 두 달 반 동안 매주 같은 시간에 글을 발행했고, 얼마간은 작가마냥 글쓰기에 골몰했다. 나도 제대로 된 개인 콘텐츠를 만든다는 자신감에 도취된 시간이었다.

이렇게 나름의 성취함을 만끽하자 여세를 몰아 올해는 ‘일’을 주제로 쓰고자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개인적 감상 외에 일에 대한 전문 정보 전달도, 일터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묘사하기도 쉽지 않았다. 일을 글감으로 쓰기에 역시 나의 직무 전문성이 부족한가 아쉬워하던 찰나, 무엇이 글을 완성하지 못하게 하는지 깨닫는 계기가 있었다.



설날, 글 선물을 받은 엄마가 기뻐하며 보인 반응은 의외였다. 그 자리에서 제본을 펼쳐 바로 읽더니, 며칠 동안 계속 글을 읽었다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도 여러 번 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다. 마음이 울컥한 나는 일기장에 ‘엄마는 언제까지고 이 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나는 언제까지나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라고 썼다. 가슴에서 우러나온 진심의 문장이었다.

며칠 후 이 일기를 초안 삼아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을 때, 엄마가 보인 반응이 왜 의외였는가를 설명한다는 목적하에 엄마의 늙음과 무지를 구구절절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엄마는 국민학교를 간신히 나왔고, 사는 동안 책 한 번 읽은 적 없는 무지한 사람, 그런데도 그게 부끄럽다는 생각도 한 적 없는 교양 없는 사람...

엄마를 그렇게 묘사할수록 엄마가 내 글을 읽었다는 행위의 의미가 커지고 감동이 배가 된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그런 문장을 씀으로써 결핍과 가난 속에서도 이만큼 괜찮게 자라서 엄마를 생각하는 글도 쓰고 있다는 자아도취를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애초에 글을 쓴 까닭은 내가 엄마로부터 받은 감동을 전하기 위함이었는데, 나는 그와 상관없이 엄마를 대상화하며 쓸데없는 말을 과도하게 펼치고 늘리고 있었다.



살면서 처음 가져 본 내 글에 대한 자각이었다. 싸이월드 시절부터 인스타그램까지, 가볍게 쓴 글은 별생각 없이 하는 말들이었으니 문제랄 게 없다고 생각했고, 고민하고 쓰는 글은 잘 검열한 콘텐츠니 문제될 게 없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든, ‘표현되는 모든 것’이 문제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결국 ‘내 콘텐츠’는 자격과 자질을 갖췄을 거라는 착각이 보기 좋게 무너졌다. 결국 나도 무언가를 전시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었다. 나의 결핍, 나의 가난, 나의 효심, 나의 도덕성, 나의 지적 허영... 환멸을 느꼈다. 채널이 무엇이든, 글이든 말이든 사진이든, 공개된 곳에 무엇을 발행한다는 게, 그렇게 나를 표현한다는 게 결국 '자기 우월감'의 다른 말은 아닐까 생각했다.



따져 보면 우리는 콘텐츠로부터 얼마나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로부터 ‘아, 이제 스파(SPA) 옷 같은 거 그만 사고 싶어. 없어 보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스파 옷’에 대한 어떤 상(像)을 형성하고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스파 브랜드에서 옷을 살 때 그 말을 떠올린다. 개의치 않았던 말에도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물론 화자에게는 어떤 악의도 없었겠지만.  

문득 내 글이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성실했던 부모를 가진 내가 다정한 부모를 갖지 못한 결핍에 대해 쓰는 동안, 그마저도 갖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안겨주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도시 빈민이 되느니 고향으로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말했던 나는, 어떻게든 서울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는 누군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그즈음 홍은전, 온유, 김지혜 등 약자를 섬세하게 표현해 내는 저자들의 글을 읽은 터라 내 글은 더욱 부족해 보였다.



두려움에 압도당한 나는 쓰지 않았다. 악의 없이 쓴 글이라도 다루는 인물을 대상화하거나, 읽는 이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설령 상처받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위로받는 누군가를 위해 계속 쓰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내 글은 한 명에게도 상처 줄 수 없어. 내 글은 그래야 해, 그럴 수 없다면 쓰지 않겠어.’

어쩌면 내가 엄마와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건, 엄마만이 내가 상처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처 줘도 괜찮고, 왜곡해도 괜찮은 소재. 그래서 감히 ‘내 콘텐츠’라 자신했던 것인지도.






그렇게 약 3개월이 지났다. 쓰지 않는 게 좋은 대안은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모두가 두려움 때문에 표현하기를 멈춘다면, 세상의 모든 창작과 예술과 콘텐츠가 의미를 잃을 테니까. 표현이란 달리 말하면 저마다 다른 시선, 감성, 개성을 가진 개개인의 창조 욕구다. 그렇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가를 알 길 없었다. 그래서 어쭙잖은 자존심을 택해 아무것도 쓰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물론 지금 나는 자기표현이라는 이기적인 이유로 이렇게 또 쓰고 앉아 있다. 생애 처음 직면한 문제를 나름대로 정리하고 싶다는 욕심이 결국 ‘쓰는 두려움’을 이겼다. 이로써 이 고민은 3개월간 몰두한 하나의 글감이 된 셈이다.



역시나 쓰면서 내 생각의 논리적 모순을 파헤친다. 위의 스파 옷 예시는, 독자가 사리 분별을 하지 못한다는 전제를 깔고 한 가정에 가깝다. 주변에 물어보니 모든 이가 나처럼 타인의 표현으로 어떤 상을 만들지는 않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콘텐츠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삶의 주체적인 선택까지 누군가의 표현에 결부하는 것은 아니다. 콘텐츠를 수용하고 말고는 독자의 몫이라는 걸 잊고 오만했다.

또 누군가에게 의도적으로 상처 주는 콘텐츠라면, 독자는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질타를 할 지도 모른다. 혹여 의도치 않게 상처 준 글이라면, 나는 생산자로서 사과할 준비가 돼 있다. 엄마를 그렇게 묘사했다는 자각 후엔 결국 그 글은 뜯어 고치고 다시 쓸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즈음에 든 또 다른 생각은,


 ‘나 좀 자의식 과잉이었네’


내 콘텐츠는 달라야 한다니, 아니 내가 뭐라고? 지금의 나를 보라. 완벽하고 이상적인 콘텐츠를 만들 수도, 그렇다고 완벽히 그것의 생산을 포기할 수도 없다. 결국 나는 이런 수준의 사람이다.

그러니 그냥 쓰고, 종종 쓰고, 때론 뻔뻔하게 쓰고, 때론 사려 깊게 써보자. 

contents를 입에 익은 ‘컨텐츠’로 적는다고 그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의거해 ‘콘텐츠’로 교정한다. 내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은 앞으로도 고작 이와 같은 과정의 반복 아니겠는가.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헛된 믿음, 그것은 써보지 않았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표현한다는 건 상을 만드는 일이다. 프레이밍(framing)은 불가피하다. 모든 콘텐츠가 그렇다는 걸 홍보 일을 오래 해 온 내가 모를 리가 없는데, 나는 일터에서도 개인 작업에서도 그 자체가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프레이밍의 무게감이 두려워 도망칠 궁리가 아니라 더 주의를 기울이는 방안을 모색하고 싶다.

여러 날 고민한 ‘콘텐츠’라는 말을 ‘삶’, ‘일’, ‘관계’, 그 어떤  단어로 치환해도 성립하는 다짐이다.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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