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모두의 일이지, 나만의 일은 아닌데
마케터들의 정신 건강은 안녕할까?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회사를 다니는 대부분의 직장인이 힘들겠지만,
아니 사실 인간의 삶은 직업과 상관없이 그냥 힘들다는 게 통설이지만(?)
직업, 직무적으로,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마케터의 멘탈이 좀 더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를 고찰해 보았다.
기업의 목적은 우리 상품을 고객의 돈과 교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는 곧 교환 가치를 만들어 내는 마케팅의 역할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신상품이든, 영업 활동이든 '마케팅팀에서 의견을 줘라', '마케팅에서 주도해서 해봐라' 하는 일이 많다.
그런 지시에 거절할 명분은 솔직히 없다. 마케팅은 상품기획부터 영업, 광고 및 홍보까지 모든 영역에 발을 걸치는 개념이고, 무엇보다 고객의 니즈나 시장의 상황을 가장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R&R이 불분명한 회사에서는 모든 걸 마케팅에서 검토하라고 한다. 나도 한때는 그런 대접(?)에 자존감이 높아지는 듯 하고, 마케팅 뽕에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그냥 회사에 소속된 조직원 1일 뿐이라는 걸.
마케팅을 잘 하면 매출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마케팅을 잘 한다고 꼭, 반드시, 지금 매출이 잘 나온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마케팅 하나로 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면 마케팅팀 있는 곳은 다 사업이 잘 돼야지... 사실 성공의 7할은 운 아닌가?
그래서 마케팅, 마케팅 염불을 외워도 약간은 흘려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마케팅은 비즈니스의 큰 축이지, 모든 것은 아니다.
또 누구도 직접적으로 마케팅 탓을 하지 않는 조직이라고 해도, 책임감 있는 담당자라면 왠지 마음 속으로 나의 역할이 부족했나 꺼림칙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멘탈 관리를 위한 TIP
마케팅을 하는 목적(장기적인 브랜딩 전략이든, 단기적인 광고 집행이든)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이 브랜드 캠페인을 하는 목적이 '온라인상 버즈량을 늘리는 것'이 1순위였다면, 평가 역시 그 목적에 부합했는지를 우선해야 한다. 왜 이 캠페인으로 '매장에서 판매량이 늘지 않았느냐'라는 피드백은 적당히 흘려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런 목적이었다면 애초에 다른 방식의 캠페인을 기획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돈과 시간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집중해야 할 목적에 리소스를 써야 한다. 세상에 싸고 좋은 게 없듯,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 하는 것, 게다가 그걸 내가 마케팅으로 잡아 내겠다고 하는 것도 욕심이라는 걸 명심하자. 우리는 그냥 운이 왔을 때 잡을 수 있도록 이 직무에 최선을 다할 뿐, 내가 그 운(시장 상황)을 단기간에 바꿀 수는 없다.
내부적인 문서는 엉성한 형태로도 충분히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서 기능 할 수 있다.
하지만 마케터는 소비자에게 최종적으로 결정되고 정돈된 내용, 보기 좋은 이미지와 멘트를 전달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렇지 못한 아웃풋들이 야기하는 혼란과 기업의 이미지 실추 등을 생각하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런데 이제 내부에서 앞서 협의된 것과 다른 얘길 하거나, 최소한의 기본 자료나 소스도 없거나,
게다가 홍보나 광고에 부킹된 데드라인이 있다고 하면
여기서 똥줄타는 사람은 당연히 최종 메시지를 발신해야 하는 마케터다. (협업하는 어떤 팀도 마케터만큼 똥줄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마케터가 느긋한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마감에 앞서 예민해지는 건 덤이며, 디자이너에게 급하게 수정을 요청해야 하는 것도 은근 스트레스다.
남들의 SNS를 계속 들여다 보면 겪게 되는 정신적 피폐함은 익히 보도되고 있다.
마케터는 직업 현장에서도 알게 모르게 비슷한 데미지를 입는다.
내가 건강한 상태라면 괜찮지만, 몸과 마음이 지쳐 있으면 이런 업무 환경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소비 문화는 끊임없이 급을 나눈다.
그것이 처음에는 기술력이었다가, 브랜드(상표)였다가, 이제는 뮤지컬이나 전시회 같은 문화와 공간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 누군가의 고상한 취향이 가득한 피드를 보면 (혹은 그런 식의 예술 광고를 만드는 돈 많은 회사의 마케팅을 보면) 멋지고 부럽다가도 어쩐지 내가 초라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케터들에게 비교는 자연스럽다. 그러면서 위계가 생성된다. 시장과 타겟을 가르고 포지셔닝하는 마케터의 머릿속에서는 자연스럽게 그 위계에서 나는 어디쯤인가 반추하는 자아가 있을테니까.
마케팅은 고객의 '니즈'라는 이름 아래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도록 한다.
좋게 말하면 가치를 부여해 고객의 마음을 얻는 행위지만, 적나라하게 말하면 소비를 조장해 지갑을 여는 행위다. 솔직히 물질적으로 무언가가 대단히 더 필요하지도 않는 세상인데 말이다.
가끔은 모든 것이 풍족한 소비의 시대에 마케팅은 말 그대로 전쟁 같다. 그리고 이 전쟁은 브랜딩이 아닌 매출 관점으로만 마케팅을 접근하는 작은 회사일수록 더욱 직접적이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기 때문에
마케팅의 적나라한 목적(지갑을 여는 일)이 불편해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마케팅'보다는 '브랜딩'에만 관심을 두려 했고,
'고객의 마음을 얻는다'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마케팅의 정의만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다. 마케팅이 무언가를(소비든 참여든) 부추기는 행위라는 것을.
마케팅이 자신을 잠식하는 마케터들과 공유하고 싶은 글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 자체가 아니다."
우리 인스타 피드가 반응이 시큰둥하다고 해서, 누가 우리 온라인 광고를 클릭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 브랜드가 아직 듣보거나 쩌리라고 해서 마치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면 전문가로서 일을 할 수 없다.
나는 그냥 이 직무를 담당하고 있을 뿐이다. 회계팀이 회계를 담당하고, 물류팀이 물류를 담당하듯.
마케팅은 과정이자 기술이다. 수업을 받으면 실력이 나아질 것이며 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