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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제 Apr 03. 2021

몇 명의 친구

: 양자역학 친구


당신의 친구는 몇 명인가? 떠오르지 않을 수도, 너무 많아 손가락을 펼치고 있을 수도 있겠다. 본인은 고스란히 접혀있는 손가락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눈물 슥슥 닦고, 그래서 당신의 '진정한 친구'는 몇 명인가?



'친구'에 대해 심히 고찰해본 적이 딱히 없다. 어쩌다 만났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는 경우가 많듯이. 친구와 밥 먹으면서 한 번씩은 이런 대화 해봤을 거다. 그래서 내가 너랑 왜 친해졌더라?

음... 야 기억 안 나는데.

그냥 뭐... 우리가 좀 통하는 게 있었나 보다.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는데, 요즘은 친구 수에 집착하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나는 친구가 몇 명이고 어쩌고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결국 마지막에는 한 명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한 명은 부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친구 덕을 볼 수 있으니 좋은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친구를 많이 사귀라고 들어본 적은 없는데. 옛날 얘기 틀린 거 하나 없다고 했다. 친구가 많은지 적은지를 다 떠나서 '소중한 친구'에 대해 나의 얘기를 꺼내고 싶다.



정말 좋아하던 단짝이 있었는데, 단지 공부를 못하는 친구였다. 근데 그게 우리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공부를 잘하면 갑자기 우리의 관계도가 급상승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었다. 스케이트도 타고, 새로 나온 영화를 보며 웃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도 공유하며(나눠가졌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지냈다. 근데 어느 날 한 남자애가 나를 보더니,


"너 공부 잘하는 애였구나? 못하는 애랑 다녀서 너도 못하는 줄 알았어."


말을 들은 당시에 잠깐은 어린 마음에 '이게 잘못된 거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무례한 남자애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싶어졌었다.



그렇게 진정한 친구 한 명을 곁에 두었다고 기뻐하던 날도 잠시, 각자 다른 고등학교를 배정받아 더 이상 같이 지낼 수 없는 것에 대해 몹시 슬퍼했다. 헤어지기 전 겨울방학 마지막 날에 약속을 잡아두었는데, 약속 날이 됐을 때쯤엔 나의 몸집이 커져있었다. 키가 컸다는 말이 아니라 살이 쪘다는 얘기다. 아주 과감하게 찌워봤다 왜. 방학 동안 너무 신나게 놀았던 탓이었다. 사람이 살다가 이런 시절도 있는 법이지 하며 약속 장소에 나간 날, 그날 이후로 단짝 친구를 볼 수 없었다. 커져버린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했다. 마치 나의 내면까지 바뀌어버린 것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기만 하다. 어리다고 해야 할지 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둘 다 해당되는 거 같다. 이 글에서 소심하게 복수하겠다. 어리석은 친구야. 겉모습만 보고 나를 판단했던 친구, 결국 보여주기 식으로 나와 같이 다녔다는 사실에 깊은 상실감에 빠졌었다. 나의 내면은 관심 밖인 친구, 많아서 부러울까?



이후 고등학교에서는 우정에 대한 불신 때문에 적극적으로 교우관계를 맺으려 노력하지 않았다. 연이 닿는 대로 살아야지 했고, 감사하게도 먼저 다가와준 친구들 덕분에 나 포함 네 명이서 좋은 친구가 되기로 약속했다. 그중 한 명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었고, 한 명은 느린 나를 항상 기다려주었고, 한 명은 슬픈 나를 위로해주었다. 이것이 진정한 친구다. 많아서 좋은 게 아니라 진정성이 느껴지는 게 좋은 일인 거다. 내 비밀을 항상 입 꾹 다물고 지켜줄 친구가 있는가? 그런 친구 한 명과 연을 맺은 당신은 그 누구보다 행운임이 분명하다.



처음에 제시했던 질문에는 정확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성향 차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진정한 관계가 아님에도 '수'가 중요하다면 생각이 다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건 꽤나 슬픈 일이고 우울한 일이다. 먼저 진정으로 인연을 대하고, 아니라면 헤어질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나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며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과는 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 솔직한 마음이 저 친구에게 과분하다고. 주눅 들 필요도 없고, 어깨를 으쓱거릴 필요도 없다.


어디서 주워들은 좋은 정보로 조합해낸 나만의 인간관계 기준이 있긴 하지만 무슨 관문처럼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규칙대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그리고 이건 상대적인 일이고, 누군가의 덕을 보자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좋은 인연을 만나는 것이 어려운 것은 모두 알고 있지만, 당신에게는 항상 우직하게 서있는 친구가 곁에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불행에 미소 짓지 않고, 우울에 과하게 놀라지 않는 그런 담담한 친구가 있기를 바란다고 얘기하고 싶었다. 뜨거워지는 여름에 당신의 내면이 다 비쳐도, 가림 없이 내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과 힘든 계절을 이겨내시길. 당신도 가끔은 잃을 거 없는 사람처럼 들이대기도 하면서 말이다.

본인도 내가 먼저 누군가의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한다. 진정한 친구를 두고도 나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놓치는 경우가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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