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상)의 글에서는 'The Angel'이라는 곡이 아스날 팬들 사이에서 클럽의 새로운 Anthem으로 지정될 것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는 것과 클럽의 반응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축구 구단에게 있어 Anthem이란 무엇이고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먼저 응원가 중 Anthem과 Chant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Anthem이란 단어는 National Anthem(국가國歌)라는 용법에서 알 수 있듯, 공식적으로 지정된 곡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큰 틀에서 (축구) 응원가를 부르는 통칭인 Chant에 포함되어있다고도 볼 수 있죠.
하지만 Anthem은, 작성 주체가 팬이건 구단이건 공식적으로 구단 내에서 가지는 상징성이 높으며, 무엇보다 구장에서 경기 직전에 틀어주는 곡으로 지정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명한 축구 구단의 Anthem으로는 리버풀의 'You'll Never Walk Alone', 웨스트햄의 'I'm Forever Blowing Bubbles', 맨체스터 시티의 'Blue Moon',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Glory Glory United', 레알 마드리드의 'Hala Madrid y nada mas', 바르셀로나의 'Cant del Barça' 등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리버풀의 사례를 살펴보면, Anthem이 가지는 힘과 그 의미에 대해 뚜렷이 알 수 있습니다.
웨스트햄은 홈구장을 Anthem에 맞춰 비눗방울로 가득 채우곤 합니다
18-19 시즌 챔스 준결승 안필드에서의 2차전에서 바르셀로나를 홈에서만 4골로 도합 4:3으로 꺾은 후 부르는 YNWA
리버풀의 'You'll Never Walk Alone(이후 YNWA로 축약함)' 만큼 유명한 축구 Anthem은 없을 것입니다. 리버풀뿐만 아니라 셀틱, 도르트문트 등과 같이 많은 구단에서 사용 중이며, 곡 자체는 1945년에 미국의 뮤지컬 'Carousel'의 삽입곡으로 발매된 대중음악입니다. 1963년, 리버풀에서 비틀즈와 같은 밴드 문화가 꽃피울 무렵 리버풀 출신의 Gerry Marsden이라는 뮤지션이 Gerry and the Pacemakers라는 밴드에서 커버한 버전이 발매가 되었습니다. 그 무렵 프리 시즌 중에 발매된 싱글을 리버풀의 당시 감독인 전설 빌 샹클리에게 밴드가 선물로 주게 되었고, 노래의 메시지에 감명받은 샹클리 감독이 같이 지내던 기자들에게 이를 구단의 곡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팬들은 이에 응답했고 무려 1965년 FA컵 결승에서 이 노래를 떼창 하는 영상이 남아있습니다. 1966년 유로피언 컵 위너스 컵 준결승에서 셀틱과 리버풀 경기에서 셀틱 팬들이 이 곡을 듣고 도입했다는 것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오늘날까지도 셀틱을 포함해 많은 클럽들에서 불리고 있습니다.
Gerry and the Pacemakers의 YNWA(리버풀 팬들의 모습으로 구성된 공식 뮤비) 썸네일은 Gerry 아저씨가 아님 주의
빌 샹클리 감독은 획득한 트로피의 개수 이상으로 '붉은 제국'으로서의 리버풀의 문화와 정체성을 확립한 것으로 칭송받고 있습니다. 상하의에 더해 양말까지도 빨갛게 물들인 리버풀의 'The Reds'의 모습과 'This is Anfield' 사인을 액자에 담아 그라운드 곳곳에 걸어둔 것이 대표적이죠. 그의 사후 1982년 세워진 '샹클리 게이트'에 상징적인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것은 이것이 그의 재임기간의 업적임을 명확히 나타내는 증거라고 생각됩니다.
1982년과 2013년의 샹클리 게이트. 사진 출처는 https://www.flickr.com/photos/keithjones84/8768196763
You'll Never Walk Alone이라는 슬로건과 Anthem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져 내려온 것은 단순히 샹클리 게이트의 문구 때문만은 아닙니다. 1989년 노팅엄 포레스트와의 FA컵 준결승 때 발생한 '힐스버러 참사'의 영향 또한 분명히 존재합니다. 과잉 입장과 안내 실수로 발생한 96(22-23 시즌부터는 97명)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리버풀 구단측은 1992년에 자신들의 앰블럼 크레스트마저 바꾸게 되었죠. 92년도의 변화에는 샹클리 게이트의 울타리 부분을, 93년도에는 라이버 버드 주위의 방패 양 옆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횃불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색상의 변화를 거치고, 2012년부터는 유니폼에는 이전의 크레스트 모양을 달고 있지만 힐스버러 참사를 기리는 문양은 여전히 구단 공식 엠블럼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힐스버러 참사와,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의 리버풀의 아픈 시기를 함께하고 위로해주는 것은 여전히 60년대부터 이어진 샹클리가 제창한 '같이 걷겠다'라는 문구였죠. 이로 인해 YNWA는 리버풀을 대표하는 Anthem으로, 심지어는 그 이상을 상징하는 구단 자체의 철학으로 남게 된 것이죠.
'붉은 제국'일 때에도, 무고한 희생자를 폭도로 매도한 대처 정권의 무책임함과 더 선의 조롱에도, 리그 우승을 30년간 이룩하지 못할 때에도, 이스탄불에서 AC밀란을 상대로 기적을 만들고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 때에도 콥(Kop)들은 한결같이 같이 하겠다는 메시지를 이 노래를 부르며 밝힌 셈입니다. 그리고 이 지역의 기억을 담은 가치와 사람들의 모습이 주는 매력이야말로 글로벌화되고 자본화되어가는 스포츠에서 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에게도 같이 하는 가치가 될 수 있음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18-19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 2차전 후의 안필드에서의 노래가 더욱더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이죠. (하)에서 계속 https://brunch.co.kr/@647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