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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시난테 May 10. 2022

아스날은 그들의 YNWA를 만들어 가는 중인가(하)

자생 Anthem이 보여주는 클럽의 변화

    앞서 (중)의 글에서는, 스포츠 구단의 Anthem의 특수성과 그것이 가지는 힘을 역사상 가장 유명한 Anthem인 리버풀의 'You'll Never Walk Alone'의 사례를 통해 알아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아스날이 이번 시즌 겪고 있는 변화와, Louis Dunford의 곡 'The Angel'이 Anthem이 되는 것의 의의는 무엇일까요.


    일단 먼저 언급해야 될 것은 아스날에게도 Anthem이 이미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바로 'Good Old Arsenal'이 그것입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 대표팀의 Anthem 'Back Home'에 감명받은 축구 방송가 지미 힐은 소속된 ITV를 통해 리버풀의 YNWA에 대항하는 아스날만의 Anthem이 필요함을 제청하였습니다. 이에 당시 감독이던 버티 미가 작사를 한 것이 'Good Old Arsenal'이며, 71년 FA컵 결승에서부터 소개가 되어 당시의 리그와 FA컵 우승 더블을 기념하는 노래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Good Old Arsenal'은 현대에 들어서는 YNWA만큼 사랑받지는 못하고 있고, 아스날은 진정한 의미에서는 Anthem이 없다고 팬들 사이에서는 느끼게 되었습니다. 아스날의 역사를 통해 그 이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70-71 시즌 FA컵 결승. 조지 그레이엄의 선수 시절도 볼 수 있습니다.

    71년 더블 시절, 그리고 조지 그레이엄이 감독을 맡은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까지, 닉 혼비의 '피버 피치'에서 열정적으로 설명되어 있듯이 아스날의 팀컬러는 1대 0으로 이기는 지루한 아스날(boring boring Arsenal)로 대표되었습니다. 그리고 96년에 추후 22년간 아스날을 맡게 될 아르센 벵거가 부임하게 되죠. 단순히 아스날의 팀컬러가 벵거 볼로 바뀐 것이 팀을 대표하는 Anthem과 철학이 옅어졌다고 느끼게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지 그레이엄 시절을 기억하는 지역 팬들은 아직도 건재하니깐요. 진짜 계기는 아무래도 21세기의 큰 변화인 '하이버리와의 작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1913년부터 2006년까지 아스날의 홈구장이었던 하이버리는 97-98 시즌의 더블, 01-02 시즌의 더블, 그리고 아직까지도 아스날의 마지막 리그 우승으로 남아있는 03-04 시즌의 무패 우승을 함께한 추억 넘치는 집이었습니다.    

(좌) 03-04 시즌 전무후무한 리그 무패 우승(총 49경기 무패) / (우) 하이버리에서의 마지막 홈경기이자 베르캄프의 마지막 프로 경기에서 앙리의 모습. 이날 해트트릭을 달성

    하이버리를 떠나 바로 옆의 자리에 세워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이사한 2006년부터, 아스날은 리그 우승과는 거리가 멀뿐더러 구장 건설로 인한 긴축재정으로 주축이 떠나기 십상인 클럽으로 13-14 시즌 FA컵 우승을 이루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버텼습니다. 파브레가스, 반 페르시 등의 주장의 연이은 이탈과 팀에서의 정신적 지주의 부재, 하이버리보다 크게 지어진 탓에 팬의 응원이 더욱더 들리지 않아 도서관이라는 악명마저 심화된 에미레이츠 스타디움...

    

    벵거 감독이 자신의 다큐멘터리 '아르센 벵거 : 무패의 전설'에서, "하이버리는 내 영혼이었고, 에미레이츠는 내 고통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이러한 팀의 공고함이 무너지는 현실을 단적으로 나타낸 것으로 생각됩니다.  'Good Old Arsenal'의 시대정신과 에미레이츠는 너무나도 거리가 있었고, 풍화된 Anthem을 대신하여 팀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Wonder of you'를 경기 시작 전에 내보내기도 했지만 이는 팬의 호응을 얻지는 못하고 금세 사그라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에미레이츠에서 팀의 정신과 팬과의 유대가 소실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구장 내의 Armoury Store 앞에는 18000여 개의 팬이 선사한 벽돌로 둘러싸인 레전드 이름이 새겨진 벤치와,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묘사한 벽화, 앙리와 베르캄프의 동상들까지. 팀의 성적이 좋지 않았고 첼시, 맨시티로 대변되는 대자본에 위압되어 팬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이지 북런던의 자랑이자 프랜치 커넥션으로 대표되는 세계 각국 선수들의 패스 앤 무브를 활용한 축구, 영국 왕실을 포함해 영국 내외의 세계 전 지역에서 크게 사랑받는 축구 구단인 아스날의 모습 자체는 건재한 채였습니다.

출처(https://www.arsenal.com/armourysquare/armoury-square-the-story)

       여기서 19-20 시즌 후반부터 부임한 미켈 아르테타 감독의 이번 시즌에 특히 두드러지는 변화가 언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르테타 감독은 부임 후 잃어버린 문화와 영혼을 되찾아야 하며, 그 중심에는 'Unity'가 있어야만 한다고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한 변화는 스쿼드 면에서는 팀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선수들을 활약에 상관없이 배제하는 것(외질과 오바메양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뿐만 아니라, 콜니의 훈련장과 클럽하우스 내부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콜니의 훈련장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49경기 동안 지지 않았던 선배들의 모습과 "여기서 너희는 각자의 안에 있는 위대함을 꺼낼 기회가 있을 것이다"라는 벵거의 말을 마주해야 하는 것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죠. YNWA가 단순히 노래를 넘어 리버풀을 상징하는 철학이 되었듯이, 'Unity' 또한 선수부터 시작하여 구단 전체를 어우르는 철학이 되기를 바라고 문화를 복구하려는 의도를 한마디로 축약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출처(https://www.goal.com/en-us/news/arsenal-overhaul-arteta-restoring-gunners-lost-soul/bltfa5f328906eb3a94)

    구단과 선수단의 변화는 팬들에게도 긍정적인 요소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챔피언스리그 순위에 이르는 4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취하고 있고, 첼시 맨유와 같은 라이벌들을 잡아내는 모습에 팬들은 목소리를 높여 응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 홈 원정 구분 없이, 아스날 팬들의 목소리는 매우 잘 들리며, 그중에는 미켈 아르테타를 찬양하는 'Super Mik Arteta' 응원가가 귀에 띕니다. 적어도 21년 연말부터 시작된 이러한 팬들의 대답의 일련의 흐름 속에, (상)에서 도입 때에 언급하였던 'The Angel'이라는 자생적인 Anthem(의 가능성이 보이는 곡)의 등장을 놓고 보면, 아스날은 현재 하나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팬-구단-선수와 코치라는 그룹이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좌) 아스날의 과거와 미래. 뒤에는 지역 팬이 그린 사카와 스미스 로우의 그림이 깔림 / (우) 맨유와의 홈경기에 모인 무패 우승 멤버 에두, 실바, 베르캄프, 레만, 앙리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4월 23일 맨유와의 홈경기입니다. 아마존 프라임에서 이번 시즌의 모습을 다큐로 찍고 있어서 방문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무패 우승의 주역들이 모여서 그들이 뛰던 시절의 최대 라이벌 맨유를 홈에서 꺾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단순히 세대교체 이상의 효과가 있습니다. 팬들은 벵거 재임 말기(16-17 시즌)부터 분열되었고, 아담스와 앙리를 필두로 레전드들은 구단에 애정 어린 쓴소리를 계속해왔기 때문이죠. 그들이 힘을 실어주고 지역 유스 출신 사카와 스미스 로우를 격려하는 것은 미래를 바라볼 뿐 아니라, 팬들을 집결시켜 지금의 방향이 맞다고 재확인하며 아스날의 팀 정신이 이어지는 과정에 있는 것을 느끼게 합니다.


    돌고 돌아... 'The Angel'의 첫 번째 Verse의 가사를 한번 살펴보죠.

As I walk these streets alone through this borough I call home,

(내가 집이라 부르는 이 구역을 따라 혼자 길거리를 걷다 보면)

upon the baron fields of Highbury, neath the stadiums of stone.

(고귀한 하이버리의 땅 위로, 돌로 된 경기장 아래로)

Through the turnstiles at The Angel, see the homeless on the green,

(Angel역의 개찰구를 지나, 이슬링턴 그린 공원의 집 잃은 사람(존 토마스 동상)을 보고)

from The Cally to The Cross and every shit hole in between.

(Caledonian Road(The Cally)에서 King's Cross까지,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시궁창 같은 곳들...)

  

(좌) 하이버리에서 아스날을 외치다 / (우) 05-06 시즌 marble hall에서  

     도입부의 돌로 된 경기장으로 묘사된 것은  구 하이버리 구장의 건물을 일부 유지하고 있는 marble hall(대리석으로 이루어진 홀)을 가리켜 표현한 것 입니다. 어느덧 역사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하이버리이고 박물관과 같은 대리석으로 된 공간이지만, 후렴구의 "my blood will forever run through the stone(내 피는 영원히 돌을 타고 흐르리)" 이라는 표현에서 다시금 등장하듯 지금의 아스날 팬들의 주춧돌이 되는 것은 결국 하이버리임을 방증케 합니다. 리버풀의 YNWA가 빌 샹클리가 세운 클럽의 철학과 그 이후의 비극을 지탱한 힘이었다고 하면, 아스날에게 있어 새 Anthem의 모티브는 하이버리 시절의 영광과 그 이후의 침체기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순간의 희열이나 좌절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진 합의된 인식이라는 것이 가사가 주는 힘의 근간에 있고, 'Unity'를 통해 복구하려는 아스날의 영혼의 정체라고 생각합니다.

램스데일과 데이비드 시먼이 함께한 홀로웨이 가의 피시&칩스 가게 홍보
아스날 여자 구단의 레아 윌리암슨과 토니 아담스가 함께한 북런던 지역 보안회사의 광고

    구단 차원에서 아스날은 팬들과 의견을 나란히 하는 것을 근래에 지속적으로 목표로 해왔습니다. 전설적인 선수들과 현역 선수들을 페어로 지역의 사업체를 광고하는 캠페인은 그 단적인 예 일뿐이죠. 출신지역, 인종, 섹슈얼리티를 넘어 하이버리 시절의 영혼을 복구하려는 'Unity' 안에서 더 많은 팬이 응원하는 것을 아스날은 구단과 선수진이 한 목소리로 바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The Angel'은 단순히 북런던 지역의 뮤지션이 아스날을 향한 애정 어린 노래를 냈다고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몇 년간의 침체기를 지나서도 지역 팬들과의 공통 인식을 시작으로 단결하려는 자생적인 시도가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기억이 나날이 쌓이고 쌓이는 것으로, 리버풀의 YNWA에 대한 북런던의 답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우리는 Anthem 뿐 아니라, 아스날이 무언가를 이룩해 나가는 첫걸음을 같이 목도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8일 리즈전 홈경기 이후 추가)

    경기 시작 10분만에 2골을 넣어 2대1로 승리를 거둔 리즈전에서, 경기 시작전에 'The Angel'의 후렴구가 처음으로 흘러나왔고, 놀랍게도 꽤 많은 팬들이 호응하며 떼창을 하였습니다. 트위터라는 온라인 미디어에서 시작된 현상임을 고려하면 특수한 일이죠. 아르테타 감독은 "매우 감동적이었고, 선수들의 초반 움직임이 좋았던 것과 관련있다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현지에서도 아스날의 새 Anthem이 리버풀의 YNWA에 다가가려는 시도임을 빗대어 표현하는 보도도 많았습니다만, 다른 클럽의 팬들 사이에서는 "오글거린다"라던지, "어줍짢은 시도다"라는 평가도 종종 보이곤 합니다. 하지만 이 긴 호흡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들이라면, 이번 Anthem을 부르는 시도가 가지는 의의가 조금이나마 와닿았다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베르캄프의 명언을 인용하며 마치겠습니다.

When you start supporting a football club, you don't support it because of the trophies, or a player, or history, you support it because you found yourself somewhere there; found a place where you belong.
당신이 한 축구 클럽의 팬이 될 때, 그들의 트로피나 특정 선수 또는 클럽의 역사에 빠져서 팬이 된 것이 아니다. 당신이 팬이 된 것은 그 안 어딘가에서 당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신이 소속감을 느끼는 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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