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은 없고 물음만 늘려보겠다
보기 쉽고 주제가 또렷하며 결말이 닫혀 있는 영화는 나에게 만족감을 주고, 영화 하나를 제대로 봤다는 어떤 성취감을 준다. 그런 영화를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다면 이 영화는 반드시 나쁜 영화일 것이다. 있는지 없는지 모를 것을 쫓는 이 영화의 불안한 스토리처럼 나도 이 영화의 주제를 잡을 듯 말 듯, 줄거리의 가닥을 이해할 듯 말 듯하다. 실체 없는 유령(그러나 나는 있다고 믿는)을 쫓는 기분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영화 또한 유령을 찾으려 애쓰는 이야기다.
이 영화의 홍보용 시놉시스 첫 줄을 읽어보자면 이렇다. '영혼과 대화를 나눌 줄 아는 모린은 자신을 두고 요절한 쌍둥이 오빠 루이스와의 교감을 기다리며 파리에서 퍼스널 쇼퍼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이 간단한 줄거리 한 줄을 읽고서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영혼과 대화를 나눠? 오케이 그런 설정 많지. 이해할 수 있다. 일찍 죽은 오빠와의 대화를 기다린다고? 영혼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당연히 죽은 가족과 얘기를 하고 싶어 할 것이다. 이 또한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파리에서 퍼스널 쇼퍼를 하고 있단다. 여기서 응?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퍼스널 쇼퍼라는 직업은 유명인을 대신해 그의 취향에 맞는 물건들을 대신 구매해 주는 사람을 뜻한다. 나에게 있어 퍼스널 쇼퍼라는 직업은 꽤나 부내 나는 이미지였는데(드라마가 그랬단 말이야), 이 영화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빗지도 않은 것 같은 단발을 아무렇게나 헬멧에 구겨 넣고서 파리의 거리를 오토바이로 감흥 없이 휘젓고 다닌다. 어깨에 메인 수백 만 원, 수천 만 원을 호가하는 브랜드 네임이 무안할 정도로 그는 보석과 옷들에게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면, 직업이 뜬금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모린이 과거에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에 흥미가 있었는지는 영화에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 흔한 취미 하나 알 수 없도록 설계된 이 영화는 모린의 이면이랄까, 인간적인 면모를 거의 보여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퍼스널 쇼퍼라는 직업이 이질적이게 느껴진다. 유명인의 곁에서 유명인의 집까지 드나드는 일이 어디 구하기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데 그런 일을 이 업에 아무런 미련도 욕심도 없는 것 같은 모린이 해내고 있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 이상해 보였다는 이야기다. 그냥 기계적이게 일하는 찌든 직장인이라고 이야기해도 할 말은 없겠지만… 혹시 파리에서는 퍼스널 쇼퍼가 편의점 알바만큼 흔한 일인가? 나는 여기까진 알지 못한다.
퍼스널 쇼퍼라는 이 직업의 이름은 심지어 이 영화의 제목이기까지 하다. 어마어마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나는 납득하지 못해도 감독에겐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어딘가 이상하다면, 거기가 맹점이라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타자를 위해 살며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던 모린에게 긴장감을 준 것은 바로 발신인을 알 수 없는 문자 메시지다. 소개팅에 나온 남자 마냥 수많은 물음으로 모린의 취향과 마음을 파고들지만, 그 말투만큼은 거만하고 거칠기 짝이 없는 그 문자 메시지는 영적 존재를 바라오던 모린에게는 어쩌면 반가운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모린은 그를 두려워하지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으며, 심지어 문자를 통해 자신의 진짜 욕망을 발견하기도 한다.
홀리듯 자신의 고용주를 위해 산 옷을 입어보고, 고용주의 침대에 누워 잠을 자기까지 한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놀라 도망치듯 고용주의 집을 벗어난다. 이 장면은 분명 이 영화에서 무척이나 중요할 것이다. 주인공이 욕망하던 것을 이뤄내는 장면은 반드시 영화의 절정, 그리고 결말과 맞닿아 있기 마련이다. 심지어 주인공이 욕망한 것이 정당하지 않을 경우, 그 책임이 반드시 따르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모린이 본인이 벌인 일을 들켜 야단을 맞는 것이 아닌 고용주가 죽는 결과가 뒤따른다. 모린은 키라(고용주)가 자신의 옷을 모린이 입어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행한 것이고, 이걸 들키게 되면 무척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임도 알고 있었다. 이 영화가 건전하게 흘러가려면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마땅히 모린이 될 것인데, 뜬금없이 키라가 집 안에서 살해당한다. 마치 모린의 욕망이 정당하다는 것을 누군가가 과격한 방식으로 긍정한 것만 같아서 나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물론 범인은 유령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다. 키라의 전 애인인지 섹스 파트너인지가 변심한 키라에게 앙심을 품어 그를 죽인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남자가 키라의 집을 나서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준 후, 그를 뒤따라 나간 알 수 없는(실체가 없다. 엘리베이터 문과 자동문은 혼자서 열리고 닫힌다.) 존재를 보여준다. 이쯤 되면 나 같은 관객들은 휴대폰 속 발신인 불명의 정체를 알고 싶어 미쳐버린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이 영화는 그의 존재를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다. 유심 하나 바꿔 끼니 문자가 끊겼다는 설정이다. 답은 안 나오고 물음은 계속 쌓이는 환장할 상태지만, 이 영화는 계속된다.
모린의 뒤로 컵을 들고 지나가는 루이스(로 추정되는 남자)의 흐린 실루엣을 볼 즈음에 나는 이 영화의 중심 질문을 생각해야 했다. 이 영화의 임팩트는 섬찟한 말투의 휴대폰 속 문자 메시지가 전부 다 뺏어 갔지만, 이 영화는 애초에 모린이 쌍둥이 오빠와 교감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심 질문이었다. 모린은 파리를 떠나 애먼 인도까지 가고 나서 루이스로 추정되는 유령과 만나게 되는데, 이 결말만 놓고 본다면 영화는 분명한 답을 가지고 끝난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너무 큰 궁금증을 남겨준 문자 메시지가 마음에 걸릴 뿐이지만, 그건 이제 모린에게 떠나간 문제일 뿐이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매우 고민했다. 의도치 않게 글이 길어진 것도 사실은 이 영화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것저것 늘어놨기 때문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인터뷰에서 '<퍼스널 쇼퍼>는 다분히 고독과 고립에 관한 이야기다. 혼령과의 교감은 그 안에서 무얼 보느냐에 따라 타인을 매우 가깝게 느끼기도 하고 고독을 느끼기도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가깝게 느끼는 것은 문자 메시지 속의 남자고 고독은 루이스인 걸까, 나는 생각했다. 역설적이게도 모린은 누군지 모를 발신인 불명과의 문자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을 발견하고, 누구보다도 가까웠던 루이스의 유령 때문에 고독해지지 않던가. 이 또한 내 해석일 뿐이지만 나는 일단 배우의 말을 믿어야겠다. 아무런 답도 얻지 못하고 떠나는 길은 너무 쓸쓸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