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생 꿈 중 하나는 내가 직접 쓴 자작곡을 음원으로 내보는 것이였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작곡 프로그램을 접하고, 취미로 만든 띵동거리는 수십 개의 습작들은 아직도 내가 아끼는 파일들로 보관하고 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인 겨울 방학에 통기타를 하나 갖게 되면서 방구석에서 기타를 쳐보니, 자작곡 구현에 한계를 느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반드시 신디사이저와 컴퓨터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장비를 갖추고 나의 밴드 자작곡을 구현하리라~ 그렇게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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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수능을 마치고 대학 입학이 확정되고 난 뒤, 나의 오랜 꿈은 생각보다 빠르게 실현할 수 있었다. 입학 선물로 부모님께서 76개의 건반이 있는 신디사이저를 사주셨고, 과내 밴드 동아리에 키보드 파트로 지원을 했으나 집에 기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타 파트로 뽑아준 선배들 덕에, 일렉 기타도 동시에 갖추게 되었다. 거기에 오디오 인터페이스라는 악기와 컴퓨터를 연결해주는 장비를 사고 나니, 홈 레코딩이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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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아직도 나는 내 음악적 자아에 빚을 지고 있다. 20대 초중반을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던 청춘적 자아가 몸뚱아리가 하나뿐인 나의 스케쥴을 꽉꽉 채워버린 탓에, 음악에는 시간과 노력을 쏟지 못하였고 음악적 자아는 자작곡을 하나도 제대로 완성해보지 못했다. 아직도 1분도 채 되지 않는 스마트폰 녹음 파일들만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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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이를 스물 다섯이나 먹은 어느 날, 나의 음악적 자아를 강하게 자극하는 친구 건우를 만났다. 나와 건우를 중심으로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4명의 대학생의 밴드는 1년 정도 합주를 하며 주어진 시간을 즐기는 데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이 친구의 군 입대 날짜가 정해지게 되었다. 우리는 '뭐 하나 해보자'라는 데에 모두 동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온 우리 밴드의 소기의 목표는 '음원 발매'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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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발매를 결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나에게 용기를 준 두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먼저, 과 교수님께서 냈다는 발라드 음원을 우연히 들을 수 있었는데, 사실 이 정도면 나도 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교수님의 음악적 자아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없습니당 하핳) 두 번째로는 여름에 제주도에 지내는 동안 쉐어하우스 룸메로 지낸 형이 음악하는 분이였는데,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해볼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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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평소에 음악적 재능이 있던 친구 민수의 코드 진행과 미디 습작으로 시작되었다. 거기에 건우는 가사와 멜로디를 자기 마음대로 덧붙였는데, 실로 찰떡과 같은 모던락 풍의 노래가 1차 완성되었다. (사실 처음 나온 가사는 너무 마음에 안들고 오글거려서 다시 새로 써오라고 했더니 다음 날 2절 가사까지 다 써왔다. 그리고 이것이 수정 없이 가사로 실렸다. 대단하고 이상한 놈..) 나는 이 노래에 상당한 애착이 생겨서 군데군데 필요한 사운드를 채워넣고, 모든 악기를 합치기 위한 홈레코딩에 내 음악적 자아를 모두 갈아넣었다. 10월 즈음 시작된 노래 한 곡의 완성은 두달 정도 작업에 매진한 뒤에야 얼추 들어줄 정도가 되었다. 드럼은 마우스로 하나하나 클릭하며 미디로 찍어냈고, 기타 솔로 녹음을 위해 테이크가 100번이 넘어갔다. 전문적으로는 처음해보는 홈 레코딩에 수많은 시행 착오들이 있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걸 한다는 느낌에 순간순간이 재미있었다. 마침내 11월, 전문 엔지니어의 손을 거쳐 보컬 녹음과 보컬 튜닝을 완료하였고, 수차례의 믹싱 방향을 거친 뒤에 마스터링 작업까지 완료한 음원을 받아낼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곡의 완성도에 비해서 녹음 수준이 많이 떨어지는 거 같아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어 군 입대 전주에 음원 발매를 하기로 하였다. 싱글 음원의 앨범 자켓도 구했어야 했는데, 친구의 인스타를 보다가 노래 분위기와 너무 찰떡인 사진이 있어서 그 사진도 표지로 달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유통사와 연락하고 최종 마스터링 본을 보내니 12월 16일 정오에 마침내 멜론에서 ‘Just So You Know’라는 곡을 재생할 수 있었다.
스튜디오 녹음 날. 성수동에서. (20.11.20.)
밴드 The Quavers 1st Single 'Just So You Know' 발매 (20.12.16.)
그렇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여정이였지만, 생각보다 음원을 내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였다. 막상 나오고 주변 사람들이 재밌게 들어줬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름 뿌듯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싱글 경험으로, 어떻게 홈레코딩을 통해 자작곡을 만들 수 있을지 아마추어의 팁들을 정말 많이 터득하게 되었다. 훗날에 음악적 자아에게 시간적, 마음적 여유가 허락된다면 꼭 정규 1집을 만들어 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