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겨울에는 한 교수님 연구실에서 학생 인턴으로 잡일을 도왔고, 방학이 끝나고도 중앙 도서관과 열람실, 학관 밴드 연습실을 특히 애용하였다.
졸업을 코앞으로 앞두고, 학교를 부담 없이 활용할 수 있는 마지막 학생의 시기여서 더 열심히 누렸다.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코로나 때문에 이례적으로 사람이 드문 학교 캠퍼스를 종종 산책하기도 하였고,
그런 날이면
여러 생각들과 옛날 이야기들이 정말 많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보았던 장면들, 그때 나눴던 이야기들..
유독 눈에 선한 장면들이 캠퍼스 곳곳에서 나타날 것만 같이 생생했다.
경희대 서울캠의 4월 어느 봄날.
나의 대학 생활의 시작은
2015년 말, 멀게 느껴지지 않은 과거로 돌아간다. 수능 성적표를 받은 나는 정시 원서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는 수능 공부를 하면서 한번도 의료계열 진학에 대한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벌이가 넉넉하고 안정적인 진로라는 이유로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진학하는 세태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베풀고자 하는 사명 의식이 있는 사람들만이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난 그런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수능 성적표가 나오니 한의대 진학을 고민하게 되었던 것이다. (15' 수능 당시 운 좋게도 국어, 수학, 영어를 모두 합쳐 두 문항을 틀렸는데 과탐에서만 여덟 문항을 틀리는 바람에, 국영수 반열 비율이 높은 한의대는 지원 가능, 과탐 반영 비율이 높은 연대는 합격이 모호한 상황에 이르렀다. 아마 연고대를 안정적으로 쓸 수 있는 점수였다면 그냥 무난하게 지원했을 것이 분명했다.) 여러 고민 끝에, 나는 경희대 한의대를 상향 지원하였다. 당시에는 면허를 가지고 꼭 임상의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의사에 비해 로드 시간이 적다는 점이 나를 설득시켰다. 한의학 학문 자체에 대한 호감도도 나쁘지 않았던거 같다.
한달이 넘는 기다림 끝에, 나는 그해 경희대 한의예과의 가장 마지막 추합 정시 합격자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맞이한 첫 봄.
눈 앞에 펼쳐진 새로움의 물결들을 빠짐없이 온 몸으로 느끼고,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러던 5월 어느 날, 나의 생일이 경희대 개교기념일과 같은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매년 휴강한다.) 이러한 우연의 일치를 나는 아주 운명적인 것으로 느꼈다.
'어떻게 내 생일과 학교 생일이 같은 거지.. 이건 운명이야!...'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지 않았는가. 고생 끝에 들어온 이 학교에서 나의 희망과 여러 꿈들이 생동하는 모습들이 그려졌고, 앞으로의 대학 생활들이 기대로 가득찼다.
그리고 계속되는 대학 생활은 실제로 이러한 꿈들이 실현되는 나날들이였다.
새내기 첫 동아리 밴드 공연 포스터. 지금 봐도 이쁜....
좋아하는 친구들과 밤을 세워가며 이야기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직접 밴드 합주도 하고, 도서관에서 몇시간이고 좋아하는 책을 찾아 읽기도 하고, 운동장에서는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고, 잔디에 누워 멍 때리기도 해보고, 참 지나고 보니 술이란 술도 많이 먹고, 말이란 말도 참 많이 했다.
6년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길었다.
여러 계절들이 지나고 찬 바람이 불듯 나의 학교 생활은 어느덧 고학년에 접어들었고,
스무살 새내기 친구들을 보면서 저땐 저랬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내가 좋아하는 캠퍼스를 연인과 걸어보기도, 혼자 걸어보기도 하였다. 웃으며 걷기도, 울며 걷기도 하였다.
그렇게 대학 생활 후반기의 시간은
미련과 아쉬움을 모두 반추하고도 남을만큼 기나긴 시간이였다.
이제는 캠퍼스 산책의 남은 바퀴를 돌며
마지막 여유를 즐기고 있다.
참 많은 시간들과 사람들이 내게 왔고, 머물다가, 이제는 지나갔다.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캠퍼스를 돌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은모두 지난 경험들 덕분이다.
이러한 경험의 흔적들이 겹겹히 내게 쌓여있고, 이것들이 내게 남겨진 것들이다.
나를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이러한 지혜들을 더 가꾸고,채우고, 아껴내서,앞으로 마주할 모든 것들에, 베풀고 나누며 살아야겠다. 처음에서 언급했던 사명 의식까진 완벽히 갖추지 못해도 말이다. 그리고, 새로이 마주할 것들에 대해 새내기와 같은 호기심을 잃지 않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