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만 7,000원.
하루 공연을 위해 지급하는 돈이다. 음악 페스티벌에 섣불리 돈을 쓰기 어려운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없으면 관심도 적고, 돈을 내야 할 이유도 없어진다. 하지만 내가 즐겨 들었던 노래의 가수가 처음 내한한다는 사실에 컴퓨터 마우스를 집었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장고 끝에 왼쪽 마우스 버튼을 결제 버튼에 갖다 댔다. 더 이상 물릴 수 없었다.
티켓을 구매하고 관람만 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페스티벌을 온 가수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을 해봤다.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며 응원 굿즈들을 보다가 눈에 띄는 걸 발견했다. 깃발. 아티스트의 얼굴이나 앨범 커버를 천에다가 인쇄하고, 그들이 공연을 할 때 펼쳐서 응원하는 거다. 프린트 매니저이기 때문에 재료도 구하기 쉬웠고, 어떻게 작업할지도 바로 떠올랐다. 실제 결과물을 보니 페스티벌이 너무 기대됐다.
기상 캐스터가 비가 올 것 같다고 예상한 페스티벌 당일은 무색하게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었다. 자리를 잡고 가방에 안에 고이 모셔 온 깃발을 꺼냈다. 가수들은 한 팀당 한 시간 반 정도의 공연 시간을 가졌다. 90분 넘게 그들을 향해 깃발을 들고 호응을 한 나는 쉬는 시간마다 팔을 잘 두들겨줘야 했다. 하지만 즐거웠다. 그들도 내 깃발을 보고 호응해 주었고 그런 반응만으로도 내겐 큰 힘이 되었다.
6시간 넘는 공연을 다 본 후, 숙소에 돌아왔다. 짐을 다 정리를 하고 주변에 맥주를 마실 공간을 찾아 그곳으로 향했다. 한 맥주펍에 들어와서 편히 앉아서 술을 들이켜 마셨다. 쌓인 피로가 날아갈 듯이 시원했다. 핸드폰을 보며 오늘 있었던 공연 실황을 보며 하루의 마지막을 즐기고 있었다. 마지막 잔을 마시고 계산하려던 찰나에 외국인 무리가 들어왔다. 순간 엉덩이를 의자에서 뗄 수밖에 없었다. 내가 페스티벌에서 본 아티스트들임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다듬고 다시 자리에 앉아서 맥주를 시켰다.
말을 걸어도 될까? 민폐가 아닐까? 하며 부정적인 생각이 오갔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그들과 언제 사진을 찍어보겠나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그들에게 어수룩한 영어로 같이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고 물었고, 그들은 흔쾌히 같이 찍어주었다. 소위 요즘 말로 팬으로서 성불했다는 느낌이었다. 소기의 성과를 이루고 계산을 하는데 종업원들에게 그들에 대해서 알려줬다. 종업원들은 너무 놀랬고, 내가 알려줘서 그들이 유명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공짜 술을 사주고, 같이 음악을 틀고 놀자고 권유했고, 나는 기꺼이 응했다. 새벽 3시까지 신나게 놀았다.
하나의 행동이 연속된 행운을 맞이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내게 행동하라고 말씀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옳았다. 생각은 그저 머무를 뿐이고, 그 무엇도 변화시키지 않는다. 발을 하나라도 떼면 새로운 세계로 향할 수 있고, 예상 못한 가르침과 만남이 이뤄진다. 최근에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를 읽어보면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여행하는 것만이 여행은 아니라고 한다. 여행하는 마음, 그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이번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배우게 되었다. 오늘의 나는 어떤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까? 바람이 휙 하듯이 몸이 움직이는 행동하는 하루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