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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끔하게 Jun 18. 2024

신고정신

6월 18일 육아, 교단일기

똑똑...

아아 저 리듬의 노크 소리는...! 분명 신고다..무엇인가를 신고하러 온 게 틀림없어...!


역시나 그랬다. 누군가 학생들은 탈 수 없는 전동스쿠터를 탔다고 신고를 하러 왔다. 흠...그렇단 말이지...신고자 앞에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범법자(?)를 발견하게 된 경위와 범법자의 신상을 경청한다. 신고를 마친 시민은 신고를 했다는 뿌듯함과, 이제 세상이 올바르게 돌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교무실을 나선다.


교무실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내가 선생인지 수사관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가끔 한다. 자기 딴에는 세상을 정의롭고 평화롭게 만들기 위해 신고를 하는데 선생이 그걸 무시하면 얼마나 좌절스럽겠는가. 범법자 처벌은 둘째치고 일단 신고는 진지하게 받아야 한다. 안 그러면 마음 속 어딘가에 작게 자리잡고 있는 정의로운 신고 정신이  사그라들 수 있다, 그렇게 둬선 안 되지, 암.


문제는 오늘의 신고자는 내일의 범법자가 되기 십상이라는 거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있을까. 어제는 교칙 어기는 사람을 자신 있게 신고했는데, 오늘은 내가 교칙을 어겨서 벌점을 받고 있다. 너무 억울해서 복도에 있는 선생님에게 하소연을 한다. 수사관은 때로는 범죄자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가장 많이 받는 신고는 아마 선생님 쟤가 저 때렸어요(괴롭혀요)일 거다. 99%는 둘이 장난 치다 불리해지는 쪽이 신고를 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양비론이 최고다. 너희 둘 다 잘못이야. 갑자기 판사가 되어 버렸네?


하루종일 신고를 받다 집에 오니 둘째가 잘못한 걸 첫째가 우리에게 와서 이른다. 자기 장난감을 맘대로 가져간다느니,(좀 같이 갖고 놀아라) 바닥에 오줌을 쌌다느니...(이건 좋은 신고였다) 우리집 범법자 둘째는 절도, 노상방뇨, 고성방가 등 온갖 경범죄는 다 저지르지만 귀엽기 때문에 무죄다. 방금도 니킥으로 엄마의 안경을 부쉈다. 기물 파손인데 아마 이것도 무죄이지 싶다. 매일같이 신고를 해도 성과가 없는 첫째만 애가 탄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우리집도 매일이 시트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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