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윤지 Dec 20. 2023

[작가단상] 스피노자 옆에서

요즘 머릿속 한가운데를 굳게 지키고 있는 질문이 있다.


"왜 나는 글을 쓰는가."


비슷한 류의 친구들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

순수하게 글이 좋아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나저나 나는 왜 자꾸 글이 쓰고 싶은 것인가?

글 쓰 행위는 왜 그토록 빠져드는가?


어디서 많이 보던 문장의 패턴이다 싶어 테이프를 돌려보니

10대 , 20대 주야장천 품고 있던 문장들을 닮았다.


나는 어떤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

이 방송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좋은 방송이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하는 것인가?


그때 나는 뚜렷한 답을 찾아 헤매며 밤마다 강가를 걷고 노트에 글을 끼적이곤 했다.  

그러고는 기승전 '연습, 실전'으로 향했다.

마음에 쏙 드는 녹음본을 위해 밤 12시가 넘도록 스튜디오에서 무한 반복 녹음을 하기도 했다.

우리말 어미 "다, 다. 다!"를 여러 버전으로 녹음한 뒤 다시 "다ㅡ"를 길게 늘이며 담아보기도 했고,

단어와 단어 사이 0.1초 포즈(쉬어주기)와 0.2초 포즈의 미묘한 차이를 비교하여 들으며

대본의 목적을 전달하는데 가장 알맞은 최선의 목소리와 발음을 찾아나기도 했다.  


그 동기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이 모든 것들이 나를 뽑아주신 방송국에 대한 보은과

감사히 들어주시는 청취자분들을 위한 도리의 마음뿐이라고 여겼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이면에 진짜 마음 한 가지가 더 있던 것 같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스로 만족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그 시간은 후회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실은 와중에 너무나 황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FLOW. 몰입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아기띠 속에서 꿈나라로 향하는 아기의 속눈썹을 바라보며  

상대적으로 높은 아일랜드 식탁에 노트북을 펼친다.

들썩들썩 흔들흔들 몸의 움직임을 유지하며 타자를 두드린다. 

지금 적지 않으면 방금 떠오른 플로우와 문장들을 되돌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드디어 자자! 이불속에서 새우 자세를 만들다 다시금 연필로 글씨를 휘갈긴다. 

얼른 단어라도 적어둬야 귀한 조각들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너 왜 그러니?' 하고 물어보니 

그저 지금 이것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가슴 뛰는 이 행위를.


"저는 음악만을 위해서 살아왔기 때문에 제 꿈은 사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산에 들어가 피아노와 사는 것입니다. 이 콩쿠르에 나온 이유는 단지 제가 내년에 성인이 되는데 그전에 제 음악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나온 것입니다."


최연소 나이로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우승한 임윤찬 피아니스트에게 외국인 기자가 물었다. '커리어를 만드는 데 어떤 야망이 있는지, 이 콩쿠르의 성취가 어떤 영향이 있는지' 말이다.  위의 답변은 이에 대해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진솔하게 답한 소감이다. 그의 이 인터뷰가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그가 피아노를 통해 돈이나 명예,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려 한 것이 아니라 피아노로 표현하는 '음악' 그 자체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 것이다. 그의 연주가 시작되자마자 눈물이 나는 이유는 내가 임하는 그것을 온전히 사랑하며 열성을 다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 그렇게나 아름답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지금 당장 시원하게 답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너머. 그 너머의 내가 헤아릴 수 없는 그 동기가

하나님 보시기에 기쁘시기를.

간구하며 기도할 뿐이다.  


지금의 나는, 물음표의 답을 구하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기보다는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이 행위를 일단 후회 없이 해보기로 했다.

그래도 우얏든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짜 사랑은 아닌 것 같다.


빵모자를 쓴 스피노자께 문안 인사 드리고 그 옆에 놓인 책상의자를 꺼낸다.

스피노자가 들고 온 오늘자 사과나무 묘목에 코를 대어보니 유난히 싱그럽다.

생생한 향기를 흠뻑 들이마시고 의자에 앉아

담담히 타자를 두드려본다.


지금 이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작가의 이전글 [메타인지 대화법] 경인방송 라디오 다시듣기 방송링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