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4-15
일정 : 2023. 10. 14-15.
여정 : Day2 짚라인&케이블카 - 점심 - 쌍계사 - 카페 - 최참판댁 & 박경리문학관
가족 찬스로 숙박을 수월하게 해결하고 둘째 날 이른 아침 길을 나선다. 섬진강이 바다로 흘러들어 남해로 이어지는 곳에 금오산이 있다.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힌 남해 앞바다, '우아하고 곱다'는 뜻의 한려해상 국립공원이 눈앞에 펼쳐지는 그곳에서 아시아 최장 길이를 자랑하는 짚라인을 탈 수 있다. 바로 옆에는 케이블카도 운행하고 있어 따로국밥 스타일로 여행하는 우리 가족에게 마치 맞다.
진해 솔라타워에 가면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짚라인이 있다. 남편의 끈질긴 꼬드김에 넘어가 겁을 먹고 탔다가 의외의 재미를 느꼈었다. 다소 비싼 체험이지만 할 수 있을 때 해봐야 한다. 진해는 둘이 짝지어 탈 수 있는 곳이라 아이들을 하나씩 끼고 또 타러 갔다. 경험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나처럼 겁을 먹고 몸을 사렸던 아이들이 뜻밖의 재미를 느낀 뒤로 또 가자고 졸라댔다.
살림하는 입장에서 재미로 타기엔 가성비가 한참 떨어지니 아이들을 달랬다. 좀 더 커서 더 긴 걸 타러 가자고. 그렇게 한참 노린 것이 하동 짚라인이다. 키 130cm, 몸무게 35kg이라는 최소한의 신체 조건도 갖추어야 하고 혼자서 타야 하기에 오래 미루어왔다. 먹성 좋은 둘째의 체중이 이 나이에 이래도 될까 싶지만 한창 크는 아이 체중이 아무렴 어떤가, 가까스로 기준을 충족했으니 지금이 때라고 생각했다.
막상 예약을 하려고 보니 살짝 걱정이 된다. 유튜브 영상을 찾아본 남편 말로는 시속 120km의 체감 속도라는데 과연 둘째가 혼자 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선다. 영상을 보여주고 선택하게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무리 재미있어도 아직 혼자는 무서워서 못 타겠단다. 그래, 아이들에게는 많은 날들이 있으니 무리할 필요는 없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는 말은 살 만큼 산 우리에게나 해당되는 얘기다. 차선으로 선택한 것은 케이블카. 남편과 큰아이는 짚라인을 타고, 작은 아이와 나는 케이블카를 타기로 한다.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세팅이다.
오픈 시간에 맞추어 방문한 덕에 아이와 둘이서 호젓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랐다. 해가 떠올라 눈이 부시지만 바다를 향해 앉아 멀어지는 논밭과 섬들을 바라본다. 높다. 곧 내릴 것 같은 높이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니 이제 겨우 중간쯤이다. 사진을 찍으려고 자리를 옮기는 데도 다리 근육이 살짝 긴장된다. 남해 바다는 통영 미륵산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풍경과 닮은 듯 다르다. "우와~! 엄마 저기 좀 봐!" 연신 감탄사를 내뱉는 작은 아이는 짚라인을 타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아쉽지 않다.
산 정상 스카이 워크를 걸으며 남편과 큰아이를 기다린다. 저 아래에서 안전 교육을 받고, 장비를 착용한 뒤 버스를 타고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 기다림에 지칠 무렵 드디어 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헬멧과 장비를 장착한 부녀의 얼굴에서 한껏 부푼 기대감이 느껴진다. 그것도 잠시, 셀카로 가족사진을 찍는 순간의 미소는 어디 가고 탑승 준비를 하는 큰아이 얼굴이 굳어진다. 그네 타듯 대롱대롱 매달려 다리를 흔들어대는 모양새가 꽤나 긴장한 것 같다.
동영상 촬영을 시작하는 찰나, 총 쏘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큰아이가 혼자 출발한다. 같이 출발할 거라 짐작했던 내 마음이 더 놀라 황급히 핸드폰을 들고 줄을 타고 내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좇는다. 벌써 저만치 내려가 보이지도 않을 무렵 남편이 뒤늦게 출발한다.
'다른 사람들은 같이 출발하던데, 왜 우리 식구만 따로 보내지? 직원의 실수가 아닐까? 비명도 지르지 않고 내려간 아이는 무섭지 않았을까?'
보기만 해도 놀라운 속도감이다. 4개의 구간으로 나누어진 짚라인을 따라잡기 위해 하행 케이블카를 타러 간다. 구경만으로도 신이 난 둘째의 재잘거림이 끊이지 않는다. 내려오는 길에 짚라인 3, 4구간을 내려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구간에서는 등 뒤로 작은 낙하산까지 펼쳤다. 하늘을 나는 기분이 느껴질지 궁금해지는데 벌써 도착한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짚라인과 케이블카의 속도 차이가 확연하다.
큰아이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처음엔 무서워서 울었단다. 아빠를 의지했다가 그 높은 산에서 줄 하나에 매달려 혼자 내려갔으니 어련했을까. 영상을 돌려보니 소리도 질렀다. 비명도 못 듣다니, 아이만큼이나 나도 긴장했나 보다. 들어보니 한참 간격을 두고 출발한 것은 직원의 실수가 아니란다. 체중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니 도착할 때 속도를 맞추기 위해 간격을 두고 출발시킨다는 것이다. 모든 직업인은 성실히 자신의 일을 하고 살아간다는 걸 잊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애먼 직원 탓을 했으니 혼자만 아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짚라인과 케이블카, 서로 자신이 탄 것의 느낌과 타보지 못한 것의 궁금함을 나누느라 차 안이 시끌시끌하다. 더불어 허기도 진다. 산 위에서 기다리며 검색을 해 둔 식당으로 향하는 사이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긴장이 풀린 뒤의 피로감이 어떨지 짐작이 간다. 무서워도 겪고 나면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 좋든 나쁘든 어렵든 쉽든 모든 것은 겪고 난 뒤에야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감정까지도 다채로운 추억이 되는 것이다.
하동은 여행지로는 만족스럽지만 먹거리가 아쉽다. 허기진 아이들에게 재첩이 들어가는 음식은 매력이 없다. 손가락 품을 팔아 찾은 곳은 '벚꽃 경양식'. 돈가스 전문점이다. 섬진강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있는 가게지만, 최참판댁에 갈 요량이었으니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기로 한다. 터미널 이층에 자리 잡은 식당은 화개 장터 옆이다. 주변 분위기와 달리 의외로 분위기 있고 맛있었다. 어지간한 건 잘 먹는 우리 가족이지만, 그래도 현지 음식은 한 끼로 족하다. 입에 맞는 익숙한 음식이 제일이다. 오랜 여행에서 집밥이 그리워지는 것처럼.
배를 채우고 쌍계사로 향한다. 너무 깊이 들어가야 해서 갈까 말까 망설였던 곳인데 식당 덕분에 안 가는 게 아쉽게 되었다. 서울 촌놈 남편은 부산에 오래 살았어도 안 가본 곳이 많다. 생각해 보니 나도 15년 전 엄마와 함께 가본 뒤로 애 키우고 정신없이 사느라 가볼 만하냐는 남편의 질문에 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흐릿한 기억밖에 없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더라도 절은 대개가 비슷하다.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웅전을 중심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사찰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특별히 종교적인 마음으로 사찰을 순례하는 게 아니라면 자연 속 고요함을 즐기려는 마음에 절을 찾는 건지도 모른다. 쌍계사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인상적인 절이라기보다 학창 시절 배운 소설 작품의 아련한 기억에 한 번쯤은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여행객이 제법 많지만 소란스럽지 않은 곳에서 가을의 선선함이 느껴진다. 쫓기지 않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길을 되돌아오다가 카페에 들렀다.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한눈에 들어오는 정원도 멋지다. 식당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데, 분위기 좋은 카페는 여기저기 많이도 들어섰다. "가족끼리 왜 이래?"라는 대사를 아는가? 카페에 가면 차 마시는데 몇 분도 안 걸리고 딱히 할 말도 없는 우리는, 가족이다. 서로에게 특별할 것이 없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몇 시간이고 대화가 오가던 젊은 날도 있었건만, 평소 대화가 많은 편인 우리 부부는 멍석이 깔리면 오히려 데면데면하다. 멍석 위에서의 침묵이 지루한 아이들은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순식간에 흡입하고 카페 구경에 나섰다.
녹차가 유명한 하동에 왔으니 녹차라테를 주문했다. 쌉싸름한 뒷맛을 느끼다가 밑도 끝도 없이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생각난다. 이제 가까운 것을 볼 때 안경을 들어 올려야 하는, 말없이 핸드폰 사진을 들여다보는 남편과 카페 기념품 숍을 구경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는 달콤과 쌉싸름 사이, 어디쯤 있을까 싶다. 젊은 날의 달콤한 연애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는 쌉싸름한 현실이 되었다. 때론 즐겁고 때론 마음이 상한다. 가족이라 더 여과 없이 감정을 드러내 서로를 상처 주는 일도 많다. 그래도 돌아서면 다시 웃고 떠들면서 한 집에 산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오히려 편안하다. 가끔은 이렇게 나들이도 하면서 인생의 단맛을 즐겨야 지치지 않는다. 녹차 라테 한 잔에서 시작된 의식의 흐름이 주는 여유다.
마지막 여정은 최참판댁이다. <토지>를 읽지 않은 아이들에게 그저 전통 가옥 체험이 되지 않을까 싶지만 그래도 간다. 사랑채 마루에 올라 평사리 들판을 내려볼 때 얼굴 가득 스치던 바람을 다시 느끼고 싶기도 하다. 최참판댁을 돌면서 거의 잊어 가는 소설 속 몇 장면을 드라마 <토지>의 주인공 얼굴로 떠올려 본다. 내 머릿속 문학과 영상의 조합이다. 작은 아이에게 별당채에 오르게 해서 사진을 찍다가 아씨를 대하는 몸종의 기분을 느끼는 것은 문학의 현실적 오마쥬쯤 되지 않을까.
마을을 돌아보고 박경리 문학관을 관람한다. 마지막 방문 때와 느낌이 다르다. 작가의 유품까지 전시된 새로 지은 문학관 앞마당이 좋고,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기까지 왔네"라는 작가의 말도 좋다. 작가의 친필 원고를 보고 원고지에 쓰는 받아쓰기 시험을 떠올리는 아이들 옆에서 나는"왜 쓰는가, 하는 물음은 왜 사는가, 하는 물음과 통합니다."라는 오래된 문학잡지 속 작가의 이야기를 곱씹어 본다. 글쓰기가 특별한 것이라면 삶도 특별한 것이 된다. 그러나 살아가는 일이 특별함보다 평범한 일상인 것처럼 내 글도 삶을 닮길 바란다. 그것이 쌓이고 쌓여 어느 날 기록으로 남은 나를 볼 때 <토지>를 읽고 난 뒤 느낀 글이 가지는 힘을, 내 삶에서도 맛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