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하면, 지갑, 벨트, 시계라는 말이 있다.
언제,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 사이에 종종 그런 말이 오간다.
그 말이 무색하게 내 지갑이며, 벨트며, 시계며 다 선물 받은 것이다.
가격이 어찌 되었건, 브랜드가 뭐가 되었건 내겐 맘이 담긴 소중한 선물이기에 잘 차고 다닌다.
그중에서 단연 사연이 있는 물건이라면 내겐 시계이다.
가끔 내 시계를 보고 사람들은 놀라며
어우, 되게 좋은 시계를 차셨네요!라고 말하거나
이거 진짜예요?
하고 의심스럽게 물어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시계엔 'ROLEX'라는 문구와 왕관이 박혀있다.
이제 막 삼십 대가 된 전도사가 그런 시계를 차고 있으니 궁금도 할 것이다.
그럼 난 그냥 웃으며 답한다.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시계예요. 당연히 정품은 아니지만, 시간도 잘 맞고 해서, 소중하게 차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집 정리하다가 발견했다며 내게 주신 시계이기에 소중하게 차고 있는 것뿐이다.
할아버지가 생전에 차셨던 시계는 아니다.
그저 할아버지의 집에 오래 있었던, 그렇게 멈춰있던 시계였다.
그 시계를 다시 고쳐서, 손주인 내가 차게 되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를 병간호하러 병원에 간 적이 있다.
그저 엄마가 힘들어하기에, 조심스럽게 나에게 부탁하는 엄마의 모습에 미안해 몇 시간 병간호를 하러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내 기억 속 그대로가 아니었다.
틀니를 빼셔서 그런지 쭉 들어간 얼굴과 너무도 말라버린 몸.
예전 풍채 좋은 모습의 할아버지는 없었다.
호쾌하셨던 웃음소리도 다시 듣기 어려우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슴이 미워지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있게 된 둘만의 시간.
반갑지 않은 병원 냄새와 어색한 공기 속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몰라 책을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본인의 시계를 가져다 달라고 하셨다.
시계를 전해드리니 한참 동안 떨리는 손으로 시계를 차고 계셨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묻자 손만 절레절레하시며 기어코 본인이 시계를 차셨다.
시계를 차고도 시계와 손목 사이의 공간이 너무도 많이 남은 게 여전히 눈에 선하다.
할아버진 자꾸 흘러내리는 시계를 만지작거리시기만 하셨다.
본인에게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음을 직감하시고 슬픔에 잠기신 걸까?
아니면 그저 병원에서 하염없이 보내는 시간이 아까우셨던 것일까?
그렇게 한참 동안 할아버지는 시계를 보고 계셨다.
할아버지의 손목에서 자꾸 흘러내리는 시계를 보고 있자니 밀려오는 생각에 잠겨 읽던 책을 내려놓았다.
시계가 너무 커져 버릴 만큼의 공간이 생기려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했을까?
왜 난 그 시간 동안 난 한 번도 당신을 보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저 시간은 영원할 줄 아는 젊은이의 안일한 착각이었나.
내가 초등학생 때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난 너무 어려서 그저 오늘의 어린 동생처럼 밝게만 있었다.
그리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할머니가 나에게 참 잘해주셨지 하며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마다 어리기만 한 내가 참 철없구나. 하며 웃는데, 씁쓸한 미소는 여전하다.
그리고 이번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또 다른 후회가 할아버지가 시계 차던 모습과 함께 찾아온다.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이 많이 없다는 게 후회가 되어 눈보다 맘을 적신다.
비록 어색하게 있더라도 같이 시간을 조금 더 보내며, 부끄럽더라도 건강하세요.라고 말할걸
당신을 추억하며 당신을 맘껏 그리워할 수 없다는 게 여전히 죄송스럽다.
이제 생각해보면 할아버지는 서둘러 돌아가셨다.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지 3일 만에 그렇게 편안히 가셨다.
더 이상 할머니를 오래 기다리게 하실 수 없어 서둘러 길을 떠나신 건 아닌지
이미 갈 준비를 마치셨기에 계속해서 시계를 쳐다보고 계신 건 아닌지
남아있는 이들에게 미안함을 전하기 어려워 그렇게 서두르신 것은 아닐지
문득 장례식장에선 불손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돌아가실 때도 시계를 차고 계셨을까?
여전히 할아버지가 어떤 생각을 가지셨든 간에 이제는 시간도 영원도 없는 곳에서 할머니와 좋은 시간 보내고 계시길 바랄 뿐이다.
이젠 시간은 의미 없는 곳으로 가셨기에, 시계도 필요 없으시겠지만 꼭 차고 다니시면서 그 시계가 다시 잘 맞도록 얼른 다시 괜찮아지시길.
그리고 내가 여기서 문득 손목시계를 보면 당신이 떠오르듯
할아버지도 문득 시계를 보다 우리를 떠올려주시며 가끔은 추억해 주시기를 손주 된 입장에서 살아생전 못 부린 어리광 부리며 부탁도 본다.
그리고 여기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당신을 그리워하는 가족들 꿈에라도 찾아와
가끔씩은 잘 있다고. 잘 기다리겠다고. 무심한 척 한마디 해주시길.
부디 안녕히.라고 인사했지만, 부디 영원한 이별이 아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