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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피 Jul 20. 2021

바다에 띄운 마음

바다를 보며, 그들의 마음에 내 그리움을 띄운다.

제주, 그곳에서 일하면 좋지 않을까? 

어찌 보면 막연한 생각만을 가졌던 나였는데, 어쩌다 보니 제주에서 생활하고 있다.


제주도, 제주는 섬이다.

섬은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인지, 제주 어르신들 말로 흔히 '육지 것'이라 불리는 육지 사람들과 연락을 할 때면 

그들은 심심치 않게 내게 묻곤 한다.


거기 있으면 외롭지 않아? 난 좀 외로울 것 같은데 넌 잘 있는 것 같다.

애초에 난 외로움을 잘 못 느껴.라고 웃으며 대답하지만, 

그대와의 통화가 길어지는 것은 외로움 혹은 그리움 때문에 그리고 반가움과 고마움 때문에

쉽사리 끊지 못하는 것이다.



긴 고민 없이 제주에 불쑥 홀로 찾아온 나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맺어가지만 수십 년을 육지에서 살아온 나이기도 하다.

인간은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는데, 현재 동떨어져 홀로 살아가는 내가 그 감정을 모를까?

외딴섬, 그것도 대한민국 최대 관광지 중 한 곳인 제주.

수많은 여행객을 보며 출퇴근하는 내가 그 감정을 느끼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도 난 그런 거 잘 몰라.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은 그냥 내 감정을 들키기 싫어하는 거짓말일 것이다.


외로움과 그리움은 분명 다르게 정리된 감정이다.

외로움은 혼자가 됐을 때 느끼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이며

그리움은 무엇인가가 그리워 사무치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다.

하지만 난 이 비슷한 듯, 다른 이 감정과 느낌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문득 외로움을 느끼고, 그 외로움이 그리움이 되든지

그리움을 먼저 느끼고, 깊어진 그리움이 결국 외로움이 되든지

적어도 나에게 있어 이 두 가지 감정은 항상 함께 찾아오기 때문이다.

나로선 도저히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기에, 그냥 '또 울적'이란 단어로 뭉개버린다.



내게도 이 자연스러운 감정은 크고 작게 거진 하루걸러 하루꼴로 찾아온다.

어쩌면, 매일 크고 작게 찾아온다.

늘 쉽지는 않은 일이다.


이 울적이란 감정은 늘 무례하게 찾아오기에 초대하지 않은, 그래서 환영할 수 없는 감정이다.

주로 홀로 방 안에 있으면 노크는 물론이고, 불쑥 문도 열지 않고 찾아온다.

보통은 애써 일을 만들어 몰두하면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오늘은 너와 꼭 놀 거라고 작정하고 눌러앉은 날엔 별수 없다.

이 불청객을 쉽게 내보낼 수 없기에 이런 날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밖으로 나선다.


외로움을 느껴 바다로 향하는 걸까? 문득 찾아온 그리움에 바다로 나가는 걸까?

난 이 울적함으로 가득 찬 방을, 그래서 공허한 마음을 벗어나기 위해 가까운 바다로 나가 산책을 나선다.

하지만 이 불청객은 내 방으로 온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찾아온 것이란 걸 안다.

그렇게 여전히 마음엔 울적함이라는 것을 품고 바다로 향한다.


이어폰에선 작게 깔려 오는 음악 사이로 간간이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다를 따라 난 산책로엔 관광지답게 늘 많은 사람이 나와 있다.


내 맘에 품고 있는 감정과는 다르게 셀 수 없는 화목함 그리고 애틋함들이 그 산책로에 가득하다.

아무도 날 신경 쓰진 않지만, 그들이 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갈 때면, 난 애써 홀로 외면하며 걷는다.

그렇게 수많은 마음을 지나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 닿으면,

잠시 앉아 이미 꼬일 대로 꼬여 알 수 없어진 마음을 더 꾸깃꾸깃 꾸기고, 응축하여 바다에 띄운다.


바다에 띄운 것은 정리되지 않는 무엇인가의 복합체이다. 

사실 바다에 띄운 것이 아니라 바다에 내다 버린 것이다.

그냥 버린 것이니 네가 알아서 쓰던지, 버리든지 하면 좋으련만

기어코 이 마음도 너의 것이라며 바다는 파도를 타고 내게 다시 돌려준다.


다만, 그렇게 다시 전해 받은 마음은 수없이 친 파도 때문인지

외로움과 그리움에 가리고 엉켜져 있던 내 다른 마음도 함께 전해준다.


그렇게 바다를 보며 앉은 벤치와 내 마음엔 짐작 가는 미안함이 남는다.

그럼 조심스레 나의 그리움에게 외로움을 숨긴 채 연락을 건다.

"어, 엄마. 어, 아빠. 그냥 연락해봤어요."

이번에 외로움을 숨기는 것은 나보다 날 더 걱정할까 봐. 하는 선의의 거짓말이다.


바다를 보며, 그들의 마음에 내 그리움과 미안함을 띄운다.

그럼 어느새 내 마음엔 또 고마움이란 답장이 도착한다.


그렇게 다시 방으로 향하는 길엔 

외면할 거리였던 마주 오는 애틋함과 화목함이 궁금해져 이어폰을 빼고, 걸음을 늦추기도 한다.

방에 도착할 때쯤이면, 

내 마음에 알 수 없는 그 울적함은 어느새 조금은 글로 풀어낼 수 있을 만큼의 미안함이 묻은 감정이 되어있다.



몸은 홀로 이 외딴섬에서 떨어져 살고 있다.

마음만은 홀로 외딴섬이 되지  말라고 가끔 지독한 울적함이 날 찾아오는 것은 아닐지 괜한 생각을 해본다.


울적함이 우울함이 될 것 같은 날엔 어김없이 난 또 바다로 향한다.

그리고 바다에 마음을 띄운다.

아니 내 마음에 그리움과 미안함을 그들 마음에 띄운다. 


그렇게 홀로인 듯 함께 또 살아가며 다 전하지 못한 미안함을 전하며 또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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