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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덜투덜 Jul 21. 2022

똑똑똑 예술가 (1)

데레사 어르신

 

온화한 성품의 데레사 님은 가족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시다. 이비인후과 의사인 아들과 미국에서 임상병리사를 하는 딸. 그리고 물리치료사와 방사선과 간호학과를 전공한 손주들 데레사 님의 가족들은 어쩌면 한의사였던 데레사 님의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것 같다. 데레사 님은 젊을 때는 공부를 더 하고 싶지 않았었지만 아버지의 한의원을 물려받지 않은 것은 조금 후회하신다고 하셨다.      

데레사 님의 아버지는 부산 토성동에서 [거창당]이라는 한의원을 하셨다. 그 당시 국제신문의 옥기 자라는 분이 맹장염으로 다녀가셨다고 기억하고 계셨다. 천상 갑이라는 동물의 껍질을 연탄불에 볶으면 아~ 오늘도 맹장염으로 오신 분이 계시는구나 할 정도로 늑막염과 맹장염을 낫게 하는 곳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한의원 안에는 많은 약재 상자와 천정에는 수많은 약재 봉지가 매달려 있었다. 환자분들은 끝도 없이 찾아왔었고 그 덕택에 데레사 님은 조금은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부산여중을 거쳐 부산여고를 나오셔 그 시대의 여성에 비해서는 나은 교육혜택도 받으셨다. 집에는 살림을 보는 이도 따로 있어서 결혼 전에는 부엌살림을 해 보지 않으셨다고 하신다. 행복하고 꿈 많은 아름다운 여성이셨다. 

    

그러다가 22세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그동안 겪어보지 못한 힘든 경험을 하시게 된다. 결혼 준비물로 어머니가 앞치마를 만들어 주셨을 때 어머니가 이걸 왜 만들어 주시는지 모르셨다고 한다. 한의원 집에는 살림을 해주시는 분이 있으셨기 때문에 앞치마의 사용용도를 생각해 보지 못하셨을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 5남 1녀 중 장남인 남편을 비롯해 9명의 대가족의 식사를 매 끼니마다 준비하며 멘붕이 오셨다고 한다. 얼마나 대략 난감 이셨을지 상상이 간다. 하루하루를 가족의 뒷바라지로 힘든 나날을 보내던 중 결혼 7년 만에 친정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데레사 님의 슬픔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너무나 낯선 환경에서의 결혼생활도 그럭저럭 세월과 함께 익숙해지며 주변 분들은 조용하고 온화한 데레사 님을 마냥 소심하게만 보셨을지도 모르지만 자녀분들의 진로 문제에서는 뜻을 굽히지 않는 강경함을 보이셨다.     

아들의 진로로 고심하고 있을 때 의대를 적극 추천하였고, 의사가 되는 과정에서 학교의 경영방침이 엄해져 제적을 당하는 등 곱이 곱이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데레사 님의 의지가 큰 힘을 발휘하였다.

다른 전공을 선택하려 하였던 아들에게 재적된 학생들의 재입학 가능 소식을 듣고 정보를 수집하고 관계자를 찾아가 설득하며 평소의 데레사 님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전투력을 보이셨다.

역시!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한 것인가    

물론 본인의 노력이 뒷받침되어 5년 후 복학을 하게 된 아들은 지금은 어엿한 이비인후과 의사가 되어 데레사 님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주고 있다. 그리고, 카이스트 출신의 사위의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큰딸은 사위의 연구원 뒤의 거취가 불분명해진 것이 계기로 가족을 위해 병원의 작은 일부터 시작해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본래 화학전공이었던 딸은 누구보다 전문용어에 이해력이 높고 정확하게 잘했었다고 한다. 병원일을 하면서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임상병리 자격증을 취득해 임상병리사로 근무하고 있다. 아마도 가족의 일이라면 전투력이 상승하시는 데레사 님을 닮아서 일 것이다. 손주들에게도 병원 관련 일을 추천해 전공을 하고 있다.      

요즘은 귀가 잘 들리지 않으셔 보청기를 끼고 대화하다 보니 상대방의 말을 잘 못 듣는다는 생각에 조금은 자신감을 잃고 있다고 하시지만, 괜찮으십니다. 전력 질주하며 살아오셨으니 든든한 자녀분을 믿고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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