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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Jun 26. 2024

가끔 엄마가 미운적도 있었어요.

아이의 말을 기록하고 수집합니다.

최근 2주간 집에 역병이 돌았다. 그 덕에 아이는 등원중지, 여름방학을 한 달 앞두고 찐한 가정보육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등원중지만 되었을 뿐 적어도 내가 보기엔 아이는 매우 멀쩡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암막커튼을 꽁꽁 해두어도 커튼 틈 사이로 밝은 빛을 감지했는지, 6시면 기상한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그 시간이 가장 괴롭다. 내가 눈을 뜨지 못하고 애써 아이의 기상을 모른 척하고 있노라면 더 이상 누워있을 수 없을 만한 필살기를 발사한다.


"엄마 배고파요."


오냐... 우리 아들 배고프다는데 어쩌냐 일어나야지.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이른 아침을 먹고, 이틀에 한 번은 텃밭에 가서 물도 주고 잡초를 뽑았다. 그리고 집에 오면 아직 9시다.

이제 밖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고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해서 더 이상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아직은 공식적으로 환자인 아이를 데리고 에어컨이 틀어진 실내로 가기도 난감하다. 어쩔 수 없지. 집에서 뒹굴자 아들아. 아이가 하고 싶다는 역할놀이도 하고, 책도 읽어주고 그 사이에 집안일도 하나씩 해가며 하루를 보낸다. 진짜 누가 밥만이라도 해줬으면 싶은 며칠이었다.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아이와 집에서 단둘이 보낸 것이 하루이틀도 아닌데, 한동안 유치원에 잘 가고 그 덕에 내 시간이 제법 확보되었던 통에 다 잊었나 보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문득 아이가 옆에 와서 이런 말을 한다.


"엄마 있잖아요. 가끔 엄마가 미웠던 적도 있었어요."

"응? 뭐라고? 엄마가 미웠어? 진짜?"


태연한 척 대답은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라고 당황스러운 말이었다. 잘못해서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나도, 금세 내게 달려와 사랑을 말하는 아이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고, 엄마랑 평생 살 거라는 우리 아들이 내가 미운적이 있었다니...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날 밤 잠들기 직전에 침대에 누워 낮에 있었던 일을 슬쩍 물어보았다.


"봄아 근데 있잖아, 아까 엄마 미운적 있다고 했잖아. 그때가 언제였어? 엄마가 너 막 혼낼 때?"

"아니요. 엄마가 나 혼자 놀라고 하고, 노트북만 했을 때요. 그때 엄마 쪼금 미웠어요."

 



 아마 작년에 있었던 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즈음 아이는 툭하면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고 울었다. 혼도 내보고, 어르고 달래보다 결국 고집을 꺾지 못하는 날이면 엄포를 놓곤 했다.


"그래 가지 마. 근데 엄마 할 일 있어서 바빠. 그러니까 유치원 안 가는 대신 혼자 놀아야 해 알겠지?"

일단 유치원에 가기 싫은 아이는 그러고마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어찌 그게 되겠는가, 좋아하는 영어 영상 한편을 보고 나면 이제 시작이다.


"엄마 놀아요."

그러면 나는 아이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매몰차게 대답했다.

"엄마가 아까 말했지? 엄마 할 일 있다고. 유치원 안 갔기 때문에 혼자 놀아야 해. 알겠지?"

그리고는 뚫어져라 노트북만 들여다 보았다. 당시 나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일을 잔뜩 벌려 놓기도 했고 무엇보다 아이가 혼자 심심하면, 유치원에 가겠지라는 얄팍한 계산도 깔려있었다.

그런다고 해서 한 번에 "네" 하면 아이겠는가. 나의 쌀쌀맞은 반응에도 굴하지 않고 5분마다 달려와 놀자며 조른다. 그러는데 일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제대로 될 턱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고집스레 일을 해야 한다며 아이를 밀어내었다. 그때 아이는 그런 내가 미웠다고 한다.

자신을 바라보아 주지 않고, 오로지 노트북에만 시선이 가있는 엄마가 미웠던 것이다.




아이의 말을 듣고 나니 미안함이 몰려왔다.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품에 꼭 안았다.


"그랬어? 엄마 몰랐네. 미안해. 그런데 있잖아... 혹시 지금도 엄마 미워?"

"아니요. 지금은 안 미워요. 컴퓨터 안 하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요즘은 거의 주 2-3회 운동을 하는 것 외엔 책도 거의 읽지 않고, 자기 계발을 위한 배움이나 온라인 모임도 다 내려놓았다. 내 욕심에 한 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다 보니 이게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하는 건지, 남들이 하니까 해야 하는 건지, 일단 그냥 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원하는 일들을 갖가지 이유들로 잘 끝내지 못했을 때 돌아오는 "네가 그러면 그렇지" 하는 자기혐오는 덤이었다. 그래서 자의 반 타의 반 휴식을 하던 차에 아이와의 찐한 시간. 아이가 하는 말들, 행동들이 몇 달 전보다 훌쩍 더 자라있었는데 나는 그 변화를 잘 느끼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이 시간이 때론 힘들면서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 5분만 누워있자라고 사정했다고 한다.)


아들아! 사실 엄마도 나만의 시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 너와 온전히 하루를 보내는 것이 이상만큼 매 순간 행복감으로 가득 차있진 않았어. 그럼에도너와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때, 네 손을 잡고 걸을 때, 엄마 ~ 하고 나를 부르며 폭 안길 때, 너를 간지럼 태우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을 때 그냥 오늘 엄마의 하루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단다. 어쩌면 그게 진짜 행복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게으름과 높은 이상사이에서 난 오랫동안 자신을 소중히 하는 법을 찾지 못했다. 답은 간단했는데 말이다. 나는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잘 살면 됐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하찮게 만드는 일을 하지 않는다. 섣불리 재단하지도 않는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면, 나도 내 삶도 그 순간부터 달라진다.

 <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지>, 리틀타네 중에서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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