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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Nov 06. 2023

엄마가 식기세척기를 사라고 돈을 보내줬다.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얼마 전 내 생일

엄마가 갑자기 내 통장으로 많은 돈을 보내왔다.

이제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


"엄마, 무슨 돈을 이리 많이 보냈노? 0 하나 잘못 찍은 거 아이가?"

"아니다, 맞다. 엄마가 니 이번에 이사 가는데 식기세척기 사라고 주는 거다. 남는 거는 생일인데 집에서 밥 하지 말고 외식해라."

".... 뭔데 엄마, 내 식기세척기 살 돈 있다."

"안다. 그걸로 꼭 사라 엄마마음이다. 엄마 지금 바빠서 나중에 통화하자. 생일축하한다 딸."


엄마와 전화통화를 마치며, 몇 년 전 할머니와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결혼준비에 한창 바쁘던 어느 날

할머니가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그리고 아주 닳고 닳은 통장과 도장하나를 내미셨다.


"요새 세탁기 을매고? 여기서 돈 꺼내서, 세탁기 하나 사라."

"할매!! 할매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내 돈 많다. 세탁기 안 사줘도 된다. 내 이 돈 못 받는다."

"할매가 하나 사주고 싶어서 그란다, 세탁기 보면서 할매 생각하면서 잘 살라고..."

"에이 그래도 안 받는다, 이만큼 키워줬으면 됐지. 돈까지 받으라고, 싫다."


통장에는 1만 원, 5만 원, 10만 원...

오랜 시간 차곡차곡 저금이 되어있었다.

안 먹고, 안 입고 모으신 돈임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차마 그 돈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못내 서운해하셨지만 나는 기어코 그 돈을 뿌리쳤다.


할머니는 시조부모, 시부모, 자식들, 조카들 까지 건사하며

일평생 일만 하며 사셨다.

그럼에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시집가는 세 딸들에게 제대로 된 이 불 한 채 해주지 못한 것이 평생 가슴에 한으로 남은 분이셨다.

그런데 할머니의 아픈 손가락이 자, 당신 손으로 키운 손녀가 시집을 간다니 할머니의 비상금 통장을 내게 건넨 것이다.


그냥 받을걸, 그걸로 최고로 좋은 세탁기 사서 쓸 때마다 할머니 생각할걸...

두고두고 마음에 남아 후회가 된다.



내가 결혼 준비를 할 무렵에 엄마는 하던 일이 잘 되지 않아서, 빚까지 지고 혼자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때 엄마는 결혼하는 내게 그럴듯한 혼수하나 장만해 주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다. 이제라도 줄 수 있어서 엄마는 다행이고 기쁘다고 하셨다.


 늘 남에게 뭔가 주는 게 편했지, 받는 게 참 어려운 나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밀어내기 바쁜 사람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에게 베풀며 상대도 기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일도 해보며 살아볼 참이다.


 할머니가 건넨 돈과 마찬가지로 엄마가 얼마나 고생해서 그 돈을 모은 걸 알기에 이걸 받아도 되나 한참 고민을 했다. 고민 끝에 이번에는 기쁘게 받기로 했다. 그리고 최고로 좋은 식기세척기를 사서, 두고두고 엄마 생각하며 잘 살아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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