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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Jan 17. 2024

아들에게 프로포즈 받는 엄마

아이의 말을 수집하고 기록합니다.

한 번도 아이에게 그런 질문을 해본 적이 없지만 만약 우리 아이에게 누군가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다면

거의 99%의 확률로 엄마가 좋아라고 할 것 같다.

그만큼 우리 아이는 엄마바라기다.


내가 봐도 우리 남편은 좋은 아빠다.

평일에는 회사일이 바빠 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는 대신, 주말 시간은 오롯이 아이를 위해 쓴다. 주말이면 삼시세끼 밥 하느라 더 바쁜 나 대신 늘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잘 놀아준다. 내가 해주지 못하는 몸으로 놀아주기도 아빠담당이다. 엄마가 허락해 주지 않는 약간 불량스러운 간식도 아빠가 있으면 조금 너그러워진다. 내가 종일 집을 비워도 어렵지 않게 종일 아이와 시간을 곧 잘 보낸다. 그렇게 신나게 아빠와 하루를 보내고도 늘 결정적인 순간에는 엄마! 를 찾는다.


 밥 먹을 때도 엄마, 목욕할 때도 엄마, 특히 잘 때는 무. 조. 건 엄마!

아빠와 언제 그렇게 즐거웠냐는 듯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며 엄마 품에 쏙 안겨버리는 아이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남편은 아이에게 배신감과 함께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드나보다. 본인이 아이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냐며 억울함을 내게 토로하기도 한다. 나는 둘 사이의 신경전에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대체 왜 그러는 걸까...?

미스터리한 두 남자의 관계의 비밀을 누구보다 알아내고 싶은 건 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와 함께 자려고 침대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나는 있잖아요. 아빠가 엄마만 좋아해서 아빠 말을 안 듣는 거예요."


뭐. 라. 고? 그럴 리가 있니 아들아

누구보다 아들바라기 인걸 엄마가 아는데, 엄마를 더 좋아한다니...


 이어진 아이의 말을 들어 보니, 주말에 엄마아빠와 함께 있는데 엄마 아빠가 자꾸 자기를 빼놓고 이야기를 하는 게 속상하다고 한다. 엄마는 아빠만 보고 웃는다나 뭐라나... 아이의 질투가 귀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소외감을 느꼈을 것을 생각하니 좀 미안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아빠말을 안 듣는 건 좀 너무 하지 않니? 그렇게 또 며칠이 흘렀다.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아빠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데, 아이가 엄마 안고 잘 꺼라며 매몰차게 아빠를 거절한다. 내가 그 말을 들었어도 무안하기도 하고, 서운했을 법한 상황.


 혼을 내야 하나, 타일러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아빠에게 그렇게 행동하면 아빠가 얼마나 서운하시겠어. 하면서 잔소리 같은 긴 이야기가 이어졌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이가 한마디 한다.


"나 사실 아빠가 엄마랑 결혼해서 이러는 거에요! 나도 엄마랑 결혼하고 싶은데 엄마는 아빠랑 결혼했잖아요 엉엉.."


마음 상했던 남편도, 나도 귀여운 아이의 고백에 사르르 녹고 말았다.


그래 정말 고마워 엄마 많이 좋아해 줘서.

그리고 미안해 아빠랑 먼저 결혼해서...

그래도 엄마아빠는 너를 너무 사랑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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