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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플호랭이 Jan 24. 2024

웃음이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래요.

아이의 말을 발견하고 수집합니다.

아이와 딱 붙어 지내길 며칠

"엄마 설거지만 하고 놀자. 놀고 있어"라고 말한 뒤

주방 싱크대 앞에서 잠시 한숨을 돌려 본다.

 

아이는 쪼르르 나에게 달려와 말을 건다.


"엄마 웃음이 없는 하루는 낭비한 하루래요. 난 오늘 하루를 낭비한 것 같아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건네는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왜? 낭비한 하루야? 무슨 뜻이야?"

"엄마는 나랑 안 놀아 주잖아요. 나는 너무 심심해요. 그래서 난 오늘 웃지 못했어요."


그렇다 나는 아이와 노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엄마다.


아이와 놀아줬다고 표현을 하긴 했지만, 대체로 아이와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가 한참 어릴 때는 아이와 놀아주는 법 같은 책도 참 열심히 사다 모았다. 밤에 잠을 아껴가며 다음 날 같이 놀 놀잇감도 만들어 보고, 각종 SNS를 섭렵하며 놀이방법을 검색했다. 그마저도 마땅치 않은 날이면, OO 아이와 갈만한 곳을 검색하며 오늘은 아이와 어딜 가서 하루를 보내나를 고민하곤 했다. 아이가 잠시 관심을 보이는 날도 있었지만, 아이 취향에 맞지 않거나 금세 싫증을 내는 날이 훨씬 많았다. 일방적으로 하고 싶은 놀이가 생기면, 계속 반복해서 하자는 통에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그리고 나를 가장 공포에 떨게 하는 그 말

"엄마 심심해요."

외동이라 같이 놀 또래가 없어서 심심한가, 나와 상호작용이 부족한가, 흥미 있는 장난감이 부족한 건가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대체 어떻게 아이의 심심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조금만 놀아도 체력이 바닥 몸은 이미 바닥과 가까워지고 있는데, , 아이는 지칠 줄 모르고 놀자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이렇게 검색을 해본다.

"아이 스스로 혼자 노는 법"


 아이가 자주 심심하게 두세요. 아이가 주도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세요.라는 말을 접하고 아이에게 네가 하고 싶은 놀이를 골라와 봐. 놀이는 스스로 찾는 거야 하고 주도권을 넘겨 주려 애써보지만 아이는 온몸으로 거부한다.


"아냐 난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심심해요 엄마 놀아주세요."


 산책이라도 나가고, 밖에라도 나가면 어떻게든 시간이라도 갈 텐데 요즘처럼 집콕을 할 수밖에 없는 시기가 오면 아이와의 둘이 남겨지는 시간이 제일 두렵기까지 하다.


 이러니 아이와 둘이 있는 시간에 주방으로, 거실로 할 일을 찾아 슬그머니 도망 다녔다.

"조금만 혼자 놀고 있어. 엄마 설거지 좀 하고, 밥 준비 좀 하고, 청소 좀 하고..."

그렇게 내 할 일을 하는 동안에는 아이랑 놀아주지 않는다는 불편한 마음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놀아달라고 조르긴 하지만, 어떻게든 틈을 만들어 아이와의 시간을 피하려는 엄마의 마음을 진작 알아챘을 것이다. 그러다 이런 말을 내게 한 것이다.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유아기 시절의 놀이, 그리고  양육자와의 상호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알고 있지만, 그걸 몸으로 체험한 경험이 없는 나는 시작조차 막막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 할머니가 주 양육자인 집에서 자랐기에 나는 같이 놀 사람도,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었다. 나이차이 나는 나의 동생도 같이 논다기 보단 돌봄의 대상이었다. 혼자 놀았고, 혼자 결정했고, 혼자 참았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어쩌면 그래서 더 서툴었는지도 모르겠다.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내 생각보다는 의견에 맞춰주고 따르는 게 더 많았다. 차라리 혼자 노는 게 마음이 편했다.

 농담 삼아, 난 밥만 주면 한 달도 안 나가고 집에서 놀 수 있어할 만큼 난 혼자 놀기의 달인 지만, 아이와 노는 건 여전히 너무 어려운 숙제다. 시무룩한 아이를 보며 자주 혼자 있던 내가 보여서였을까, 혼자 있을 아이가 안타깝기도 했다가, 갑갑하고 힘들기도 했다가 복합적인 마음이 든다. 이제와 어쩌랴,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릴 수도 없고 그걸 탓하기엔 이제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걸. 그냥 이렇게 주어진 대로 부딪히며 살아보자.


하던 설거지를 멈추고 작고 소중한 아이를 꼭 안아본다.  


혼자 있게 둬서 미안하다고, 엄마 설거지만 빨리 끝내고 놀자고 이야기를 건네본다. 그러자 얌전히 내 뒤에 앉아서 꼼지락 대며 기다리는 아이.


 그래 마음을 좀 내어보자. 아주 조금만 더 집중해서 놀고, 또 바닥에 드러누워서 깔딱깔딱 체력을 충전을 할 값이라도, 그래서 다시 너에게 이런 볼멘 민원을 받을지라도 놀자고 할 때 놀자. 나중엔 엄마가 놀자고 해도 친구랑 논다고 바쁠 테니까. 이 시간을 아주 귀하게 여겨보자.


대단히 뭔가를 하고 놀지 않았지만, 아이와 짧은 깔깔댐의 순간이 지나가고 난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슬쩍 아이에게 물어본다.


"아들 오늘 정말 낭비한 하루 같아?"

"아니요. 사실 엄마랑 같이 있어서 낭비한 하루 아니에요. 좋았어요"

 

 그래. 엄마도 너랑 하루 보내서, 사실 힘이 하나도 안 들었다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좋았어.


너무 감사해.


세상에 어떻게 완벽한 엄마만 있겠니, 이런 구멍많은 나같은 엄마도 있는 거지.


그래도 네가 나를 그리고 내가 너를 넘치게 사랑하잖아.


귀한 이순간에게 감사할게.


하루를 정리하며 네가 그리고 엄마가 쓴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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