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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주 Aug 13. 2021

엄마, 나 왔어

거기 있지 않겠지만


 

엄마가 그곳에 있었다. 대구 팔공산 자락 부인사라는 고즈넉한 사찰에. 검색창에 ‘부인사’를 넣어본다. 알고 갔더라면 좀 더 풍성한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을 텐데 다녀오고서야 안다. 뒤늦게서야 알게 되는 게 한 둘일까만은, 있을 때 소중함을 알거나, 제때에 안다는 건 지혜의 영역이라 가끔씩 출몰할 뿐이다. 자주 모르고 가끔 알게 되더라도 낙망하기보다는 다행스러워할 일이라 생각하니 위안이 된다. 부인사 다녀오고서야 역사적 의미를 찾아보고, 엄마를 보내고서야 슬픈 그리움에 엄마 흔적을 찾는다. 깨달음에는 언제나 한발 늦다.



 

고려사절요사에서는 '符仁寺'로, 조선시대 기록에는 '夫人寺'로 기록되었다. '부인'이란 신라 선덕여왕을 일컫는 말이다. 예부터 사당인 선덕묘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절로 짐작된다. 경내 숭모전에는 선덕여왕 어진이 봉안돼 있다고 하나 막상 찾았을 때는 생각이 미치지 않아 들러보지 못했다.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2천여 명의 승려가 수도할 만큼 도량이 컸다고도 하고 고려 초조대장경을 판각한 것으로도 유명한 사찰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정기적인 승가시가 섰다는 부인사에서는 지금도 음력 3월 보름, 동네 사람들과 승려들이 함께 선덕제를 지낸다.

 

역사 속 부인사의 위용은 대단했을지라도 지금은 비구니들의 도량인 고즈넉한 이곳에, 엄마가 있다. 정확히는 엄마 위패가 있고 마지막 가시는 길을 배웅한 곳이다. 법당 안 왼쪽 벽면에 작은 불빛으로 자리하던 엄마 영가는 지금은 그마저도 물러났겠지만 내겐 십육 년 전 그날 멈춘 시간처럼 그 자리에서 엄마 빛을 찾느라 눈길이 바쁘다. 엄마 보내며 49재 지내던 그 때는 부인사 내력 따위 알지 못했다. 알 겨를도 없이 엄마 보내는 절차 치르느라 일주일에 한 번씩 일곱 번 탈진했다. 사십구재라는 형식은 춥던 그해 겨울 발을 더 시리게 했고 찡했던 코끝을 더 쨍하게 만들었다.



 

지난 달 미경언니의 고향, 욕지도로 하루 여행을 했다. 팔순 노모는 딸이 데리고 온 이에게 섬을 둘러보는 동안 시장할까 봐 고구마 삶아 함지박에 담아주셨고 현지인만이 아는 맛집에서 싱싱한 고등어회를 맛보게 하려고 미리 예약 해두셨다. 갓 잡아올린 해산물도 푸짐하게 대접받고 안내 잘 받은 내가 계산하려는데 식당주인이 손사래 치며 말한다. 이미 엄마가 다 계산하고 가셨다고. 그뿐만 아니라 배 시간 맞춰 포구로 나가니 노모는 욕지 고구마와 돌멍게, 갈치를 상자째 구입해놓으셨다. 싱싱한 맛으로 먹는 거라며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말씀하시는데 아침부터 켜켜이 저장된 정이 기어이 엄마 생각을 불러냈다. ‘엄마도 있었다면 저리 했을 텐데…’

 

돌아오는 배 안에서 미경언니와 부인사에 다녀와야겠다는 일정을 잡았다. 가서 “엄마, 내 옆에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어.”하고 이야기하고 싶다. 피붙이마냥 내 살림을 돕고 내가 하는 일에 신뢰와 존경을 보내는 사람, 우렁각시 같은 사람이 내게 있다고. 아픈 손가락이기만 했던 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보여주고 싶은 마음. 엄마 앞에 보이고 싶은 사람이 한 둘일까만은 미경언니가 먼저 보여준 엄마 딸 콘셉트가 마음 움직여 갑작스런 나들이를 실행했다.



 

평일이기도 해서겠지만 인적 없이 조용한 산사다. 법당을 나와 엄마자리 둘러보고서 굳이 공양간 가는 길을 찾아 걸었다. 일곱 번 재 지내는 동안 엄마 보낸 슬픔 속에서도 밥을 먹어야 한다는 게 끔찍하게 여겨졌던 아픈 길이다. 발끝으로 눈물 떨구며 걷던 그날의 내가 보이는데, 개 짖는 소리에 생각에서 빠져나온다. 그때는 없었던 선물코너에나 있음직한 귀여운 개 두 마리가 우리를 경계하느라 버티고 섰다. 개 뒤로 보이는 개집은 넉넉한 공간에 기와로 지붕을 앉혔다. 주인장 마음씀씀이가 정겨워 덕분에 웃음이 만들어졌다.

 

나뭇가지 끝마다 물이 올라 여린 붉은 기운이 어른어른거린다. 부인사에는 여느 절에나 다 있는 일주문이 없다. 대신 아름드리 벚나무 몇 그루가 넓은 돌계단과 석축을 지킨다. 120년 된 보호수라는 왕벚나무가 있고 그보다 더 우람한 나무가 계단 한가운데 버티고 서있을 따름이다. 봄볕 스며 왕벚나무에 꽃잎 피고 가지마다 연둣빛 조롱조롱 달릴 때 김밥 한 줄 커피 한 잔 들고 봄나들이하듯이 다시 와야겠다. 그때도 엄마에게 이야기 들려주고픈 이 손 잡고 서서 말해야지. “엄마, 나 또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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