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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rihwa Apr 22. 2023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

서울시립미술관(4/20~8/20)

  블로그 이웃님 중에 아라비카 커피 님이 계시다. 그림을 좋아하는 나와 SJ는 아라비카 커피님이 올려주는 그림 전시에 관심이 많은데, 어느 날 아침 블로그 알림에 이웃님 포스팅이 뜨길래 들어가 봤더니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한다고 얼리버드 예매에 공지가 떴다.


  빛의 속도로 반 값에 개막식날 표를 2장 예매하고 K와 W에게 이날 일정이 있는지 톡으로 물어보았다. W는 친구랑 산에 가기로 선약이 되어 있고, K는 오후 2시까지 밥퍼 공동체에서 봉사활동 하고 나면 프리라고 한다. 그래 호퍼의 그림은 K와 함께하면 되겠구나!




  개막식 전날 K에게서 전화가 왔다.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 밥퍼 봉사는 취소했으니 좀 더 일찍 만나자고 한다. 그럼 얼굴 본 지 오래됐으니 12시에 만나 점심도 먹고 차도 한 잔 하자고 했더니, 남편이 은퇴하고 집에 계셔서 점심을 차려주고 올 테니 1시쯤 카페에서 보자고 하신다.


  왜 은퇴한 남편들은 혼자서 점심 한 끼를 못 차려 먹는 걸까? 나는 우리 집 세 남자를 야무지게 교육시켜 두었다. 내가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떠나도 끄떡없을 정도로 몇 가지 요리를 할 수 있게 훈련을 시켰더니 이제 어떤 음식은 나보다 낫다.


  큰 금쪽이 SM님은 라따뚜이, 스테이크, 파스타 요리를 잘하고 작은 금쪽이 SJ님은 김치볶음밥, 라면 요리에 진심이고 남편은 조개와 생선요리에 전문가 되셨다. 


  '라그린'에서 카페라떼를 마시며 몇백 년은 족히 된 은행나무를 쳐다보기도 하고 넉 달만에 만났으니 그간 일어난 일들도 이야기하다 보니 미술관 예약 시간이 되어간다.



  첫날이라 그런지 미술관 입구에는 줄이 굉장히 길다. 2층에서 3층 그리고 1층 순서로 관람을 했다. 호퍼의 파리 시절, 뉴욕 시절, 뉴잉글랜드 시기 이렇게 여정을 따라가며 그림을 보는데 '철길의 석양' 그림 속 노을과 하늘이 참 예쁘다. 철길옆 우뚝 선 신호탑 뒤로 초록의 언덕과 함께 일몰을 묘사한 이 작품은 기차 창문 너머로 보이는 장면을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풍경이다.


  "사람들이 내 작품에서 '외로움'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같다.(The loneliness thing is overdone.)"

                        에드워드 호퍼

'고독의 화가'로 불리는 20세기 미국의 대표 화가 에드워드 호퍼는 생전인터뷰에서 이렇게 불평한 적이 있다.


  그림을 보는 동안 호퍼의 세계에 푹 몰입하게 되었고, 특히 아내인 조세핀이 모델로 자주 등장하게 되는데 큐레이터나 미술학자들은 호퍼의 시기를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이렇게 나누기도 하지만, 나는 좀 다르게 생각한다. 호퍼의 그림은 조세핀을 만나기 전과 그 이후로 나눌 수 있는데, 조세핀은 그녀의 작은 노트에(저널이라 쓰고 작가의 장부라고 읽는다.) 호퍼의 그림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얼마에 팔고 수수료는 몇 달러였으며 누구에게 팔았는지도 모두 기록을 해 두었다. 당시에 두 사람은 연극을 자주 즐겼는데, 연극 티켓도 모두 보관해 두었더라. 대부분 연극 값은 1달러였다.


'아침에 내리는 햇빛'은 1960년 작품으로 여름날 해안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데, 빛의 극적인 잠재력과 건축과 주변 환경이 교차하는 방식에 집중한다 두 모녀의 한가로운 여름날 아침을 상상하며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게 만드는 그림이다. 딸이 없는 나는 가운을 걸치고 신문을 읽는 중년의 이 엄마의 여유가 참 부럽다. 비키니 차림으로 난간에 걸터앉아 무심하게 해변을 보는 딸의 젊음과 빛나는 청춘도 살짝 부럽긴 하다.(그래서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No! 그건 아니고...)


  1층의 기념품점을 잠깐 들렀는데, 마그네틱 코너가 보인다. 실은 호퍼의 그림이 그려진 스카프가 맘에 들었지만, 스카프는 다음날부터 판매한다고 해서 같은 그림이 그려진 마그네틱을 골랐다. '오전 7시'였는데 이 자석은 K가 선물로 사주었다. K는 오래 고민하더니 '푸른 저녁'을 골랐다. 파리의 카페를 배경으로 노동자와 광대, 매춘부, 예술가 등 다양한 인물 군상을 보여준다. 



호퍼의 오전 7시(K가 사준 마그네틱 기념품 자석)


  에드워드 호퍼와 조세핀 덕분에 평일 오후 한나절 소확행을 누렸다. 블로거 이웃인 아라비카 커피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호퍼의 그림은 8월 20일까지 시립미술관에서 관람할 수 있으니, 그림을 좋아하시고 호퍼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시간을 내어 나들이 다녀와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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