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에 하고 싶은 게 많다 보니 요일 별로 계획을 잘 짜야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더니, 이건 뭐 매일 출근할 때보다 왜 이렇게 바쁜 거야?
월 화는 목공 수업, 수요일은 가죽공예, 목요일은 맨발 걷기 모임 그리고 금요일은 혼자 계시는 친정 엄마에게 가서 점심 맛난 거 한 끼 사드리고 말동무도 되어드리느라 은퇴 후에도 매일 어딘가로 출근하는 느낌이다.
아파트 커뮤니티 공간으로 구청에서 지원해 주는 강사 샘이 오셔서 수업을 해주시는데, 나만의 가방 만들기 프로젝트에 끌려서 매주 가죽 손바느질을 하는 중이다.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다 보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몰입하게 되어 은근히 중독성이 있다. 학창 시절 가사 시간에는 한복 저고리며 블라우스 만들 때 A를 못 받아서 내가 손재주가 없는 사람이구나 하며 살았는데 우리 가죽공예 옥쌤은 어찌나 칭찬을 많이 해주시는지 절로 기분이 좋아지고, 이러다 가죽공방 하나 차릴 기세다.
지난주 더위가 기승을 부린 광복절에는 남편 아들과 함께 용소계곡에 발 담근 채 평상에 앉아 가죽 바느질 삼매경에 빠졌더니 더운 줄도 몰랐다.
작은 카드 지갑 하나 만들어서 잘 들고 다니는 중이다. 남편은 빈폴보다 멋지다고 한 술 더 뜬다. 이제 두 번째 만드는 가방은 가을에 들고 다닐 갈색 토트백인데, 여기에 끈도 달아서 크로스로 만들어 볼 요량이다. 취미로 시작한 건데 자꾸 욕심을 부리니 바느질 서너 시간 하고 나면 눈이 침침하고, 어깨가 결려서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러다 오십견 겨우 치료했는데, 재발하는 거 아니지? 어제 인터넷 쇼핑에 보니 찰스 앤 키스 호보백이 근사한데 12만 원도 안 하던데 지금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주문 버튼 누르고 싶어 손이 근질근질하다. 이태리 장인이고 뭣이고,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가방 어쩌고에 걸려 넘어져서는 에어컨 틀어놓고 가죽가방 바느질 삼매경이다. 이러다가 맘대로 바느질 안되면 네이버 장바구니 눌러서 다음 주엔 가방이 문 앞에 와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