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3월 1일까지 전시를 마감하려 했으나 연장해달라는 요구가 빗발쳐서 2주를 더 전시해서 지난주 3월 15일에 합스부르크 600년 관람은 종료되었다.
용산 중앙 박물관에서 하는 합스부르크 600년 전시를 보러 가는 날. 근처에 맛집이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쏭타이 치앙마이라는 태국 음식점이 눈에 보인다. 평소 태국 베트남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가볍게 예약하고 그림 보러 가는 날, 조금 일찍 서둘러서 쏭타이 치앙마이로 갔다.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 먹는 시간이라서 북적거리는 골목길로 접어드니 노란색 외벽이 아담하고 빈티지스럽다. 왕갈비 쌀국수랑 뿌팟뽕 커리를 주문하고 와인 두 잔 곁들였다. 역시 비주얼도 훌륭한데 커리 향이 군침 돌게 만든다. 쌀국수에 들어간 왕갈비는 고기가 연하고 부드러운 것이 입안에서 살살 녹고 뿌팟퐁에 들어있는 새우와 꽃게는 바삭하면서도 커리와 잘 어울려 레드 와인이 술술 들어간다.
미리 예약한 덕분에 창 밖이 보이는 창가 자리에서- 평일 직장인들은 바쁘겠지만-느긋하게 음미하며 와인 향에 살짝 알딸딸하니 좋다! 맛있게 먹고 테디뵈르 하우스에 가서 라떼 한 잔 할까 했는대, 왠걸 대기팀이 31팀이란다. 아쉽지만 잽싸게 포기하고 어프로치로 가서 라떼에 소시지 롤을 시켜 넷플릭스로 일타스캔들 보며 평일 오후의 한가로움을 만끽한다.
어프로치는 오래된 벽돌 주택 2층을 개조했는데, 예전에 우리 애들 어릴 때 살던 골목길 주택집 생각도 나고 그때 감성에 살짝 젖어 본다. 애들은 훌쩍 자라서 성인이 되었고, 나는 이 벽돌집만큼 나이를 먹어 간다. 어프로치처럼 리모델링하면 나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싶어하는 핫플, 매력적인 장소가 될 수 있을까?
4시에 합스부르크 600년을 예약해 두어서 용산 박물관까지 도보로 걸어가니 서늘한 겨울바람이 상기된 볼을 어루만져 준다. 입구에 설치된 대형 포스터 앞에서 인증샷 한 컷 찍고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로세. 2시간씩 정해진 인원만큼 들여보내고 있는데도 겨울방학에다가 입소문을 타서인지 자녀들 데리고 온 엄마들로 넘쳐난다.
합스부르크가에서 600여년에 걸쳐 수집한 회화들 중에 널리 알려진 작품들을 엄선해서 전시중이라 상당한 기대감을 안고 갔다. 제일 보고 싶던 그림은 마르가리타 공주와 마리 앙투아네트 초상화였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겨우 여섯 살의 마르가리타 공주는 똘망한 눈빛과 다부진 입매, 곱슬거리는 금발 머리와 양 손으로 살짝 들어올린 치마 - 그림 앞에서 한참을 서서 지켜보아도 질리지 않는다. 가슴의 브로치 위와 어깨 소매에 달린 진홍색 코사쥬 꽃장식이 포인트가 되어 앳되고 귀여운 어린아이면서도 동시에 스페인 왕국의 공주로서 귀티가 흐른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하얀색 드레스는 레이스와 리본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키고, 머리에 꽂은 깃털과 치마 단에 두른 황금색 술 장식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 준다. 오른손에 무심하게 들고 있는 분홍색 한 송이 장미는 어쩐지 그녀가 혁명의 단두대에서 37세의 나이에 이슬로 사라지게 될 슬픈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며 한쪽 탁자에 놓인 화려한 왕관도 부귀와 명예의 덧없음을 보여 주는 것 같아서 서글픈 맘을 멈출 수가 없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15세의 나이에 프랑스의 왕위 계승자인 루이 16세와 결혼했다. 만약 그녀가 루이와 정략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앙투아네트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랑하는 사람과 살았을까? 테레지아 여왕은 마리의 미래를 알았다면 딸을 루이 16세에게 보냈을까?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기에 인간의 삶은 비극인 동시에 희극인 것일까?
이 그림들을 보려면 오스트리아 빈 미술관으로 가야 하는데, 한나절 시간을 내니 오스트리아가 내 곁으로 와 주었다. 내년 여름엔 기필코 빈에 가서 브뤼헐과 루벤스의 그림들도 보고야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