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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기리상 Sep 14. 2021

역시 바느질이지!

애장품. 30일 에세이 열네 번째.


 나의 애장품은 손바느질해서 직접 만든 로브이다. 요즘같이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에 툭 걸치기만 해도 가볍고 몸이 이내 따뜻해진다. 노란 꽃문양이 반복된 화려한 패턴의 인도 천으로 만들었는데, 손바느질을 배우고 처음 만들었던 로브여서 몸통 둘레는 생각보다 넉넉해졌고 팔은 약간 짧아졌다. 처음 입었을 땐 어울리나 싶었지만 입을수록 나에게 어우러지는 것이 점점 애착이 갔다.


 수개월 전 치앙마이식 손바느질을 우연히 접한 이후로, 나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복태 선생님의 바느질 강의를 들으며, 양말 한 짝도 꿰매 신지 못하던 나는 한동안 밤낮없이 바느질에 푹 빠져 살았다. 내 몸에 맞추어 천을 재단하고, 홈질하고, 홈질한 천을 엮어 옷을 지었다. 천의 종류와 디자인을 고르는 것부터 실의 색깔, 바느질 기법까지 모두 내가 선택한 방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충동구매 후 몇 번 입지 못하고 버려지는 옷들에 비해, 직접 지은 옷은 만드는 과정부터 애착이 갈 수밖에 없어 찢기고 해져도 버리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나의 로브는 여름 내내 전철의 에어컨 바람을 막아주었고 타는 듯한 햇빛도 가려주었다. 가끔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급히 현관을 나서는 후줄근한 나를 숨겨주기도 했다. 하도 입고 빨고를 반복해서인지 로브의 목 부분이 약간 뜯어졌지만, 예쁜 색깔의 실로 수선했더니 더욱 매력 넘치는 옷이 되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기 전 옷장의 절반을 비우며, 오랫동안 싫증 내지 않을 것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더랬다. 그리고는 세월을 견뎌온 빈티지 옷을 구매하기 시작해 결국 옷을 직접 만들어 입기에 이르렀다. 나의 바느질 세상은 그렇게 펼쳐졌고, 이제는 절대 버릴 수 없는 옷들로 옷장 한쪽이 채워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번째 옷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나의 1호 애장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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