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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니기리상 Sep 28. 2021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가 없구나.

편견. 30일 에세이 스물일곱 번째.


 하원  아이가 말했다. “우리  친구가 그러는데, 남자가 치마를 입는  이상한 거래.” 나는 깜짝 놀라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옛날엔 남자 왕들이 치마를 입고 화장도 하고 가발도 썼어. 유명한 옷을 만드는 회사에서도 남자를 위한 치마를 만들기도 . 여자가 원하면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바지를 입을  있듯이, 남자도 원하면 얼마든지 머리를 기르고 치마를 입을  있어.” 그런 말을 하면서 만약 우리 아이가 아들이고 치마를 입겠다고 고집을 부린다면 어떨지 함께 상상해 보았다. 치마를 원한다면 결국 입도록 내버려 두겠지만, 처음에는 나도 아이에게 바지를 권할 것이 뻔했다.


 사람이란 남의 일엔 관대하면서도 내 상황이 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게 참으로 맞는 말이었다. 나도 나름 시대에 발 맞춰가는 세련된 도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오만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이었다. 은연중에 나는 수 없는 편견을 외면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부끄러워졌다. 아이는 자기 마음속에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는 줄도 모르고 치마를 입는 남자가 신기하다며 너무나 해맑게 웃고만 있었다. 분명 나는 그 아이가 더 어릴 때부터, 일부러라도 남녀를 구분 짓는 일을 가르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내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초 단위로 내던져지는 편견들을 그대로 흡수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앞으로도 얼마나 수많은 편견을 당연하다 여기며 자라게 될까.


 나의 경우를 비추어봐도, 아이가 무의식중 자리 잡은 편견을 스스로 알아채고 바로잡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 아, 안된다. 이것 또한 이 아이에 대한 나의 편견일지 모른다. 마흔에 가까운 나도 아직 세상의 편견을 대하는 태도가 서툴러, 아이를 향한 걱정은 더 커져만 간다. 그렇다면 그저 끊임없이 바로잡아 주는 것만이 엄마로서 할 수 있는 나의 역할일지,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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