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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olfynina Sep 28. 2022

[케이티 패터슨] 아주 느린 선물들

케이티 패터슨의 작품세계 :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휴대폰으로 몇 번의 터치만 하면 다음날 아침 문 앞에 물건이 놓여져 있는 로켓배송과 식사 뿐만 아니라 커피, 디저트까지 빠른 배달로 시켜먹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빠름’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필자 또한 배송이 삼일만 걸려도 구매를 망설이는 스스로의 모습에 속도에 대한 기준이 날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빠른’ 것이 ‘나쁜’ 것일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시간은 금이다’ 라는 말처럼 신속한 처리들 덕분에 우리가 하루 24시간을 좀 더 편하고, 알차게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그 편리함에는 누군가의 숨가쁜 노고가 따른다. 또한 우리의 일상은 오히려 여유가 없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마주한다. 슬로우 라이프를 지향하는 매거진 ‘킨포크’, 예능 프로그램 ‘효리네 민박’, 캠핑용품 브랜드 ‘헬리녹스’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속도감의 세계에서 여유는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쳇바퀴 돌 듯 모두가 빠른 삶을 추구할 때 이와 반대로 나아가는 예술가 Katie Paterson(케이티 패터슨)을 소개하고자 한다.

Katie Paterson, Berlin 2014, photo by Oliver Mark



 스코트랜드 출신의 작가 케이티 패터슨은 자신을 일상적 시간 감각이 부족한 사람이라 말한다.

그렇기도 할 법이 그녀의 작품은 자그마치 100년에서 10억년에 이르는 시간을 넘나든다. 





 미래의 도서관 Future Library (2014-)

 2014년, 그녀는 ‘나무와 나이테와 책의 페이지를 시각적으로 연결한다’는 콘셉트에서 노르웨이의 숲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그 나무가 다 자라면 그것으로 책을 인쇄하여 출판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름하여 ‘미래의 도서관(Future Library)’. 매 년 한 명의 작가를 초청해 원고를 받고, 이 원고는 나무가 다 자랄 때인 100년 뒤에 공개한다. 

Katie Paterson - 'Future Library: A Century Unfolds'. 26 minutes. Film commissioned by National Gall
나무 나이테의 모양에서 영감받아 만들어진 미래의 도서관(Future Library) 건축 구조



“시간이 지날 수록 기후 변화에 자신을 연결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다른 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파괴가 아니라 선물 같은 것 말입니다. "


100년 후 공개되는 원고. 우리 뿐만 아니라 글을 쓴 작가, 심지어 케이티 패터슨까지 글의 출판이자 이 프로젝트의 완성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끝은 사실상 매우 불투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젝트는 의도 자체만으로도 100년 후를 그리며 시간의 연속성에 대해 사유하고 존재의 유한함을 느끼게한다. 앞만 보고 달려가는 우리에게 아주 먼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게 함으로써 천천히 쉬어갈 수 있도록 한다. 나는 오히려 100년 후의 세상엔 나의 흔적 하나 없을 것을 생각하니 허무하면서도 편안하다. 나의 존재가 이렇게 작다는 것이 살아가면서 무거운 인생에 살짝의 가벼움을 불어넣어 주는 기분이랄까? 케이티 패터슨도 너무나 빠르고 급하고, 열정적인 이 세상에 느림의 미학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다.

 더불어 생태계 파괴하며 편리한대로 살기에 급급했던 우리세대가 후대에게 이 프로젝트로 하여금 작은 선물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숲을 일구고, 그들만을 위한 책을 남기는 그 마음이 참 따뜻하게 다가온다. 

미래도서관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설가 한강의 모습

한국작가 한강

2018년에는 한국의 소설가 '한강'이 미래 도서관의 다섯번째 작가로 선정되었다. 미공개작품의 제목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라고 전해진다.

그녀는 미래도서관 프로젝트에 올해의 작가로서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감을 전했다.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빛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뎌야만 하는 순간을 기도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마 이 프로젝트는 백 년 동안의 긴 기도에 가까운 어떤 것이라고 나는 이 순간 느끼고 있다"


원고를 전달중인 소설가 한강과 그녀의 작품


 백년 후면 우리는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아는 사람 대부분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아득하게 다가온다. 한강 작가의 팬으로서 소설의 내용이 너무나 궁금하고 아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녀의 작품이 미래세대에 닿을 순간이 기대된다. 후대를 살아갈 사람들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아주 느리지만 정성스러운 <미래의 도서관>은 단언컨데 그들에게도 참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죽어가는 별들에게 쓰는 편지 The Dying Star Letters (2011-2014)

케이티패터슨의 작품 중 상당수가 천체물리학에 관련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죽어가는 별들에게 쓰는 편지(The Dying Star Letters)'를 소개한다. 

이는 별이 폭발할 때마다 천문 연구소로부터 통지를 받고 별의 사망을 기리는 조위문을 쓰는 프로젝트이다. 매주 적게는 3통에서 많게는 150통까지의 편지를 발표한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서는 상대를 떠올리고 진정 마음으로 생각해야만한다. 그래서 편지를 쓰는 행위는 사랑이 담긴 일이다. 

별과 사랑. 

나는 케이티패터슨의 <죽어가는 별들에게 쓰는 편지> 프로젝트를 보고 문득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바로 윤동주 시인의 시, 서시의 일부이다.




모든 죽은 별들 All the Dead Stars (2009)

모든 죽은 별들(All the Dead Stars)은 인류 역사상 관측되고 기록된 27,000개의 죽은 별들의 위치를 묘사한 대형 지도이다.  별의 수명은 질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수천만년에서 수억만년 정도라 한다. 별에 비하면 우리의 일생은 부끄러울 정도로 짧다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우리는 별에서 왔고 죽어서는 별로 돌아간다'라는 말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구성하는 원소들이 별이 생을 다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먼지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과언은 아니다.

All the Dead Stars, 2009. by Katie Paterson


어떤 물체의 끝은 다른 물체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 katie paterson



 그녀의 작품들에는 생명과 죽음, 끝과 시작,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모호하면서도 광활한 경계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이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의 죽음 후엔 후세대의 생명이 찾아오고, 별의 종말에 의해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태계와 별들의 세계인 은하계까지 모두 순환의 과정에 의해 계속된다. 사람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죽음을 맞이 하는 것처럼, 별도 마찬가지고, 모든 생명체와 비생명체까지도 순환을 통해 지속되는 것 같다.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세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100년에 걸쳐 정성스레 준비하는 <미래의 도서관>과 수많은 별들에게 일일이 작별인사를 하는 <죽어가는 별들에게 쓰는 편지>, 또 죽은 별들을 기억하기 위한 지도 <모든 죽은 별들>까지. 이 세상을 살아간, 살고있는, 앞으로 살아갈 모든 존재에 대한 케이티패터슨의 사랑과 이 세계의 지속을 염원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나는 당장 눈 앞에 닥친 일들에 연연하고 초조해하는 편이라 그런지, 케이티 패터슨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 

우리는 힘들때면 바다를 찾거나, 숲에 가고싶다거나, 적어도 하늘이라도 올려다본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탁 트인 자연을 본능적으로 갈망한다. 광활하고 평화로운 자연 앞에선 내게 군림하던 고민도 작아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삶의 무게가 버겁다고 느껴질 때일수록, 그 안에 갇혀있기보다는 더 넓은 곳, 더 먼 곳으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더불어 현재가 존재할 수 있게 해준 과거에 감사하며 앞으로를 살아갈 미래세대를 위한 따뜻한 보존까지 실천해나간다면 우리는 더욱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진 : https://katiepaterson.org/artwork/ 

          www.futurelibrary.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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