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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솔 Nov 10. 2023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다

  “엄마는 취미가 뭐야?”

  갑작스런 아이의 물음에 애먼 천장만 뚫어져라 응시하며 머릿속을 헤집어 보았다. 없다. 마흔 문턱에 발을 들였다 뺀 나이가 된 후로 머릿속에서 단어 하나 건져 올리기 힘든 지경이 되었다지만, 이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다. ‘없다’라는 단어가 지닌 사전적 의미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구렁이 담 넘어가듯 얼버무리며 하는 말도 아니고, 겸손을 뽐내며 낮춰 하는 말도 아니다. 취미라고 할 만큼 감흥을 느끼고 즐기며 하는 일을 가슴에 품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그 나이 먹도록 취미거리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돼?’

  적어도 내 굴곡진 인생에서는 말이 되는 일이었다. 아홉 살 되던 해, 내 집 마련이라는 원대한 꿈을 이룬 엄마는 눈앞에 펼쳐진 빚잔치 속에서도 딸내미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피아노 학원 등록비를 척 내놓으셨다. 앙상한 나뭇가지같이 못난 손가락을 건반 위에 올려놓고 ‘도’인지 ‘도#’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일이 허다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이 어설픈 손가락이 바이엘 악보에 나열된 음표를 소리로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연습실 문 뒤에서 시간만 때우다 엄마의 고된 은행 빚으로 피아노 학원 전기세만 내주는 일은 절대 만들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부푼 마음으로 시작한 피아노 학원 수강은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바이엘 상권을 채 마치기도 전에 끝나고 말았다.      



  “아빠, 저 미술학원에 다니고 싶어요.”

  아내의 죽음 이후, 홀로 남매를 책임져야 했던 아빠의 삶은 혹독하고 고단했다. 부쩍 선명해진 미간의 주름과 세상을 향한 원망어린 눈빛은 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단칸방 살이 처지에 학원비는 사치라는 것쯤은 열두 살 눈치도 안다. 그러니 미술에 ‘미’자도 입 밖에 내기가 어려울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좋은 걸 무슨 수로 막을까. 6학년 언니와 단둘이 남아 미술대회 준비를 하던 날에는 마치 화가라도 될 것만 같았다. 호통과 핀잔만 돌아올 걸 알면서도 두 눈 꼭 감고 용기 내어 입을 열었다. 학원에 가서 그림을 제대로 배워 보고 싶다고.     


  “미술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

  “그림으로는 돈 못 벌어. 공부나 해.”

  헛된 기대와 희망은 어김없이 단칼에 잘려 나갔다. 그날 이후, 돈이 드는 일과 돈이 안 되는 일은 내 삶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우선순위의 무게는 늘 전자에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가, 취업 후에는 일이 우선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워킹맘이 되고 난 후에는 해야 할 일조차 끝내지 못하는 날이 허다했다. 일상에 치여 사는 동안 하고 싶은 일은 늘 후순위에 밀리기 일쑤였고, 그런 날이 쌓여갈수록 가슴이 뛰는 일은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치열했던 삼심 대를 보내면서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육아에 쏟아내느라 여유라고는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었다. 아이들이 학교로 학원으로 발길을 옮겨 다니기 시작한 후에야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 헌데 인색했던 시간이 인심 쓰듯 내어준 여백을 어떻게 채워내야 할지, 그 방법이 도통 떠오르질 않았다. 필라테스를 끊어볼까? 피아노를 배워볼까? 붓을 들어볼까? 이도저도 도무지 내키질 않는다. 이불 밖은 위험하고 이불 속은 나태하다. 배움을 시작하자니 학원으로 가는 길은 천리고 두 발은 천근이었다. 차디차게 식어버린 가슴에 다시금 불을 지펴줄 마른 장작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는 일은 쉽사리 뛰어들기 힘든 도전이었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게 흔들리는 내가 사람들 앞에 글을 내놓는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전문용어 대잔치인 보고서에서 벗어나 솔직한 내 이야기를 담는다는 게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것만큼이나 부끄럽기도 했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며 발행을 누르기는 했으나 눈앞이 막막하다. 노트북 화면 안에서 깜빡이는 커서는 약 올리듯 제자리만 뱅뱅 맴돌고, 글자 하나 채우기는 마른날 빗물 받기만큼 더디다. 인고의 시간을 들여야 겨우 한 편 완성되는 두렵고 어려운 길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도 브런치는 주저하는 나를 다시금 책상 앞에 끌어다 앉힌다.

       

  키보드 위에 두 손을 살포시 올려놓고 손가락만 까딱까딱하면 되니 움직임을 싫어하는 나에게 그만이다. 어디든 엉덩이 붙일 자리만 있으면 카페든 거실이든 그곳이 바로 작업실이니 게으른 두 발을 가진 나에게 딱이다. 보고서를 써내느라 비틀고 쥐어짠 머리 식히며 잠시, 아이 학원 앞 카페에 앉아 고상한 척하며 잠시, ‘어서 자라.’ 채근하며 두 아이를 방으로 밀어 넣고 잠시. 꽉 짜인 하루 일과 속 군데군데 나만의 시간을 끼워 넣을 수 있으니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나에게 제격이다. 표현이 서툰 완벽한 I형 인간인 내가 겹겹이 쌓아올린 퇴적물 같은 언어들을 속 시원히 털어낼 수 있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른 장작이 손에 들어왔으니 타다 남은 장작 위로 던져 넣으면 될 일이다. 일단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숨을 힘껏 불어넣어 꺼져가는 불씨부터 살리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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