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기에 좀 그런 나이

by 서퍼스타

한낮 기온이 슬슬 심상치 않다. 어디라도 조금 걸을라치면 온몸의 땀구멍이 스멀스멀 벌어지며 훗훗한 증기를 발산한다.

“훗훗훗! 어디를 그리 바삐 가십니까? 습습하하! 습습하하!”

특히 진즉에 꺼내 입기 시작한 반팔 상의와 달리 성인 남성이라는 체면(?) 탓에 회사와 같은 사회활동 중에는 쉽사리 도전하지 못하는 반바지는 체온 상승을 더욱 부추긴다.


하지만 슬슬 불쾌지수가 오르는 낮과 달리 해가 지면 더할 나위 없는 천상의 기온을 선보이는 게 요즘이다. 기분 좋은 선선함이 내 살갗에 닿으면 포동포동한 고양이가 내게 볼을 부비는듯 기분이 말랑해진다.

이런 날 저녁 편의점에 과자 하나 사러 나갈 때면 다시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진다. 아파트 단지 내 벤치에 앉아 멍하니 이 기분 좋은 선선함을 하염없이 즐기고만 싶다. 하지만 왜일까. 선뜻 그러기가 쉽지 않다.

그냥... 조금 이상...? 어색...? 민망하다고나 할까?

자의식 과잉 혹은 과민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이 마흔의 남자가 홀로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진다. 담배라도 피면, 전화라도 하면 괜찮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덩그러니 앉아만 있기에는 뭔가 어색하다.


물론 어렸을 땐 안 그랬다. 생각해 봐라. 어린아이가 단지 내 벤치에 앉아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까딱거리고 있다. 뭘 딱히 하고 있지는 않는다. 무슨 생각이 드는가? 그저 귀엽다. “왜 저러고 있을까?”라는 의문은 들지 않는다. 원래 아이들은 그냥 그렇게 큰 목적 없이 남는 시간을 아무거나 하면서 보내는 존재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이 마흔은 다르다. 저녁 시간에 홀로 벤치에 앉아 있으면 날을 즐기는 낭만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이전에 할 일 없는 사람, 혹은 약간 모자란? 혹은 약간 위험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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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책을 불러보는데 제목 하나가 눈에 띄었다. ‘맙소사, 마흔’이라는 책이었다. 맙소사라니... 맙소사... 이 충격적인 감탄사는 애석하게도 마흔이라는 숫자에 찰떡이다. ‘맙소사’를 사전에 검색해 보니 ‘어처구니없는 일을 보거나 당할 때 탄식조로 내는 소리’란다. 그렇다. 마흔은 어처구니없는 나이지만 어처구니없는 일을 해서는, 적어도 그렇게는 보여선 안 되는 나이이다. 무슨 행동을 함에 앞서서 ‘그냥’이라고 대답하면 의심을 받거나 무시당하게 된다.


책에서는 40대에 겪는 사회적, 신체적 변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난 이제야 막 40대 기차에 올라탄 신참이지만, 벌써부터 변화를 느낀다. 결혼했냐는 질문에 ‘아직’이란 대답이 작년보다 더 힘들고, 얼마 전 새로운 일을 위해 본 면접에서 역시 나이를 말하는 입술이 무겁게 느껴졌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不惑)의 나이라 했지만, 그건 공자와 같은 성인에게나 해당하는 시간일 뿐. 내게 마흔이란 마음 편히 벤치에 앉는 것마저도 쉽지 않은 나이일 뿐이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