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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Sep 14. 2021

두 달하고 보름, 첫 글을 올릴 용기가 채워지는 시간

리액션 좋은 방청객인 줄 알았는데 투머치토커인 진짜 나를 발견한 순간


브런치 작가로 승인된 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글을 하나도 올리지 않았다. 보관함에 있는 글로 첫 글을 등록하기는 싫었다. 새 글. 새로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글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인 건 아니었다. 다른 글을 몇 개 쓰기 시작했지만 보면 볼수록 부족해 보였다. 남들에게 보여주기엔 부끄러웠다. 그래서 이렇게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글이 다 쓰이면, 더 이상 쓸 말이 없어지면, 바로 브런치에 올릴 것이다.

나의 소중한 첫 글.

아직도 많이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야 할 때인 것 같다.



#어릴_때부터_내성적인_아이


내 mbti는 isfp이다. 여기서 i는 내성적인 성격을 뜻하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내성적인 아이 중에서도 가장 내성적인 아이였다. 물론 집에서는 언니들한테 많이 까불고 완전 수다쟁이였는데 밖에만 나가면 엄마 뒤에 숨고, 아빠 뒤에 숨고, 언니들 뒤에 숨었다. 그런 나를 보고 부모님은 "밖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면서"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초등학생 때는 밖에서 말하는 연습 시킨다며 식당에서 주문하는 걸 떠넘기기도 했다. 내가 싫다고 할 때마다 언니들이 "너 말 못 하니까 훈련 삼아 시키는 거야~" 라며 얄밉게 말했다. 옆에 있는 아빠한테 도와달라는 눈길을 보냈지만 아빠도 언니들 편(?)이었는지 얼른 해보라고 부추길 뿐이었다. 가족들은 몰랐겠지만 그런 부분 하나하나가 다 나에게는 큰 스트레스였다. 밖에 나가면 '나한테 뭐 시키는 거 아닌가?'하고 티는 안 냈지만 속으로 되게 불안해했고, 그냥 넘어가게 되면 '다행이다'라고 안심했다. 나이를 먹으니까 자연스럽게 밖에서 내가 필요한 정도의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 덕분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아무리 내성적인 아이가 걱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강압적으로 시키는 건 잘못됐다. 내가 말할 준비됐을 때까지, 내가 용기가 생겼을 때까지 기다려줬어야 했다.




#친구_사귀는_게_세상에서_제일_힘들어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춘기 때 유독 친구 사귀는 게 힘들었다. 정확히는 초6, 중1 때가 너무 힘들었다. 초5 때까지만 해도 반에서 가장 친한 친구가 있었고 무리 지어 다니는 것보다는 마음 맞는 한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초6 때는 왠지 몰라도 적당히 친한 친구는 많았는데 가장 친한 친구는 없었다. 그래도 두루두루 논다는 느낌이 강해서 소외감이 크게 들지 않았는데, 중1 때는 너무 힘들었다.


중1 때 반에 초6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꽤 있어서 그 친구들이랑 놀기 시작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고 그 친구들은 노는 걸 좋아했다. 잘 맞지 않았는데 그나마 아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꾸역꾸역 그 무리에 끼려고 노력했다. 얼마 안 가 소외감을 느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을 때, 갑자기 같은 무리에 있던 한 친구랑 급격하게 친해졌다. '가장 친한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친하게 지낼수록 그 친구랑 싸우는 날이 잦아지고 점점 더 크게 싸웠다. 그날도 크게 싸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나한테 "우리 엄마가 너 공부 잘하니까 친해지라고 해서 친해진 거야."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그 이후로 사람을 사귈 때 먼저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먼저 말을 걸어줄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게 익숙해졌다.


힘들었던 중1이 끝나고 중2 반배정이 되고 나서, 초등학생 때부터 친했던 친구가 자기가 아는 친구가 나랑 같은 반이라면서 A라는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같은 반이구나'하고 넘겼는데 정신 차려보니 A와 나를 포함해서 한 무리가 생겼고 정말 오랜만에 친구들 사이에서 '소속감'을 느꼈다. 3월부터 같이 다니기 시작했고 4월에는 내 생일이 있었다. 중2 친구들이랑 친해진지 얼마 안 됐기 때문에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A가 정말 특별한 선물을 주었다. 종합장에 그림을 그리고 이것저것 붙이고 편지도 가득 써줬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정성이 듬뿍 담긴 선물이었다. 엄청 행복했는데 한편으로는 '아직 좀 어색한 거 같은데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해주지?'라는 생각과 그 친구 생일선물에 대한 부담감이 생겼다. 8년이 지난 지금도 A가 엄청 친하지도 않았던 나에게 그런 선물을 해줬는지 의문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A와 부쩍 가까워졌고 23살인 현재까지 가장 소중한 친구이다.  




#듣는_게_더_좋아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 때보다 친구 사귀기가 쉬웠다. 아침부터 밤까지 같이 지내다 보니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1 때 좋은 친구들을, 고2 때는 재밌는 친구들을, 고3 때는 편한 친구를 많이 사귀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나는 주로 '말하는 역할'보다는 '듣는 역할'을 했다. 고2 때 나는 친구들이 무슨 말만 해도 잘 웃고 반응을 잘했는데, 심지어 친구들이 "유진이 앞에 있으면 코미디언이 된 것 같아!"고 말할 정도였다. 고등학생 때는 웃음이 참 많았고 어떤 이야기든 재밌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비슷하다. 보통 학년 별로 만나는 무리가 있는데 그 인원수가 많아질수록 내 얘기를 적게 하고 듣는 시간이 많아진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게 좋았다. 친구들이 말을 재밌게 하기 때문에 내 얘기를 하지 않아도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시작으로 내 역할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_보니_나_말이_많은_사람이었네?


코로나19가 점점 심해지다 보니까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엄격해지고 만날 수 있는 인원수 제한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6명이었던 모임은 기약 없이 약속을 늦추게 되었고 4명 이하로 만나는 경우가 많았다. 인원수가 적어질수록 내가 말할 기회는 늘어났다. 그리고 자주 만나지 못하다 보니까 그렇게 말이 없는 편이었던 나도 할 말이 쌓였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할 때는 '인스타 스토리'에 나의 TMI를 마구 올렸다. 아니 지금도 친한 친구 공개로 올리고 있다. 인스타 스토리 올리는 게 내 취미생활이 된 것 같다. 그걸로는 부족했는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처음에는 영화 리뷰글을 간단하게 쓰다가 지금은 다양한 문화생활, 일상, 대외활동, 자격증 후기 등 내 이야기를 부지런히 남기고 있다.


제야 깨달았다. 내가 말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2019년, 2020년에는 '북쉐어'라는 독서토론 동아리에 들어서 활동을 했었는데 그게 글에 대한 나의 큰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좋아해서 동아리에 들어간 게 아니라 책과 친해지려고 들어갔는데, 매달 다양한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나누고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1년에 한 번씩 직접 글을 쓰기도 했다. 공통된 주제를 정하고 각자 자유롭게 표현했다.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만의 글을 썼는데 훌륭한 글은 아니었지만 문집을 받았을 때의 그 감정은 말로 표현 못한다. 나의 첫 글이 담긴 문집은 너무나도 소중했고 다음에는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었다.  




#브런치_새로운_도전


"너는 참 일기를 재밌게 써."

"유진이는 글을 참 잘 썼는데."


내 일기를 훔쳐보던 아빠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하던 말이다. 나는 초등학생 때 일기를 참 솔직하게 썼다. 선생님이 읽어보는 건데도 내가 느꼈던 것을 숨김없이 다 썼다. 지금 보면 참 웃기다. 반에서는 그 누구보다 조용한 애가 일기에는 숨겨도 될 말까지 거침없이 다 써놓은 걸 보면 내가 선생님이었어도 재밌었을 것 같다. 그때는 내가 글을 잘 쓴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글에 관심이 없기도 했고, 그냥 형식적인 칭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믿고 싶다. 나에게 글재주가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을.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어휘력과 표현력은 부족하지만, 사람들이 읽기 편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여태까지 남들한테 얘기하지 않았던 나만의 이야기를 남겨두고 싶었다. 나의 소중한 추억, 기억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했고 운 좋게 한 번에 승인을 받게 되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이제야 출발할 용기가 생겼다.

출발 바로 직전, 준비 자세를 하고 있는 내가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시작이 반이니까 꾸준함으로 나머지 반을 채워야겠다.'


브런치, 잘 부탁합니다!


유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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