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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란 Oct 30. 2022

가끔씩 사는 게 너무 버거울 때가 있다

‘살아가는 것’이 내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을 때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구 씨’가 이런 대사를 뱉는다.

 

겨우내 저 골방에 갇혀서 마실 때. 마시다가 자려고 하면 가운데 술병이 있는데, 그 술병을 이렇게 치우고 자면 되는데 그거 하나 저쪽에다 미는 게 귀찮아서 소주병 가운데 놓고 무슨 알 품는 것처럼 구부려서 자. 그거 하나 치우는 게 무슨 내 무덤에서 내가 일어나 나와서 벌초해야 하는 것처럼 암담한 일 같아.

 

아침에 일어나서 앉는 게 힘듭니다. 왔던 길을 다섯 걸음 되돌아가는 것도 못 할 거 같아서 두고 나온 우산을 찾으러 가지도 않고 비를 맞고 갔습니다. 그 다섯 걸음이 힘들어서 비를 쫄딱 맞고. 아, 나는 너무 힘들고… 너무 지쳤습니다.

 

술병으로 손을 뻗거나 다섯 걸음을 되돌아가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것조차도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내가 항상 집을 나설 때마다 드는 생각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튀어나온다면 저런 게 아닐까. 나는, 가끔씩 (아니 사실 자주) 세상을 살아가는  자체가 나에게 맞는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삶을 더 이상 이어가려는 의지도 없다는…그런 우울한 이야기는 아니고. 아 나한테 헬스라는 운동은 맞지 않는 것 같아. 하는 정도의 담백함으로 하는 이야기처럼, 사는   적성에 맞지 않는  같아.

 

아침이 유독 힘든 날이었다. 일어나서 나가기까지 나는 이미 오만가지 생각 (지금 출근 안 하면 어떻게 되지?, 점심 또 불편해서 어떻게 같이 먹지, 하루하루 이렇게 힘겹게 일어나서 나가는 것만이 내가 살 수 있는 삶인가?)을 끝내고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버스에 몸을 싣었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 표정이 그냥 ‘무(無)’ - 아무 생각도 없어 보였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이불을 걷고 땅에 발을 내디뎌서 화장실로 걸어가고 양치를 하고 곧바로 세수를 하는… 아침에 일어나는 모든 짧고도 많은 업무들. 그러니까 처리하는 데 채 일 분도 걸리지 않지만 쉴틈도 없이 바로 재빠르게 다음 업무에 착수해야만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는 미션. 그 미션을 성공하고 마침내 밖에 나오기 까지가 내게는 세상이 뒤틀리는 것 마냥 너무나 큰 일이었는데,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무던하게 해낸 것 만 같았다. 이런 게 뭐가 힘들다고? 척척척. 아, 이것이야 말로 진정 강하고 멋있는 것이구나. 이런 과정을 씩씩하게 해내는 것만으로도, 어떤 아포칼립스에 떨어져도 다들 알아서 단단하게 살아남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겠구나 싶었다. 그들에 대한 뜬금없는 아침 예찬을 하며 버스 손잡이를 잡고 생각했다. - 또 그 잡고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힘들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서는.- 저 정도의 강인함이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내게 너무 버거운 건, 내가 나약해서 그런 건가? 세상 사람들 다 이 정도는 하면서 사는 데 내가 나약해서 이렇게 우울하고 힘든 건가…그런 생각.

 

그러니까 정말  악동 뮤지션의 노래 제목처럼,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신기해’라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집을 며칠에 한 번씩 청소하면서 먼지가 쌓이지 않게 해야 하고, 매일매일 아침 점심 저녁 메뉴를 골라야 되고, 계절이 바뀌면 봄 여름 가을 옷 드라이하고 옷장에 넣어놓고, 가끔씩 옷장 정리도 하고, 가까운 이들의 생일 선물을 고르고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여행을 가기 위해 그 기간 동안 필요한 짐을 챙기는… 이런 기본적인 것들. 인간답게 살려면 해야 되는 것들, 너무나 당연해서 ‘일’이라고 취급도 안 되는 것들을… 어떻게 다 하면서 사는 걸까. 사람들이 이렇게 귀찮은 일 투성이인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모든 것들에, 그러니까 살려면 돌보아야 마땅한 것들에 한 톨의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아서. 걷는 것도, 쌓여있는 메시지에 대한 답장도,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잠시 멈춰서 에너지를 정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 것도, 무언가 하고 있으면서도 다음을 생각해야 하는 것도… 그냥 이 모든 게 너무너무 버거울 때가 있다. (개복치인가?)

 

그냥 가만히 멈춰서 바다의 파도 소리를 듣고 그러다가 수영을 하고 지겨워지면 몸을 말리고, 글을 쓰고, 노래를 듣고 책을 읽다가 잠에 들면서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살고 싶다. 챙겨야 하는 건 고작 계절에 맞는 과일 정도뿐인 세상에서. 재테크와 내 집 마련 같은 것이 아니라… - 이것도 무엇이 가장 맛있는지, 좋은 과일 구별법 같은 건 몰라도 되는 세상. 단순히 예쁜 과일을 사도 내게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유토피아에서-

 

아마 한동안 내가 결혼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던 것이나,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며 오히려 앞당기고 싶다고 했던 것의 기저는 이런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생긴다면, 말 그대로 ‘사는 문제’에 대해서 더 신경 쓸 게 많아지고, 나는 그것에 자신이 없고. 죽으면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까 비로소 편해질 것 같고…

 

이런 버거움, 뭐랄까 상투적이지만서도 ‘삶의 무게’ 같은 것들이 나를 계속해서 짓눌러서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 때, 어떻게 그 무게를 분해해서 내가 지고 갈 만한 것으로 만들어야 할지, 그 방법을 아직 잘 모르겠다. 이 무거움을 잘게 잘라서 남은 기간 동안 힘들이지 않고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고 싶다. 이걸 위해서는 살아가는 근육을 좀 얻어야 할 것 같은데, 얼마나 걸어가야 그것을 만들 수 있는 건지, 나는 가늠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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