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문의 Jan 21. 2024

[병원인턴] 인턴들의 속마음 (Int. L)

인턴 L의 인턴생활 후기

Q. 인턴을 시작했던 당시를 돌이켜보면 어땠었나요?

Int. L : 걱정이 많았죠. 머릿속이 온갖 걱정으로 가득했어요.

무엇 하나 익숙하지 않은데 당장 일을 시작해야 했죠. 내가 뭐라고 이렇게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걸까, 혹시 의료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었어요. 

ABGA (동맥혈 채혈)처럼 간단한 술기를 할 때도 걱정이 되었죠. 혹시나 신경을 손상시키지는 않을까, 제대로 지혈을 못해서 혈종이 생기면 어떡하나. 드물게 일어나는 합병증이지만 내가 그 합병증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더라고요.

폴리 카테터 (소변줄)을 넣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혹시나 요도를 손상시키면 어떡하나, 벌루닝을 잘못해서 요도가 파열되면 어떡하나, 혈뇨가 생기면 어떡하나

입사 전 술기 교육을 받으면서 들었던 합병증들이 눈앞에 아른아른하더라고요 하하

저는 3월 첫 인턴을 응급의학과 근무로 시작했어요. 응급의학과 업무의 대부분은 술기예요. 그러니 근무를 시작하기 전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겠어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술기를 해야 하는데 무엇 하나 익숙하지 않았으니까요.

첫 출근이 굉장히 부담되고 떨렸지만, 최대한 겉으로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사람들은 제가 긴장한지도 몰랐을 거예요 하하. 하지만  제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었죠.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는 술기를 잘하는 동기들에게 부탁도 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술기는 동영상을 보며 연습도 해보고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었네요 하하.




Q. 힘들었던 기억은 무엇이 있나요?

Int. M : 내과에서 근무할 때 많이 힘들었어요. 이렇게까지 바쁜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갑작스럽게 마주한 업무의 양은 상상을 초월했지만 저는 거기에 대한 준비가 덜 되었죠. 매일매일을 버틴다는 마음으로 근무했었어요.

끝없이 밀려들어오는 일을 조금이나마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해 나름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려야 했고, 급한 일과 급하지 않은 일들을 구분해 내야 했죠. 지금은 자연스럽게 되는 일들이지만 그 당시에는 꽤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어요. 익숙하지 않았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당직이 너무 힘들었어요. 혼자서 병원의 모든 내과 인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이 많이 되었죠. 

인턴을 해보신 선생님들은 알 거예요.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요. 물리적으로 시간도 너무 부족했죠. 

밥 먹을 시간, 커피 마실 시간은 사치였어요. 밥을 먹다가도 뛰쳐나가야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했었으니 말이에요

일을 하면서 처방콜을 대신해주었던 좋은 동기들 덕분에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좋은 사람들과 일하면 어떻게든 버틸 힘이 난다는 걸 인턴을 하면서 배울 수 있었죠.

저는 동의서를 받을 때 스스로에게 아쉬운 점이 많았었어요. 급한 일 사이사이 동의서를 받아야 했기에 환자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동의서를 받아야 할 때가 많았거든요. 

동의서를 받는 의사로서 환자분이나 보호자분들이 궁금해하는 점들을 자세하게 설명해 줘야 하는데 환자분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을 못했으니, 그분들의 가려운 부분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할 때가 있었죠.

응당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괜스레 속상했네요.

내과가 아닌, 서류작업이 많은 과에서 근무할 때는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인턴 일을 하다 보면 정규 출근 시간보다도 일찍 출근을 해야만 할 때가 있어요. 컨퍼런스 준비하고 Pre-OP를 챙기고, 명단을 작성하는 등등 해야할일이 많을 때가 특히 그렇죠. 일찍 일어나서 열심히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수가 나올 때면  많이 속상했어요. 

제 노력과는 상관없이 어디선가 실수가 발견되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런 과에서 근무를 할 때면 혹시나 실수가 생기면 어쩌나, 혹시 빠뜨린 게 있지는 않을까 계속 생각해야 했기에 몸이 힘든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Q. 좋았던 기억은 무엇이 있나요?

Int. L : 좋은 사람들과 일하면서 생긴 추억들이죠. 당직 때 휴게실에 모여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거나 퇴근 후 함께 헬스장에 가곤 했거든요.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이 저에게는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제가 근무했던 상반기 병원은 병원의 규모와 일에 비해서 인턴 수가 턱없이 적었어요. 정말 힘들었지만 함께 고생을 한 만큼 탄탄한 전우애가 생겼죠. 모두가 힘들다는 걸 서로 알기에 조금이나마 여유가 있을 때 서로 도와주려고 하고, 힘든 이야기를 해도 서로 이해해 줄 수 있었어요. 다 같이 힘내보자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죠.




Q. 과를 지원할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Int. L : 저는 제 성향을 주로 고려했어요. 인기가 많은 과보다는 저와 잘 맞는 과를 찾으려고 노력했죠.

저는 절 잘 돌보는 사람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으면 저를 챙기기보다는 그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죠. 그래서 주치의과를 할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필연적으로 제가 맡은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지는 상황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럴 때면 정말 머리가 지끈거렸죠. 퇴근을 하더라도 환자들이 계속 떠오르고, 마음 편하게 쉴 수가 없었어요. 마음이 불편할 바에는 병원에 있는 게 낫겠다 싶어 병원에 남아있던 적도 많아요. 

그래서 저는 스스로 온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강제로라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건강한 생활도 하고 일도 제대로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응급의학과가 굉장히 매력적이었죠.

응급의학과는 일하는 순간은 힘들더라도, 근무시간이 끝난 이후에는 온전히 쉴 수 있잖아요.

휴식을 취하던, 다른 것들을 배우던 업무의 스위치를 강제로 꺼주어야만 했어요.

물론 응급의학과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죠. 본과 4학년 실습을 돌았을 때 응급의학과가 특히 마음에 남았거든요. 다른 과들은 끝나면 그저 마음이 후련했는데 응급의학과는 그렇지가 않았어요. 실습이 끝난다는 게 아쉬웠고 좀 더 경험해 보고 싶었죠. 

인턴을 하면서 응급의학과를 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혔어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많고, 배울 수 있는 환경도 좋았어요. 제 성격과도 잘 맞고요. 

저는 성격이 급해요. 밥을 먹다가도 콜이 있으면 뛰쳐나가는 성격이죠. 일이 쌓여있는 게 너무 답답하고 바로바로 해결을 해야 마음이 편해요.

이렇게 말을 했지만 사실 이 과가 나와 잘 맞을지 확신은 없어요. 아직도 의문이긴 하죠. 인턴으로 일하는 것과 전공의로 일하는 건 천지차이니까요.

내 지식이 부족하지는 않을까, 중요한 환자를 놓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은 있지만 응급의학과 말고 다른 과를 가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Q. 우수한 인턴이란 어떤 인턴인 것 같나요?

Int. L : 우수한 인턴이라고 하면 교수님이나 다른 간호사 선생님들이 바라는 모든 걸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인턴이겠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인턴이 훌륭하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우수해지는 데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늘 위를 향해 노력해야 하거든요. 본인을 깎아가면서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훌륭한 인턴이 되려고 하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힘들면 주변에 부정적인 기운을 줄 수밖에 없거든요. 본인이 그 사실을 알면 개선의 여지라도 있겠지만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렇게까지 하면서 훌륭한 인턴이 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죠.




Q. 순환근무는 어땠나요?

다양한 병원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어요. 확실히 여러 병원에서 일하면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다르거든요. 하지만 적응이 될만하면 다른 병원으로 떠나는 게 큰 단점이죠.

6개월 동안 일을 했다고 새로운 병원에 가면 처음부터 다시 적응해야 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어요.

왜 이걸 아직도 못하지? 왜 이걸 모르지? 하는 눈빛이 느껴져요.

인계장을 읽어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치는 것과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새로운 병원에서 새로운 과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품을 들여야 해요.

노력을 한다, 많은 품을 들인다고 간단하게 말하고 있지만 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순환근무는 만만하게 볼 게 아니에요.




Q. 인턴을 마무리하는 지금, 어떤 감정이 드시나요?

Int. L : 말턴이라 모든 게 불만입니다. 하하  

농담입니다 (진담도 어느 정도 있긴 해요). 돌이켜보면 쉽지 않은 1년이었어요. 그 시간을 온전히 버텨내었다는 게 굉장히 뿌듯해요.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포기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인턴을 하면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참 많아요. 세상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인턴일 역시 완벽하게 공평할 수는 없거든요.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일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고, 또 거기에 대해서 불만을 가져도 마땅히 해결책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혹시나 중간에 그만두는 인턴이 있다던가, 아파서 병가를 내거나 하는 동기들이 있으면 나머지 사람이 모든 업무를 떠맡아야 하는 구조이기도 하고요. 병원마다 업무의 종류, 양도 천차만별이기도 하죠

인턴 인력을 중간에 보충할 수 없기 때문에 여러모로 감정적으로도 힘들고 예민해지게 되는 일들이 있지만 그저 지난 시간들을 잘 견뎌온 데에 의의를 두고 있어요.




Q. 곧 인턴을 하게 될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Int. L : 인턴을 시작하기 전 각오를 단단히 하기를 바라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상당히 많거든요. 포기하지 않을 각오가 필요해요.

이 글을 보고 있을 예비 인턴 선생님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인턴을 꼭 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졸업 후 무얼 할지 몰라서 일단 인턴을 시작해 보려는 생각이라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인턴 수련을 통해서 자신이 무엇을 얻기를 원하는지가 확실하지 않으면 중간중간 견디기 힘든 순간이 왔을 때 쉽게 포기해버릴 수 있어요.

1년이란 시간은 결코 짧지 않고, 인턴 수련은 쉽지가 않아요.

또 졸업 후 자교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지, 큰 병원에서 수련을 받을지는 온전히 본인의 기준으로 판단을 내려야 해요.

자교에 남아서 후회를 할 수도 있고, 서울에 와서도 후회를 할 수도 있어요.

반대로 자교에 남아서 만족할 수도, 서울에 와서 만족할 수도 있죠.

남들의 의견에 휩쓸려서 선택할 만큼 가벼운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자신이 원하는 과가 인기가 많고 경쟁률이 높으면 자교 병원에 남는 게 훨씬 유리한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큰 병원에서 수련을 받는 것도 꽤나 장점이 많아요. 모든 건 본인이 하기에 달려있으니 어떤 결과를 받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을 결정을 하기를 바랍니다.


인턴 L 고맙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병원인턴] 인턴들의 속마음(Int. 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