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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물젤리 Aug 21. 2023

다섯 살 미남이 자살골을 넣다

미남이 다섯 살

다섯 살 미남이와 여섯 살 형아 또 한 명의 여섯 살 누나는 미남이 아파트 놀이터 끈끈한 삼총사다.

미남이가 네 살 때부터 죽자 살자 따라붙을 때 처다도 안 보더니 어느새 셋은 똘똘 뭉친 삼총사가 됐다.


셋이 즐거웠던 어느 날


형아는 최근에 보조바퀴가 달린 네발 자전거를 산 후로 킥보드와는 멀어지고 자전거에 푹 빠졌다.

미남이는 네 살 때부터 타던 킥보드가 작아져서 얼마 전 하늘색 새 킥보드를 장만했다.

누나는 겁이 많아 자전거는 못 타고 미남이처럼 킥보드를 탄다.


어린이집 다녀오면 셋은 트랙을 달리는 경주용 자동차처럼 거침없이 주차장을 누빈다.


누나가 킥보드를 집에 두고 온 날이었다.

미남이가 주차장을 몇 바퀴째 돌고 있는데 누나는 내 옆에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한참을 서 있던 누나가 지루한가 보다.

"할머니 저도 킥보드 타고 싶어요"

그렇지 않아도 미남이를 불러세울 참이었다.


마침내 옆으로 쌩 지나는 미남이를 불렀다.

오른발을 바닥으로 쓱 훑으며 속도를 줄이더니 내쪽으로 왔다.


"심심하니까 누나 조금만 타게 해 주자"

"싫어요"

내 말을 귓등으로 듣고 오른발로 땅을 툭 밀어  출발을 한다.

잽싸게 킥보드 손잡이를 붙들었다.

"미남이는 많이 탔으니까 누나 딱 세 바퀴만 타자"

"나도 많이 못 탔다고요. 할머니는 내 마음도 몰라주고"

씩씩거린다.

요즘 툭하면 내 마음 타령이다.

굳은 표정으로 봐서 쉽게 끝날 협상이 아니다.


킥보드를 누나 쪽으로 밀어주고 미남이를 달랬다.

킥보드 속도를 한껏 올린 누나가 저만치 멀어지는가 싶더니 금세 우리 옆을 지나고 있었다.


"누나 나빠!!!"" 누나랑 이제 안 놀아" "내 거라고""왜 누나가 내 건데  타!!!"

억울해서 못살겠다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누나로 말하자면 2년째 미남이의 오매불망 짝사랑님이시다.


어린이집에 다녀오면 중장비차 찾아서 공사장으로 큰 사거리로 가방 던지고 내달리던 미남이 발을 놀이터에 붙들어준 일등공신이다.

중장비차 찾아 거리를 헤매고


누나는 아주 아주 아주 예쁘다.

부부끼리는 서로 반대로 만나야 좋다는데

그런 면에서 미남이와는 아~주 천생연분이다.

게다가 활달한 성격에 착하고 온순하기까지 하다.

이러니 내가 욕심을 안 부릴 수가 없다.

이런 누나를 만나다니.

전생에 미남이가 나라도 구하고 어쩌면 우주 괴물로부터 지구를 지켜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이번생 복 터진 녀석이다.



"오늘 누나 오겠죠?"

잔병치레 잦은 누나라 놀이터에 못 나오는 날이 종종 있다.

어린이집 다녀오면 혹시 누나 못 만나게 될까 봐 늘 걱정이 앞서는 녀석이다.


차 안에 누나가 있는지 검열중

누나 누나 누나거리던 애가

그깟 킥보드 하나로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마음속으로 '누난 내 여자니까'를 수천번도 불렀을 애가.

벌써 가을도 깊은데 아마도 늦더위를 먹었나 보다.


다행히 내 휴대폰은 오늘의 이 모든 일을 담고 있다.

다른 날은 미남이 예쁜 순간을 담으려 열었던 휴대폰을

오늘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미남이가 요즘 말 안 듣고 이기적인 것 같아 걱정이라던 미남이 엄마말이 생각났다.

이 증거자료로 나는 미남이를 생생하게 고발할 것이다.


휴대폰을 넣고 얘기를 시작할 참인데

이 녀석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


나도 충분히 타지 못했는데

누나는 왜 킥보드를 안 가져왔으며

할머니는 내 마음도 모르고 왜 킥보드를 누나한테 줬느냐고 따따따따 따지다가

 갑자기

뚝.말을 멈춘다.


"그런데요 할머니"

목소리를 낮춘다.

날 보는 표정도 심상치 않다.

차라리 아까처럼 소리를 질러 미남아.

왜 그래~~~


"아까 찍은 영상 산타할아버지한테 보내주세요"

"왜?"

"누나랑 형아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 줄걸요?"


훅 터지려는 웃음을 간신히 집어삼켰다.

이거였어?

영상 하나가 두가지 용도로 쓰이게 생겼다.


오매불망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아이들인데

누나는 그렇다 치고 자전거 잘 타던 형아까지 무슨 죄목으로 일 년 농사를 망치게 할 참인지 참 고약한 심뽀다.


"정말 보내도 돼?"

"네"

"정말?"

"네 보내주세요"

"산타 할아버지가 영상 보시면 미남이 선물을 주실까?"

"어... 어...."

생각 담은 눈길이 허공에 잠시 머문다.


"할머니 그럼 저는 빼고 보내주세요".


자기가 넣은 골이 자살골이라는 걸 제야 알게 된 바보다.


자살골도 엄연한 골인데 취소는 절대 안 되지.


울면 안돼 울면 안돼 산타할아버지는~~~

미남이가 이 노래를 흥얼거렸으니 일년전 겨울이었다. 

선별검사소에서 어린이집 코로나 전수 검사 때 통곡하는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독하게 눈물을 참아냈던 아이다.


검사 끝나고 공사장 찾아가는 길에

"할머니. 미남이는 안 울었으니까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주겠죠?" 하며 뿌듯해했다.


나만 영상에서  빼달라 안된다 옥신각신 하는 중에 누나가 킥보드를 돌려주자 미남이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바람처럼 사라졌다.


크리스마스 두 달 전이다.

난 녀석을 조종할 만능 치트키를 손에 쥐었다.

두 달 동안 녀석 만나러 가는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올 것 같다.

밥을 입에 넣고 멍하게 티비를 보기만 해 봐라.

"미남아. 이 영상 산타할아버지한테 보낼까?"

생각만 하도 고소하다.


영상 쓰임새가 한가지 더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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