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7월 29일, 영국 사우스포트의 한 어린이 댄스교실에 17세 남성이 들어와 칼부림을 벌여 2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다음날 중상을 입었던 1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피의자는 어느 순간 시리아 난민 출신 알리 알 샤카티가 되었다.
사건이 벌어지고 어느 날,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는 ‘시리아 출신의 무슬림 보트 난민 알리 알 샤카티’라는 거짓뉴스가 퍼졌다. 범행 직전에는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쳤다고 한다. 이 거짓뉴스는 앤트류 테이트와 같은 대안우파 인플루언서, 영국의 국우·반이슬람 조직인 잉글랜드 수호 연맹(Engand Defense League)의 입김에 힘입어 영국 전역에 일파만파 파졌다.
하지만 피의자는 영국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 태생의 17세 남성으로, 르완다 출신 부모를 둔 이민자 2세였다. 무슬림도 아니었다.
*르완다는 국민의 91.6%가 기독교(가톨릭 56.5%, 개신교 37.1%)를 믿는 국가이다.
루다쿠바나(17),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
폭력 시위는 영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사건이 있고 다음날인 30일부터 사우스포트의 모스크에서 폭력 시위가 발생했다. 이 폭력 시위는 런던, 맨체스터, 리버풀 등 주요 도시를 포함한 영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일부 시민들과 청소년들은 ‘재미로’ 시위 대열에 참가하여 상점을 부수고 물건을 약탈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민자센터, 난민 수용호텔, 모스크가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뉴스는 가짜였지만, 폭동은 진짜다.
말도 안 되는 가짜뉴스가 퍼졌다. 하지만 그 가짜뉴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진실이었다.
그동안 쌓여왔던 반(反) 이민, 반무슬림 정서가 폭발했다. 시위 사진을 보면 가장 많이 적혀있는 말이 ‘Save England’ ‘Save our Children’다. 아마도, ‘Save England (from immigrants)’, ‘Save our Children (from Muslims)’가 생략된 것이지 않을까. 영국 사람들 의식의 저변에는 영국으로 들어오는 이민자의 흐름을 진정 위협으로 느낀다는 것을 보여준다.
토미 로빈슨
영국은 극우주의자이자 잉글랜드 수호 연맹(EDL)의 창립자인 토미 로빈슨의 말 한마디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딱 1달 전인 7월 8일, 캐나다의 철학자 조던 피터슨은 토미 로빈슨을 그의 채널에 초대해 유럽의 다문화주의와 무슬림 커뮤니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Tommy Robinson. 사진 출처 : 英 가디언지
나의 첫 번째 인상은, 영미권 뉴스에서 보던 토미 로빈슨과는 달랐다는 점이다. 뉴스에서의 토미 로빈슨은 무지하고 전과 이력이 화려한 극우 급진주의자였다. 하지만, 그는 루턴이라는 본인의 고향에서 자라며 피부로 느낀 영국의 사회통합 실패와 좀처럼 주류사회와 섞이지 않는 무슬림 커뮤니티를 바라본 경험을 통해 나름 처절한 논리를 가지고 있었다.
두 번째 인상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토미 로빈슨을 유튜브에 검색해서 본 영상마다 좋은 댓글들밖에 없길래 MercifulServant라는 무슬림 채널에서 “The End of Tommy Robinson?”이라는 비판적인 내용의 영상이 있어서 댓글들을 찾아봤다. 무슬림 채널에서조차 “Not a racist just a realist(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닌 현실주의자)”라는 식의 옹호적인 댓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영국 백인들의 반응도 볼만하다. 그들의 분노가 왜 무슬림들을 향하는지도 알 수 있는 대목.
왜 영국인들은 분노하는가
영국인들이 이 사건에 이렇게 분노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한국은행 런던사무소는 현지정보 보고서 '최근 영국 폭동의 발발 원인 및 향후 전망'을 통해 경제 상황 악화, 반(反) 이민정서의 확산, 이슬람 혐오의 3가지로 나누어 분석했다.
얼마 전 아버지랑 술 한 잔 하다가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공통된 의견은 다양성이었다. 세계적인 인재들이 몰리고 경쟁을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성과에 대한 명확한 보상. 미국 자체가 세계 경쟁의 무대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경제가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잘 사니까, 경쟁을 긍정적인 가치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갑자기 미국의 경제가 쇠퇴하고 일자리가 없어진다면? 서민들의 분노는 위든 아래든 옆이든 향하게 되어있다. 그중 가장 타깃이 되기 쉬운 존재는 이민자다. '저 자식이 우리 땅 와서 내 일자리 뺏었어!'라는 말은 그 누구에게 보다도 하기 쉬운 말이기 때문이다.
① 영국의 경제 상황
코로나 이후(21.1.~24.5.)의 기간 동안 영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3%로 미국(19%), 독일(21%), 프랑스(17%) 등 중요국을 상회했다. 또한 영국은 지역별로 경제적 격차 문제가 심각한데, 이번 폭동도 고소득 지역인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보다 저소득 지역인 중부 및 북서부 지역에 집중되고 있다. 남동부의 런던은 GDP가 £56,431(한화 9,862만 원)인데 반해 사건이 벌어진 사우스포트(중서부 지역)의 GDP는 £27,977(한화 4,889만 원)으로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과거 공업지대의 영광을 안고 있는 멘체스터, 리버풀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도 분석된다.
자료 출처 : 영국 통계청(ONS)(좌), EXPRESS지 UK Riot Map(우)
②반(反) 이민 정서의 확산
영국에는 매년 130만 명의 이민자가 유입된다. 영국인의 55%는 이민자가 자국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답변한 바 있으나, 계층별로 분석하면 또 다른 답이 나온다. 이민자가 대폭 감소해야 한다는 설문에 기업인 및 사회지도계층의 23%만 '그렇다'는 답변을 한 반면 빈곤계층은 그 비율이 42%까지 높게 나타난다.
영국 이민자 추이, 자료 출처 : 영국 통계청(ONS)
표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여러 군데 있다. 16년 브렉시트 탈퇴 이후 이민자 수는 줄어들었다. 영국이 브렉시트에 나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이민자들이 지나치게 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영국이 바라는 바대로 된 것이다. 브렉시트로 영국의 저임금·단순노동력 시장을 지탱했던 동유럽 출신의 노동이민자들이 빠져나갔다. 20년 코로나 첫 Lockdown으로 영국 내 이민자는 80만 명 수준에서 60만 명 수준으로 크게 떨어졌고, 20년 유입 이민자 수는 오직 8만 명이었다. 영국은 트럭 운전사, 상하차 인력이 부족하여 생필품난을 겪기도 했다. 다시, 단기 노동력의 이민 문호를 넓히는 것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21년부터 영국의 이민자수가 크게 늘어난 데에는 취업 및 학업 관련 이민자가 다시 급증했기 때문인데, 특히 코로나 19 이후 질병 등에 따른 돌봄 소요가 크게 증가함에 따라 영국 정부가 간병인 등 건강 및 돌봄서비스직 이민자의 가족 동반을 허용하는 등 이민 규정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22년 9월부터 1년간 12만 개의 비자 신규 발급)
*출처 : 한국은행 런던사무소 동향분석보고서 (최근 영국의 이민 정책 방향성과 차후전망, 24.06.12)
사유별 영국 이민자 수 추이, 자료 출처 : 영국 통계청(ONS)
21년부터 영국으로의 인도주의 관련 이주(Humanitarian-related immigration)와 망명신청자(Asylum Seeker)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인도주의 관련 이주의 통계치가 누구를 뜻하는지 모호해서.. 영국 통계청을 보니 영연방(특히 홍콩)과 우크라이나 이주민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망명 신청자의 대부분은 영국 해협을 소형보트를 타고 넘어온 불법이민자들인데, 이 수가 22년에는 45,774명, 23년 29,437명, 24년(6.2. 기준) 10,448명으로 규모가 엄청나다. 망명 신청자들의 인도주의적 보호를 위한 호텔 숙박비용만 영국 정부에서 하루에 £6,000,000(한화 약 104억 원)를 지불한다고 한다.
결국, 영국 정부는 큰 폭으로 증가한 외국 이민자들을 위한 사회보장비용 부담을 확대했고, 영국 선주민들은 일자리 부족에 관한 불만을 이민자에게 돌렸다. 리시 수낙 前 총리는 불법적인 경로로 망명 신청을 하는 이들을 르완다로 이송하고 르완다의 경제성장 지원금을 명목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UK-Rwanda Migra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Partnership'을 체결했으나, 국제법 위반 및 인권침해 소지로 새로 집권한 노동당 키어 스타머 총리가 전면 백지화를 결정해 최악의 경우 시행도 못하고 4,000억 원의 손해를 떠안게 됐다. 이민자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불만도 고조되는데 그 이민자를 처리하겠다는 계획도 제대로 실행도 못해보고 르완다에 엉뚱하게 4,000억 원이나 떠 먹여주는 셈인 것이다.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한창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이 이슈가 되고 있던 23년 주한영국대사 콜린 크룩스(유퀴즈에도 나오셔서 나름 유명하시다. 최초로 주북한영국대사와 주한영국대사를 모두 역임하신 분)는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 현장을 방문했었다. 크룩스 대사는 라마단의 첫날을 맞이해 개인적으로 방문했다고 선을 그었지만, 왜 한 나라의 대사가 우리나라의 갈등현장을 직접 방문했는지는 조금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슬람은 성공회를 이어 영국 내 2번째로 신자가 많은 종교이다. 2001년 1,524,887명이었던 무슬림 인구가 2011년에는 2,660,116(+74.4%), 2021년에는 3,801,186명(+42.9%)으로 크게 늘었다. 2021년 기준 영국 전체 인구의 6.7% 수준이다.
영국 지역별 무슬림 인구 비율. 출처 : 위키피디아진한 녹색은 무슬림 인구 비율이 20% 이상인 지역.
하지만 무슬림 인구는 영국 전역에 널리 퍼져있지 않고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 있는 모습이다. 런던의 타워햄릿 자치구는 전체인구의 39.9%가, 토미 로빈슨이 나고 자란 루턴은 전체 인구의 32.9%가 무슬림이다. 2016년에는 파키스탄계 무슬림인 사디크 칸(Sadiq Khan)이 무슬림 최초로 런던 시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영국 내의 무슬림은 더 이상 소수집단이 아닌 것 같다.
이슬람을 왜 우리가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냐면, 서구권에서는 이슬람을 기독교와 같은 하나의 종교로 인식하지만, 정작 무슬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이슬람은 종교이자 국가이며 삶의 방식이다. 정치와 법이 포함된 하나의 체제인 것이다. 왜 유럽 내 무슬림들이 샤리아 율법을 제창하겠는가. (실제로 유럽 일부 도시에는 샤리아 율법이 통치하는 Shariah Zone이 존재하고 법규 준수를 확인하기 위한 Shariah Police가 순찰을 돌기도 한다.)
런던 무슬림들의 주류판매 반대 시위. Stand for Shariah(샤리아를 지지한다)라는 문구도 보인다.
2007년 12월 London Evening Standard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가 무슬림들은 어느 정도 고립이 되어 있다고 답변, 12%는 대부분 고립되어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55%는 무슬림의 이민을 줄이기를 원했으며 33%는 크게 줄여야 한다고 답변했다. 대부분이 반대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신기한 것은, 좋은 후보라면 무슬림이 런던 시장이 되는 것에 투표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71%는 찬성, 오직 16%만 반대했다.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무슬림 자체는 사회적으로 통합되어 있지 않다고 인식하나, 영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종교가 큰 허들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며
이번 폭동을 통해서 영국인들 기저에 내재하고 있던 이슬람 혐오가 표면 상으로 드러났다. 반이민정서도 폭발했다. '이민자를 추방하라'는 자극적인 문구도 서슴지 않고 내뱉으며, 무슬림들을 폭력의 타깃으로 삼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현상이다. 이제 영국의 다음 숙제는 이렇게 깊어진 선주민과 이주민들 사이의 감정의 골을 어떻게 메꿀 것이냐다. 진정한 사회통합을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