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있지만 없는 아이들'
다문화사회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고 본격적으로 마음먹은 것은 2021년 7월 즈음, 딱 3년 전이다.
군생활을 시작한 강원도 화천은 주말에 아무것도 할 것이 없었고, 할 것이 없어서 책을 읽었다. 그중 하나가 '있지만 없는 아이들: 미등록 이주아동 이야기'였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꽂혀서 이틀 만에 읽고 독후감도 써서 사단 독후감 경연대회에도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동정심을 쉽게 느끼지 않는다. 동정심을 느끼더라도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편이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보통의 경우 이성이 감정을 앞선다. 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책은 분명히 약자의 편에서 기술되었고 동정의 시선이 다분히 첨가되어 있다. 하지만 내게 다가왔던 것은 동정심보다는 현실이었다. 비자가 없는 부모를 뒀다는 이유로 국적도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현실말이다. 이 아이들은 주민등록번호가 없어 포털사이트에 가입도 못하고, 계좌 신설도 불가능해 현금 결제는 일상이며 의료보험 가입도 되지 않아 비보험으로 진료비를 낸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안타깝다. 당장 일상생활이 불편한데 아이들이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까? 절대 아닐걸! 아마도, '내가 무엇을 할 수는 있을까?' 하는 자조뿐일 것 같다. 아이들만 바라봐 보자. 그들이 과연 무슨 잘못이 있는가? 이들은 그저 불법체류하고 있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기의 전부를 사각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미나시타 기류는 '부모를 골라서 태어날 수 없는 아이들의 평등을 지켜주는 것이 공적 지원의 전제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국적과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는 없다. 이들이 사회에서 공정한 교육과 평등한 복지 혜택을 통해 투명한 미래를 그릴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어른의 책무이자 우리 세대가 갖추어야 할 감수성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어릴 시절부터 사회의 사각지대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가 진보할수록 분명 안전장치들은 늘어나는데 도대체 사각지대는 왜 항상 있는지. 고독사 하는 청년, 노인들. 인신매매의 피해자들. 우리 사회의 외국인들. 근데 웬걸, 군대라는 보수적인 집단에 들어와서도 사각지대는 있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의 지적능력과 인성을 갖춘 것으로 검증된 사람들이 들어온다는 육사 내에서도 분명 사각지대는 있었다. (나는 육사의 사각지대를 주로 일부 외국인 수탁생도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이 이야기는 따로 글을 쓸 예정이다.)
이 책은 군인 정신에만 매몰되어 있던 당시의 나에게 다시금 내 주변,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의 사각지대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 그리고 책에서 느낀 감정을 그저 또 하나의 감상으로 남기고 싶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고, 같은 해 9월 고려사이버대학교 다문화사회학부에 입학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8월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이 책은 내가 다문화사회를 공부하도록 행동으로 옮기게끔 도와준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