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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작 Oct 08. 2021

나, 장기기증 서약해도 될까

내 마지막은 착한 소비이고 싶다

코로나19 백신을 두고 여전히 말들이 참 많다. 백신 부작용으로 고생을 하거나 건강을 잃은 사람, 심지어 죽은 사람에 대한 뉴스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혹자는 알려지지 않은 독감 예방 접종 부작용보다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이나 사망률이 덜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과연 지금 시점에 백신을 맞는 게 옳은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 달 이상 백신 관련 기사는 죄다 찾아보고, 리얼 접종 후기를 뒤져보고, 가까운 지인들의 접종 사례를 직접  눈으로 보고 들으며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접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주일 전부터 긴장된 마음을 감출 수 없었고, 하루 전에는 직장에 앉아있어도 일손이 잡히지 않았다. 저녁 때는 괜스레 몸살기가 있는 것 같으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웃기지만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을 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혹시 모르니 유언이라도 남겨둬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이 뭐였더라.'


가장 먼저 떠오른 일이 장기기증이었다.


그렇다. 난 아주 오래전부터 장기기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성년자 딱지를 뗀 직후였던 것 같다. 살면서 남을 위해 기부 한 번 해보지 않았고, 아픈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들을 보며 크게 안타까워하지도 않았는데, 그런 내가 왜 장기기증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당시엔 장기기증을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가족에게 유언처럼 내 의사를 미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는 엄마에게 '만에 하나'라는 말로 서두를 던졌다.


"만에 하나... 살다가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난 꼭 장기 기증을 하고 싶어."


그날 이후로 난 누구에게도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마치 내가 당장 죽겠다고 한 것처럼 엄마는 펄쩍 뛰었다. 하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낳아준 엄마 앞에서 장기기증을 선언한 게 잘한 일인가 싶긴 했다.


그렇게 가슴속에 묻어둔 장기기증에 대한 희망은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 그리고 이번 코로나19 백신 접종 하루 전 스멀스멀 다시 피어올랐다. 내일 당장 어떻게 될 사람처럼, 인터넷에서 장기 기증 신청 방법을 열심히 검색했다. 신청 버튼을 누르기 직전 이번엔 남편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평생 함께 살아온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고 땅이 꺼진 순간에 아내의 유언인 장기 기증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의 식은 몸을 다시 차디찬 수술대 위에 올려야 한다. 남편과 아이들이 겪게 될 고통과 마음의 짐이 어느 정도일지 조금은 가늠이 되었다. 슬프다고 하기엔 너무 참담한 기분이려나.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남은 가족들에게 참 못할 짓이다 싶다. 뭔가 감정이입이 되면서 남편 앞에서 한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입을 닫았다.




가끔 사랑하는 가족이, 혹은 어린 자녀가 불의의 사고로 여러 생명을 살리고 하늘나라로 갔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다. 남은 가족들의 마음은 어떨까, 어린 자녀의 부모는 어떤 심정일까 감히 상상해본다. 흔히 말하듯이 '장기 기증은 사랑하는 내 가족을, 내 아이를 영원히 보내는 것이 아니고, 새로운 생명으로 어디에선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이다.'라는 말로 과연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면 과연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고귀한 행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엔 난 너무 보잘것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생각을 바꿔 '나는 왜 장기 기증을 하고 싶은 걸까'를 정리했다. 내 마지막에 정신이 올곧이 살아있다면 가족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졌다.


"난 살면서 하고 싶은 일이 참 많았어. 그래서 늦은 나이에 되지도 않는 실력으로 돈 벌어 보겠다고 이것저것 공부해가며 발버둥도 쳐봤지. 고즈넉한 가을 저녁 시골집에 앉아 책 한 권 펴 들고 커피 홀짝이는 낭만도 떨어봤지. 평생 초보운전 실력으로도 엄마랑 둘이 바다며 산이며 아름다운 것은 다 보고 맛있는 것은 다 먹고 다녔지. 호랑이는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데 나도 내 이름 석자는 남겨야 하지 않냐며 어설프지만 내 이름 박힌 책도 한 권 써봤지. 그런데도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남아있네? 내 마지막을 모두 주는 일. 비록 사람 살리는 의사는 아니지만 사람 살리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어. 한평생 치열했던 삶을 한 줌 재로 남기기엔 내 인생이 너무 가엽잖아. 이게 내 마지막 위시리스트야."


어지럽던 머릿속을 이렇게 정리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면서 입술을 뗄 용기가 생겼다.


"여보~ 나, 장기기증 서약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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