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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작 Sep 12. 2021

외로움은 때로 약이 된다

혼자 있고 싶을 땐 혼자 있게 하자.

아들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원을 옮기면서 뜻하지 않게 주 2회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퇴근 후 저녁 먹을 도 없이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내게 하루는 아들이 말했다. "엄마, 오늘은 혼자 갔다 올게요." 25년째 초보운전 탈을 못 벗은 엄마의 밤 운전 솜씨가 못 미더웠던 걸까. 아니면 엄마를 고생시키는 것 같아 미안해서 그러는 걸까. 왜냐고 묻지도 않고 내 멋대로 아들의 이유에 답을 내렸다.


"엄만 괜찮아. 하나도 안 힘들어."

"아니 그게 아니라... 혼자 가보고 싶어요. 혼자 가는 게 재미있을 것 같아."


갑자기 멍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걸어가기엔 너무 멀고, 버스를 타기엔 번거로운 거리를 다른 이유도 아니고 그냥 혼자 가보고 싶다니.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엄마가 데리러 오니까 편하고 좋다며, 보조석 시트를 뒤로 젖히고 해맑게 웃던 아들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몸서리치게 경험할 때 참 예쁘고 순탄하게 이 시기를 보낸다며 감사했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혼자 있어보고 싶단다.


그러고 보니 함께 다니는 친한 친구가 같은 시간대 수업임에도 불구하고 끝나면 늘 혼자 걸어서 집에 간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니 10년 지기 친구가 의리도 없이 왜 혼자 가냐"라고 물으니 약간의 서운함이 묻은 대답이 돌아왔다. "몰라요. 걔는 혼자 있는 시간이 좋대요." 겉보기엔 참 활달하고 붙임성 좋고 친구도 많은 아이인데,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니 그 또한 의외였다.


아이들의 소심한 독립선언에 적잖이 당황했던 나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을 억지로 끄집어냈다.


엄마는 결혼해서 지금껏 전업주부셨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늘 맛있는 간식을 종류별로 만들어놓고 반겨주셨다. 그러다 아주 가끔 근처 이모집에 놀러 갔거나 시장에 갔다 미처 시간을 못 맞춘 날이 있었는데 난 그게 너무 싫었다. 아무도 날 반겨주지 않는 빈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그 삭막함이 너무 싫었던 것이다. 맞벌이 엄마를 둔 친구들은 이 공허함을 매일 어떻게 이겨낼까 측은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대학에 입학하고서는 1시간 남짓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하는 거리가 너무 힘들어서 자취 선언을 했다. 반대하는 아빠를 어렵게 설득해 승낙을 받아냈고, 난 룰루랄라 자취방을 보러 다녔다. 한 열 군데쯤 보았을까. 돌연 독립의 꿈을 접었다. 정말 어렵게 얻어낸 기회인지라 눈물 나게 아깝긴 했지만, 난 그렇게 자유의 기회를 스스로 박탈했다. 혼자 있는 게, 혼자 사는 게 두렵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결혼할 때까지 부모님 밑에서 몸도 마음도 독립하지 못한 채 살았다. 스물여섯이라는 나이에 또래 친구들보다 결혼을 일찍 한 탓에 혼자만의 시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다. 아니 뭐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일까. 지금 와서 가장 후회되는 것이 대학 때 독립을 하지 못한 것이고, 즐겨보는 TV 프로그램은 <나 혼자 산다>가 되었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보는 TV, 혼자 하는 여행... 오로지 나에게만 허락된 공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찾으며 인생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가.


마흔 넘도록 '혼자'를 갈구하지 않았던 내가 마침내 늦바람 난 처녀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고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심지어 작년 이맘때부터는 시골에 자그마한 집 한 채 지어놓고 주말에라도 혼자 가서 쉬다 오고 싶다며 매일같이 남편을 졸라대고 있다.


'이 사람이 우울증이 왔나' 싶었는지 남편이 하루는 아이들에게 갑작스러운 통보를 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마지막 주 토요일엔 엄마 혼자만의 시간을 주자고. 아니나 다를까. 껌딱지 딸내미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울음을 터뜨렸다. 난 엄마 따라갈 거라고. "엄마 어디 갈 건데? 나 데리고 갈 거지? 응?"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마치 엄마가 가출 선언이라도 한 것처럼 '나를 두고는 아무 데도 못 간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렇게 남편의 호기로운 도전(?)은 단 한 번도 실행하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너도나도 우울증이다. 불면증 약을 처방받아 드시는 엄마 말이, 정신과에 가면 젊은 사람 늙은 사람 할 것 없이 사람이 바글바글하단다. 삶은 풍요롭고 주위에 사람은 많은데 왜 다들 우울을 안고 살아갈까. 그건 아마도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해서일 거다. 가족 안에서, 학교 안에서, 직장 안에서 엄마로, 친구로, 상사로, 후배로, 그들 중의 하나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거다.


나 또한 아니라고 자신할 순 없다. 가끔씩 내 인생이 뭔가 싶고, 이대로 살아도 되나 싶고, 심지어 나는 누군가 하는 정체성의 혼란까지 겪을 때가 있다. 후회스럽고 원망스럽고 허무한 것들 투성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드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 다만 나의 우울감이 주위 사람들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나 스스로 조절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시골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것도 나름의 해결책 중 하나다.


그런데 이런 내 의지를 표출하면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네가 무섭고 외로워서 퍽이나 혼자 있겠다" 심지어 엄마까지도 그렇게 말씀하시며 일찌감치 마음 접으라고 종용하신다.


아니.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받아야 한다고들 하지. 난 그 반대야. 외로움도 때론 약이 되더라. 사람 안에서, 복잡한 일상 속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은 결국 혼자일 때 치유되더라고. 혼자 있고 싶다는 건 아픈 거야. 치유받고 싶다는 무언의 신호지. 그럴 땐 혼자 있게 내버려 두는 게 답이야."


그래서 오늘, 아들의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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