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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작 Sep 08. 2021

내가 번아웃이라고?

번아웃 증후군을 극복하는 나만의 방법

"너도 참. 열심히도 산다"


며칠 전 함께 운동장을 걷던 동네 언니가 대화 중에 무심코 던진 말이다. 열심히 사는 건 당연한 거라고, 열심히 살지 않는 사람들이 게으르고 나태한 거라고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는데, 살짝 가시가 돋은 이 말을 듣고 보니 문득 내가 뭔가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난 참 열심히 살고 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땐 친구들 사이에서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로 평가받고 싶어서 열심히 공부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을 땐 나에 대한 선생님의 기대가 너무 커서, 그 기대를 저버릴 수가 없어서 열심히 공부했다. 고등학교 땐 평생 싸움 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가정환경 때문에 잠시 비뚤어질까도 고민했지만, 자식만을 바라보고 사는 엄마가 짠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땐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게 당연한 내 의무라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후 지금까지 난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첫 아이가 유산되고, 그로 인한 후유증으로 1년간 임신 유예 선고를 받았을 때도 미친 듯이 공부해 3개월 만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어떤 뚜렷한 목표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놀면 뭐하나 하고 단순하게 노후 대비용으로 따서 장롱 속에 고이 간직했을 뿐이다.  


지금의 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심각한 산후풍으로 일어서서 걷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큰거리는 두 다리를 질질 끌고 일터로 나갔다. 밤을 새워가며 회의를 하고, 글을 쓰고, 쪽잠을 자고, 다시 깨어나 글을 쓰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아이도 나도 지쳐갈 때쯤 남편이 말했다. "그만두고 좀 쉬어"


같은 방송일을 했던 남편은 우리 부부의 불규칙한 근무패턴 때문에 이렇게 살다가는 집안꼴이 죽도 밥도 아니게 될 것 같다며 둘 중 하나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규직인 남편보다는 프리랜서인 내가 접는 게 누가 봐도 옳았다.


방송일을 그만둔 후에도 하이에나처럼 끊임없이 일을 찾았다. 낮엔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하면서도 저녁 시간이나 주말엔 글 쓰는 일을 알바 형식으로 하기도 했다. 누가 시켜서도 아니었고, 투잡을 해야 할 정도로 가계가 기울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이유 없이 열심히 살았다.


둘째를 낳자 아이들을 돌봐주시던 친정엄마가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한 2년간 육아에만 전념했던 적이 있다. 육아를 해본 엄마들이라면 다 알겠지만, 갓난쟁이를 키우는 동안은 내가 세수를 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모르고 하루를 보내는 일이 다반사다. 아기가 잠든 시간은 엄마도 눈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만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 그렇게 보낸 2년 동안 내겐 우울증이 찾아왔다. 물론 아기가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웠지만, 아이로 내 안이 채워지는 동안 내 안에 있던 나는 점점 자리를 잃어갔다.


그 후 몇 년. 흔히들 말하는 경단녀가 된 나는 장롱 속에 묵혀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꺼내어 다시 직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낮엔 발바닥이 닳도록 집을 보러 뛰어다니고, 저녁엔 아이들이 잠든 틈을 타 새벽 1~2시까지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한다. 블로그, 제휴 마케팅,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 쇼핑몰 등 세상을 향한 창구는 참 많은데, 나도 나이를 먹었는지 강의를 들어도 이해가 안 되는 말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봐도 참 열심이다.


그렇게 스스로 한계를 느끼면서도 밤잠 쪼개어가며 열심이던 어느 날 문득 내게 이런 물음표가 생겼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서 뭐할 건데?"

그 시점은 아마도 아빠가 돌아가신 직후였던 것 같다. '바보야. 아빠를 봐봐. 그렇게 악착같이 살았는데, 죽고 나니 아무것도 아니잖아.' 지금껏 당연하다 여겼던 게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음을 스스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한동안 난 모든 일에서 손을 놓았다. 그냥 열심히 살았던 것처럼, 그냥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밥도 하기 싫고, 출근도 하기 싫고, 아이들 공부 봐주는 것도 싫었다. 놀러 가는 것, 생각하는 것, 이야기하는 것조차 싫었다. 안 자던 낮잠을 오후 내내 잔 날도 있었다. 낯선 감정과 행동에 당황한 나는 인터넷을 뒤졌다.


번아웃 증후군.


내가 번아웃이라고? 나에게 참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잠시 쉬어가자. 배터리가 방전되었을 때는 잠시 쉬어야 해.'라며 스스로에게 답을 내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또다시 난 치열하게 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까지도 열심히 쓰고 지우기를 반복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난 그렇게 번아웃을 이겨내고 있다.


누군가 내게 열심히 사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겠다.


"내일은 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 오늘을 열심히 살고 있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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