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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작 Sep 05. 2021

샛노란 바나나

옛 기억을 소환하다

 

아주 가끔 무의식 저편에 있는 기억이 내 현실의 좁은 틈을 비집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때가 있다. 내가 떠올리고자 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도 아니고, 떠올리기 싫다고 해서 억지로 숨길 수도 없는 그런 기억. 그것은 아련한 추억일 수도 있고, 동시에 괴로운 파편일 수도 있다.


어릴 적 살던 집 근처에서 나던 기찻길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저녁 시간 현관 밖으로 새어 나오는 청국장찌개 냄새에 엄마 생각이 절로 나는 것, 길가에 수줍게 핀 봉숭아꽃을 보면 옛 친구가 떠오르고,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풍겨오는 희미한 샴푸 향기에 잊고 지내던 사람이 그리워지는 것.


이처럼 평소에는 현실에 젖어 살다가 어떤 물건을 보았을 때나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또는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어떤 장소에 놓였을 때 옛 기억은 나도 모르게 자동으로 소환된다. 내겐 샛노란 바나나가 그렇다.      



어릴 때 난 바나나를 무척 좋아했다. 점이 거뭇거뭇 잘 익은 바나나가 아닌 샛노란, 심지어 꼭지 부분이 초록에 가까운 싱싱한 바나나. 지금은 바나나가 대여섯 개 달린 한 뭉치에 3~4천 원밖에 안 하지만 내가 초등학생이던 1980~1990년대만 해도 바나나는 신문물에 가까웠다. 과일가게나 좌판을 벌여놓고 소소하게 과일을 팔던 노점들에는 바나나가 아예 없는 곳도 많았고, 가끔 발견한 바나나는 낱개로만 판매를 했다. 당시 가격으로 개당 보통 1500원 정도씩 했던 걸로 기억이 나는데, 지금의 화폐가치로 따지면 한 1만 원 정도 되려나...


아빠는 함께 지나가다 바나나를 발견하면 늘 나에게 물으셨다. "바나나 먹을래?" 어린 나이에도 비싼 걸 알고 사 달라는 말도 못 한 채 혼자 곁눈질만 하던 나는 이 때다 싶어 1초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지불하고 매끈한 바나나를 받아 든 순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바로 까먹는 바나나는 요즘 말로 개꿀맛이었다.


내가 그때의 아빠였다면 넉넉지 않은 살림에 그 비싼 바나나를 내 아들에게, 내 딸에게 서슴없이 사줄 수 있었을까. 아마 어림없었을 것이다. 너무 비싸서 안된다며, 다음에 돈 많이 벌면 사주겠다며 바나나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의 팔을 억지로 잡아끌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바로 어제만 해도 한 송이에 만 오천 원 하는 샤인 머스캣 앞에서 걸음을 떼지 못하는 아이에게 "집에 있는 포도 다 먹고 사자"며 아이가 잊어버릴 만큼의 시간을 벌어두고 온 나다. 그런데 아빠는 우리 남매가 먹고 싶은 게 있다면 두 말도 하지 않고 지갑을 열었고, 심지어 우리가 요구하기도 전에 먼저 사주셨다.


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고, 고마운 줄도 몰랐다.




작년 10월 아빠의 임종을 앞둔 어느 날. 침상에 누운 아빠 주위로 엄마, 나, 남동생 셋이 둘러섰다. 담당의사는 병실에 들어서기 전 "말씀은 못하셔도 다 듣고 계시니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들 나누세요."라고 말하며 자리를 다.


엄마는 "먼저 가서 잘 있어요~ 여긴 아무 걱정 말고"라는 말만 큰 소리로 연신 반복했다. 본인이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빨리 가지 왜 안 가고 있냐며 재촉하는 소리로 들렸다. 남동생은 그저 "아빠~ 많이 힘들지?"라며 마지막까지 거듭 안부를 물었다. 나는 "아빠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이 말만 수 차례 반복하며 울었다.


아빠 어깨의 짐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늘 미워하기만 한 거. 들으려 하지 않고 보려 하지 않으며, 귀 막고 눈 가린 거. 가족이지만 남보다 못한 존재로 여겨왔던 거. 수없이 많은 미안한 일들이 마치 죄목처럼 내 머릿속에 빠르게 나열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따로 있었다. "아빠~ 바나나 사줘서 고마웠어."

별 거 아닌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마지막까지 하지 못한 게 지금도 후회로 남는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말이라고 입을 떼지 못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술과 폭력으로 얼룩진 세월을 보내온 엄마 앞에서 아빠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게 죄스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칠십 평생 아빠 인생에 잘한 일이라곤 말썽 한 번 안 부리고 착하게 자라 준 우리 남매를 낳은 일뿐이라고 생각하는 엄마 앞에서 아빠가 잘한 일이 그거 말고도 또 있었다고 고백하는 건 엄마를 두 번 죽이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다시는 만나지 못할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 한마디도 전하지 못한 나는 이제 더 이상 샛노란 바나나를 먹지 않는다. 레몬빛 바나나를 보면 아빠에게 못다 한 마지막 말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메아리쳐 들려와 온 신경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꿈에서라도 아빠를 만난다면 이제는 말하고 싶다.


"아빠. 바나나 사줘서 고마웠어. 이상하게 요즘 바나나는 그때만큼 맛이 없더라. 난 아빠가 사 준 바나나가 최고로 맛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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