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작 Sep 04. 2021

지금 이대로도 멋져

한결같이 봐주는 사람이 있는가


마음은 아직 20대 푸르던 시절에 멈추어 있는데, 어느덧 마흔을 훌쩍 넘기고 내 아이가 그 시절 그때의 내 모습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사진 찍는 걸 참 싫어한다. 정확히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릴 적 사진 속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은 걸 보면 태어날 때부터 사진 찍기 싫어하는 유전자를 타고났던 것 같다. 성인이 되고, 성장보다 노화가 시작된다는 30대 중반부터는 가족여행을 가더라도 카메라 앵글에서 슬그머니 빗겨서는 게 일상이 되었다. 사진 속 내 모습에서 리얼하게 느껴지는 나이가 별로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브이라인이라고 부러움을 샀던 양 볼은 어느덧 푹 파여 마귀할멈이 되었고, 쌍꺼풀이 없어도 왕눈이라 불렸던 두 눈은 축 처져 총기 잃은 듯하다. 우울하게 자리 잡은 팔자주름은 포기하기 시작했고, 따로 관리를 하지 않아도 매끈하던 피부는 레이저 시술 아니면 손 쓸 방도가 없는 잡티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실물도 그럴진대 사진 속의 나는 더 못나 보인다.


그래서 집에 남은 사진이라곤 죄다 뒷모습뿐이다. 앞모습이 나온 사진을 모두 삭제해버린다는 걸 안 남편은 언젠가부터 뒷모습을 주로 찍어준다. 그런 남편이 찍어주는 뒷모습 사진을 난 참 좋아한다. 물론 예쁘게 잘 찍은 남편의 사진이 작품으로서 마음에 들기도 하지만, 앞보단 뒤가 그나마 봐줄 만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를 측은지심이 생긴다.  마음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내뱉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그동안 나 자신에게조차 못했던 말을 사진 속의 나와 이야기하는 것 같아 솔직해지는 기분도 든다.


카톡 프로필 사진을 늘 뒷모습 사진으로만 교체하는 내게 남편은 이렇게 말한다. "예쁘지? 뒷모습만 예뻐서 찍는 거 아니야. 뒷모습도 예뻐서 찍는 거야."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가끔은 이런 거짓말에서 위안을 얻는다.


남편은 늘 그렇게 지금도 예쁘다고, 여전히 사랑한다고 내게 말해준다. 시간이 흘러도 한결같이 한결같은 말을 건네주는 사람이 주위에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게 참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생판 모르는 남을 만나 가족을 이룬다는 것, 아이들을 온전하게 키워낸다는 것, 늙어가는 부모를 외롭지 않게 지켜낸다는 것, 그리고 세상 속에서 나 스스로 빛을 잃지 않는 것 또한 내겐 큰 숙제다.


요즘 나온 노래 중에 '차라리 운전대를 못 잡던 어릴 때가 더 좋았었던 것 같아'라는 노랫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쓴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해결해야 할 일은 참 많은데 머리만 무거운 날은 내 나이가 더 절실히 다가오는 날이기도 하다. 그럴 땐 그저 엄마가 좋다며 엄마만 따라다니는 껌딱지 딸처럼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나름의 걱정은 있으나 소소하고,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넋 놓아 울 수 있고, 아무것도 안 발라도 그 자체로 예뻤던 그때로. 엄마도 사람이니까.




작가의 이전글 부모와 자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