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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달 Jun 21. 2022

순간을 잡고 싶은, 마음을 잡고 싶은

어느 겨울에 시작된 이야기


1. 2020년에서 2021년이 되던 겨울은, 아주 추웠고 눈이 자주 내렸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는 바람에 회사는 두 번째 재택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고, -코로나가 잦아들지 않는 것은 속상했지만 한편으로는- 추위와 눈을 뚫고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좋았다. 러닝을 시작하고 처음 맞이한 겨울이었는데, 칼바람을 맞으면서 남산 순환도로를 달리는 것이 썩 상쾌한 일이며, 머리가 따뜻해야 덜 춥다는 것을 알게 된 겨울이었다.

그리고 뮤지션 L을 알게 된 겨울이었다. 우연히 당시 인기를 끌던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의 클립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그 영상의 주인공이 첫 소절을 부르는 그 순간부터 반했다. 그렇게 홀린 듯이 그의 음악을 찾아 들었고, 과거 무대 영상까지 다 보았었다. 그렇게 그 겨울에는 태어나 처음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보게 되었고, '덕질'을 시작했다.

L을 만난 겨울이었다.


2. L이 만들고, 연주하고, 부르는 그 모든 음악은 내 마음 곳곳에 닿았다.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고, 지금까지는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을 선사했다. 가사 한 문장 한 문장을 쓰다듬으며 찔끔 울기도 했다. 그러면서 매일매일 끊임없는 생각에 빠져들고, 그 안에서 인생의 새로운 화두를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L의 어느 인터뷰를 보았다. 경쟁에 취약한 그는 '별로인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려고 오디션에 나왔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참 이상한 마음이 들었는데, 정체를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그런 마음. 나만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생겨났다. 지금의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인지, 내가 가고 싶었던 길 위에 있는 사람인지 고민하게 했다.

대충 산 것은 아니다. 치열했던 20대를 보냈음은 틀림 없었다. 학부 때도 그렇고, 3년 동안 석사 학위를 하면서도, 1년 정도 취업 준비를 할 때도, 어느 가을에 원하는 회사에 취업이 되었을 때도, 10년 넘게 성당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그 모든 시간들에 나는 늘 최선이었고 그래서 참 바빴다. 그렇지만 30대를 보내고 있는 지금,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한 20대의 모습, 학위와 안정적인 직장과 내 한 몸은 건사할 수 있는 경제력. 얻은 것은 있었지만, 남은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저냥 이렇게 살아 낸 인생은 나를 어떤 어른으로, 어떤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일까.

마음이 무거워진 겨울이었다.


3. 그래서 나를 천천히 톺아보니, 어쩌면 아주 오래 전부터 무언가를 쓰고 싶었던 것 같았다. 도대체 무얼 쓰고 싶은 건지 알 수가 없었던, 아니 어쩌면 쓰고 싶다는 마음 자체를 외면하고 있었던 시간들. 나에겐 창작자의 '밑천'이 없다고 믿고 있었기에 나의 몫이 아니라 생각 해왔던 오랜 날들. 그저 책을 ‘읽음’으로써 덮어왔던 나의 그림자.

그래서 내가 ‘괜찮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글을 써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술자리에서 L의 이야기와 나의 고민, 그리고 이제는 글을 써보겠다는 고백(?)을 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오랜 친구들은 별로 놀란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드디어 시작하는 거냐는 반응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까, 사실은 가까운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것. 나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는 것.

내가 외면해 오고 덮어 두었던 마음을 타인을 통해 깨닫고 실행에 옮기게 된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어느 음악인의 노래와 친구들의 지지 같은 것들.

그것들을 알게 된 겨울이었다.


4. 그러니까, 결국에는, 글을 쓰면서 순간을 잡고 싶다는 이야기. 그리고 마음을 잡고 싶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는 이상하리만치 눈이 자주 내리던  겨울에 시작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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