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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달 Jul 18. 2022

내 서랍 속 플레이리스트 #1

저의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


제 플레이리스트 속 아끼는 곡들을 종종 꺼내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저에게 큰 위안을 주었던 노래들이 그대들 마음 구석에도 따스함이 되었으면.




1. Antifreeze - 검정치마

검정치마 <201 (Special Edition)>, 2010.03.18. 발매

'Antifreeze'는 2010년 3월 발매된 검정치마 앨범 <201 (Special Edition)>의 5번 트랙이다.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Antifreeze'  구절은 내가 아주 오랫동안 좋아했던 가사다. 사실 지금의 최애 가사는 다른 노래로 바뀌었지만, 거의 10 가까이 가장 좋아했던 가사는 바로  소절이었다.  가사를 지니고 있는 노래의 제목까지도 너무나 멋지지. 사실 나는  가사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니까, 절망인 상황을 억지로 즐겁게 이겨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절망은 절망인 채로 두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는 것도 안다. 그러니까, 내가 '춤을 추며' 절망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지닌 종류의 사람인 것도 아닌데  가사는 가사 자체만으로 나에게 절망을 마주할  있는 힘을 준다.

이 노래를 가장 많이 들었던 때는 석사 과정을 견디던 3년이었다. 조금 슬프지만 그 3년은 그야말로 '견딘다'는 말이 잘 어울리는 시절이었다. 당시에 겪었던 '거의 매일의 절망'이 나는 절대로 즐겁지 않았다. 당연히 춤을 추며 싸우고 싶지도 않았다. 실험 결과를 확인하던 암실의 현미경과 그 어둠 속에서 울었던 셀 수 없이 많은 날들. 매일 쏟아지는 절망을 어찌할 줄 몰라서 그저 잠수교를 건너 한 시간을 걸어서 집으로 향하던 밤들. 툭 건들면 눈물이 왈칵 솟거나, 화가 울컥 터지던 그 이상한 시절의 나에게는 쌓이기만 하던 절망들이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렇게나 매일 절망을 느낄 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던 날들. 그때 들었던 'Antifreeze'는, 그리고 저 가사는 이상하리만치 큰 위안이었다. 어떤 절망은 춤을 추며 싸울 수도 있구나, 나의 절망은 어떤 종류일까, 하며 나의 절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조그마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아마 언젠가 만날 다른 종류의 절망은, 정말로 춤을 추며 이겨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진 절망의 모양은 아마도 천차만별일 것이므로. 그리고 어떤 절망을 만나든지 나는 이 노래에 의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2.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 브로콜리 너마저

브로콜리너마저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2016.07.27. 발매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는 2016년 7월 발매된 브로콜리너마저 싱글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의 1번 트랙이다.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 중 하루는 고대하던 회사 최종면접에서 떨어진 날. 면접 분위기가 정말 좋았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하고 있던 회사였다(내가 지원했던 팀의 팀장님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면접 후 전체 티타임에서 알은체를 했을 정도로). 불합격이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는 어떤 설명회 때문에 연세대의 큰 강당 한가운데 앉아 있던 상황이었는데, 메일을 읽으면서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몇 개월째 수많은 회사에서 떨어지곤 했지만, 그날만큼 실망한 적은 없었다. 하필 자리는 너무나 한가운데였고 한창 중요한 부분이 진행 중이라 밖에 나갈 수도 없었는데, 눈물이 자꾸자꾸 나서 최대한 숨을 죽여 울었다. 휴지도 없고 소매도 짧은 옷이라 눈물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뚝뚝 흘렸다. 옆 사람들이 힐끔힐끔 보는 것이 느껴지는데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던 그 순간.

그리고는 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준 두 친구와 신촌 어디께에서 치맥을 때렸다. 끝이 보이지 않던 백수 신세를 한탄하며 낯선 골목길을 무작정 걷다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따라갔다. 그리고 어느 건물 입구에서 공연하고 있는 브로콜리너마저를 만났다. 알고 보니 공연장 안에서 공연을 하다가 이벤트로 관객들과 함께 밖에 나와서 몇 곡을 더 불렀던 건데, 그날 그때 그곳에서 우연히 딱 만났던 거다! 길거리에서 만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로 위로받은 기억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중에서도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는 당시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곡이었다.

잊어야 할 일은 잊어요
아직까지 잠들지 못했나요
잊어야 할 일은 잊고서
새로운 시간으로 떠날까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의 서류 합격 연락을 받았고, 몇 개월 후에는 최종 합격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지난한 1년의 취업 준비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최종 합격 문자를 받은 날이 아니라 바로 이날이다. 우연히 만난 브로콜리너마저의 노래가 나에게 적절하고도 따순 위로를 건넨 날.

덧. 공연 후에는 사인회도 했었는데, ‘멋없게 종이에 사인 받지 말고 여기에 받아!’라며 그 자리에서 앨범을 사준 친구가 진짜 '존멋'이었던 기억도 난다. 사인을 받으면서 ‘저 오늘 면접 떨어졌어요’라는 나의 말에 당황한 덕원님의 동공 지진도 잊을 수가 없다...ㅋㅋㅋㅋ (당황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3. 시적 허용 - 이승윤

이승윤 <영웅 수집가>, 2020.09.25. 발매

'시적 허용'은 2020년 9월 발매된 이승윤 싱글 <영웅 수집가>의 2번 트랙이다.

그야말로 '이승윤 덕후'인 나는 그의 모든 노래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요즘에는 '시적 허용'을 가장 최애로 꼽고 있다. 매일매일 몇 번이나 듣는데도, 들을 때마다 피아노가 깔리는 전주에서부터 마음이 찌릿찌릿해진다. 플레이리스트를 아무 생각 없이 랜덤으로 듣고 있다가도 이 전주가 나오면, 노래에 바로 집중하게 된다. 이미 마르고 닳도록 듣고 읽어서 온통 다 외우고 있는 지경인데도, 그냥 흘려듣지를 못한다.

참 이상한 노래지.

시적 허용 속에서 부유하는
꿈들은 고요해
시적 허영 속에서만 살고 있는
마음은 불안해요
시적 허영 속에서만 살고 있는
말들은 초라해요

국어사전에서는 '시적 허용'을 이렇게 정의한다.

시에서만 특별히 허용하는 비문법성.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어긋나는 표현, 비문법적인 문장 따위가 있다.

그러니까, 언젠가의 국어 시간에 배웠던 것처럼 시(詩)에서는 문법과 띄어쓰기와 맞춤법에 자유를 허한다. 노래 역시 운문의 한 갈래라고 생각하면, 노래에서 '시적 허용'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다. 그런데 이 노래 속에서 이야기하는 시적 허용의 정체는 과연 무얼까 오래 고민했다. 노래 안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인지, 오히려 강박이 되어 오는 비(非) 자유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인지. 게다가 이승윤 님은 앨범 소개에서도 이 노래에 대해서는 별다른 힌트를 주지 않아서 그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노래를 지은 걸까, 매일 궁금했다.

'시적 허용'은 고요한 꿈들을, 불안한 마음을, 초라한 말들을 품고 있는 시적인 '허용'과 '허영'들을 노래한다. 그러니까, 규범에서 벗어난 세계에 대한 고찰인 것 같으면서도, 그래서 '진짜가 아닌' 세계를 노래하는 마음이 깃든 것 같았다. 이 노래는 창작자가 되고 싶은, 그러니까 글을 쓰고 싶은 나의 '가짜'인 세계를 들여다보게 한다. 나의 꿈과 마음과 말들이 얼마나 고요하고 불안하며 초라한지 자꾸만 톺아보게 한다. 목소리를 낼 힘이 없어 고요하기만 한, 구색조차 갖추지 못해서 초라하기 짝이 없는, 그래서 끊임없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나의 문장들, 나의 이야기들.

길을 걷고는 있지만 내가 가야 할 곳의 주소를 몰라 정처 없이 헤맬 수밖에 없는 일, 일기장에 적은 수많은 말들을 구멍이 날 정도로 까맣게 칠해 지워버리는 일. 그런 소란한 마음들을 품고 있는 이 노래는 내가 어떤 창작자가 되고 싶은 것인지, 어떤 글을 짓고 있는 것인지 자꾸만 생각하게 한다.

참 이상한 노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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