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진과 격리 이야기
1. 내가 코로나라니!! 두 줄이라니!!! 1박 2일로 강릉에 다녀와서 감기 증상, 그러니까 인후통, 기침, 콧물, 재채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키트가 음성으로 나오길래 락페스티벌에서 물대포를 여러 번 맞고, 밤바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에어컨 켜진 방에서 잠을 잔 탓에 감기에 걸렸나 보다 했는데. 증상 사흘째 키트에서 두 줄이 나왔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와 표시선 찐하게 잘 나온다. 키트 잘 만드네.' 이놈의 직업병.
2. 다행히 휴가 다음 이틀을 내리 재택근무 중이었다. 제일 먼저 회사에 연락을 하고, 최근 만났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가족들과 성당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다행히 내가 퍼트린 사람은 없는 것 같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안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내 업무를 대신해야 하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당장 다음 주 주일학교 캠프를 준비하는 동료 교사들에게도 폐를 끼친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확진' 판정을 받는 순간 나를 둘러싼 수많은 누군가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 희한한 시대 3년 차, 아픈 것이 '폐'가 되어 버리는 잔인한 시대 3년 차의 단상.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3. 확진이 되고, 그다음 날 바로 후각이 없어졌다. 향이 진해서 잘 쓰지 않던 손 소독제를 뿌렸는데 웬걸! 향이 느껴지지 않았다. 코를 가까이 대고 킁킁킁 냄새를 맡아봐도. '와! 진짜 신기해!'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가 만들어준 자장면을 먹는데도 맛이 제대로 안 났다. '와 신기해!' 사람들이 말하던 후각 상실을 나도 경험하다니. 몸이 덜 고생스러워 그런지 신기하다는 생각이 연달아 들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입맛 없는 며칠을 보냈다. 그렇지만 커피를 마셔도 향을 못 느낀다는 건 퍽 아쉬웠다. 그래도 복숭아는 맛있게 먹었다.
4. 격리 기간 동안 가장 아쉬웠던 것은 친구가 몇 달 동안 애써 준비한 뮤지컬 공연에 가지 못한 것, 그리고 이승윤이 나오는 페스티벌 공연에도 갈 수 없었던 것. 아주 기다렸던 두 개의 공연을 놓친 것이 너무너무 속상했다.
5. 게다가 생일을 격리 기간 중에 맞이했다. 그래도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서운하지는 않았는데, 다른 것보다 맥주를 못 마신다는 사실은 너무너무너무 슬펐다. -처방 받은 약에 아세트아미노펜이 있었는데, 술을 먹으면 간에 너무 무리가 가기 때문에- 확진 소식을 들은 친구가 무알콜 맥주를 보내주었는데, 아쉽게도 격리 막바지에 배송되어서 맘껏 누리지는 못했다.
6. 격리 중에 드라마를 두 작품이나 정주행 하고, 책을 세 권 읽었다. 사실 이번 기회에 밀린 책을 싹 읽겠노라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잘 안 돼서 그러지 못했다. 잠을 꽤 많이 잤고, (쓸데없는) 인터넷 서핑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7일이 아주 빨리 흐른 것만 같다. 긴 시간 같지만 짧기도 했던 일주일.
7. 격리 중인 딸내미 때문에 부모님이 고생을 좀 하셨다. 동선을 달리 하느라, 겹친 동선을 소독하느라, 배식 밥상(?)을 차리느라. 배식받는 건 좀 재밌기도 했는데, 첫 배식에 소고기와 돼지고기가 다 있었던 게 웃기면서 감동이었다. 의사 선생님도, 이미 앓았던 이들도 무조건 잘 먹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이미 영양으로 가득한 내 몸이 일주일쯤 덜 먹는다고 큰일 나지는 않을 것 같긴 했다. 그래도 신경 써서 식사를 챙겨주신 부모님 덕분에 아주 잘 챙겨 먹었다.
8. 어쨌거나 다행히 큰 탈 없이 격리를 마쳤다. 기침과 목 이물감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후각은 어느 정도 돌아왔고 기력도 차리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보면 7일 동안 물리적으로 바깥과 단절된 생활을 하는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고, 드라마도 많이 보고, 책도 여유로이 읽은 시간이기도 했다. 또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때 코로나 시절에 말이야~ 내가 락페스티벌에 다녀와서 코로나에 걸렸는데~' 하며 풀 '썰'이 생긴 것도 같다. 하지만 비교적 가볍게 앓은 나조차도 증상과 격리는 여러모로 녹록지 않았는데, 어떻든 아프다는 것은 썩 유쾌한 경험이 아닌 것 같다.
9. 벌써 세 번째 해를 관통하고 있는 이 이상한 시국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 시대를 어떻게 지나가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