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산 Oct 31. 2023

브런치 글은 어느 정도 분량이 좋을까

환자에게 설명하다 든 생각

#1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대표 원장님, 즉 나의 고용주께서 강조하시는 건 '신속한 진료'이다. 진료 시간이 오래 걸리면 의사도 피곤하고, 간호사도 피곤하고, 환자도 피곤하고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고 강조하시곤 한다. 시간을 질질 끄는 건 의사가 실력이 부족한 거로 생각하신다. 대표 원장님의 성격이 워낙 불같고 급한 면도 있지만, 만성적인 저수가로 인해 '박리다매'를 해야 병원이 굴러가는 속사정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진료 시간을 단축해야 하는가? 가장 많이 줄일 수 있는 건 '의사의 설명'이다. 입사 초기 OT 때 대표 원장님께서 설명은 간단명료하게 해야 한다며 시범을 보여준 바 있었다. 과장을 보태서 다음과 같다.


"환자분의 상태는 지금 이러이러해서 무슨 무슨 병이 의심됩니다. 이 병은 원인이 어쩌고저쩌고 기전이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암의 가능성도 드물지만 있을 수 있으므로 이러한 검사를 해야하고... 이 검사는 뭐냐면 또 어쩌고저쩌고. 그 밖의 가능성은 무엇무엇이 있을 수 있는데 그건 또 기전이 어쩌고저쩌고" (Ⅹ)



"환자분 이거 암일 수 있으니까 검사해야 합니다. 지금 하고 가세요." (○)


요약하면 '드물지만 암일 수 있으니 검사하자'라고 하고 싶다면 길게 설명할 것 없이 그냥 '암일 수 있다'라는 핵심만 말하고 끝내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환자는 의사의 설명을 이해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며, 심지어 듣고 있지 않는 때도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1대1 과외로 학생을 가르쳐 보면 학생이 내 말을 경청하는 것 같아도 막상 물어보면 하나도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러니 10분 넘게 설명하나 1분만 설명하나 어차피 똑같으니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병원장님은 말씀하셨다. 설명이 긴 건 의사가 실력이 부족한 거라고 하시면서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병원장님과 똑같이 진료할 순 없다. 난 나름 시간을 할애해 환자에게 최대한 많은 설명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진료하다 보면 병원장님의 말씀이 옳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마감 시간이 다 되어 환자 1분이 접수했다. 다행히 검사는 다른 병원에서 다 했고 치료만 하면 되는 거라 진료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 거였다. 치료법은 2가지가 있었고 효과는 비슷했다. 난 각각의 치료법을 설명했다. 설명 자체는 별거 없는데도 환자는 호응이 굉장히 극적이었다. "어머나!" 혹은 "정말요?"처럼 마치 TV 건강 프로에 나오는 방청객 같은 감탄사를 설명 중간중간 말할 때부터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어야 했을까. 열심히 설명한 뒤 "그래서 어떤 치료를 하고 싶으세요?"라고 환자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전 잘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표정을 보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했다. 결국 처음부터 의사가 하라는 대로 정해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꽤 덧없고 공허했다.


#2

브런치에 글을 쓰다 보니 든 생각이 하나 있다.


'브런치에 긴 글을 써봤자 이걸 글쓴이만큼 꼭꼭 씹어먹으며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브런치는 나름 전문적이고 작가주의적인 공간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매체는 어쨌든 스마트폰이다. 유튜브도 이젠 너무 길어 shorts로 보는 시대에 스크롤이 끝없이 내려가는 긴 글을 보는 건 너무 피곤하다. 브런치는 X(구 트위터)가 아니지만, 글을 써보니 짧은 글이 더 인기가 좋았던 것 같다.


진지하게 긴 글을 써도 독자들이 읽을 엄두가 안 나서 넘기면 그저 공허한 혼잣말일 뿐이다. 오히려 부담 없이 짧게 쓴 글이 눈길을 한 번이라도 더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피차 덜 피곤한 방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적당하다고 생각한 것이 한 1,000~2,000자 정도? 딱 1~2분 정도이다. 바쁜 현대인에게 그 이상으로 시간을 얻기는 어지간한 인플루언서가 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내 생각이 정답은 아니다. 어차피 브런치는 공모전 당선이 주목표인 꿈의 플랫폼이라 꼭 많이 읽혀야 좋은 건 아니기도 하고. 다만, 오늘 어떤 동영상을 보니 여러 생각이 좀 들어 두서없이 적어보았다. 유튜브 관련 내용이지만, 혹시 브런치로 인플루언서를 꿈꾼다면 참고할 만한 점이 있어 보인다.


유튜브는 운일까 실력일까?


결국 제목은 자극적으로? (브런치에 시댁, 이혼 이야기가 넘쳐나는 이유?) 내용은 짧게?

매거진의 이전글 내 글의 가치는 얼마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